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이 29일 영면하면서 '산업입국' 철학을 바탕으로 하는 그의 발자취가 재조명되고 있다. 사진 =효성그룹.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이 29일 영면하면서 '산업입국' 철학을 바탕으로 하는 그의 발자취가 재조명되고 있다. 사진 =효성그룹.

창업주 故조홍제 회장과 함께 효성그룹을 일궈 명실상부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킨 '재계의 큰 별'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이 29일 오후 6시 38분 서울 종로구 서울대 병원에서 숙환으로 영면했다. 향년 89세.

빈소는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다. 영결식은 4월 2일 오전 8시 열릴 예정이다.

조 명예회장은 고 조홍제 효성그룹 창업주의 장남으로 경상남도 함안에서 태어났다. 일본 와세다대에서 응용화학을 전공, 이후 미국 일리노이 공과대학원에서 화공학 석사 학위까지 받으며 대학교수를 꿈꿨다.

하지만 사업을 도우라는 부친 뜻에 따라 1966년 귀국해 효성물산에 입사하며 경영자의 삶을 시작했다.

 '산업입국(産業立國)' 경영철학 실천한 '만능 경영인'

1999년 6월 스판덱스 공장 준공식에 참석한 조석래 효성 명예회장(앞줄 오른쪽). 사진 = 효성그룹.
1999년 6월 스판덱스 공장 준공식에 참석한 조석래 효성 명예회장(앞줄 오른쪽). 사진 = 효성그룹.

동양나이론 울산 공장을 한창 짓고 있던 1967년, 조 명예회장은 고 송인상 전 재무장관의 딸인 송광자 여사와 결혼했다. 신혼여행지로는 이탈리아 포를리를 골랐다.

당시 이름도 생소했던 이곳을 택한 이유는 동양나이론 기술진이 포를리에서 생산 기술 연수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 명예회장은 이곳에서 직원들과 밤새 기술 토론을 벌일만큼 기술에 대한 열정이 강했다.

1971년 조 명예회장은 국내 민간기업 최초로 기술연구소를 설립했다. 이는 2006년 효성기술원으로 개편됐다. 효성기술원은 대표 제품인 스판덱스와 타이어코드 등이 태어난 곳이다.

조 명예회장은 신사업 추진을 과감하게 진행해 '만능 경영인'으로 꼽히기도 한다.

1973년 동양폴리에스터, 1975년 효성중공업 설립을 주도하며 조홍제 창업 회장 때부터 강조해온 '산업입국(産業立國)'의 경영철학을 실현했다. 

조 명예회장은 지난 1988년 12월 신입사원 연수 특강에서 "산업입국의 정신이란 보다 좋은 제품을 만들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노력한다는 뜻"이라고 했다.

또한 "효성의 기업들은 한번 쓰고 없어지는 소비재 산업보다는 생산재 산업이나 다른 산업의 원료 즉 중간 소비재 산업에서 많은 성장과 발전을 거듭해 왔으며 그 바탕에는 우리의 창업이념인 산업활동을 통해 국가에 봉사한다는 투철한 정신이 깔려 있었다"고 설명했다.

1980년대 후반에는 합성섬유를 넘어 합성수지인 폴리프로필렌(PP) 사업에도 도전했다.

당시에는 나프타를 분해해 PP를 만드는 기술을 선진국이 선점하고 있었는데, 미국의 한 기업이 '탈수소공법'이란 신기술을 개발했다는 소식을 듣고 이를 사들였다.

주위 임원진은 기술 구매를 만류했지만, 조 명예회장은 강하게 밀어붙여 큰 성공을 거뒀다. 이를 통해 효성은 스판덱스는 물론, 타이어코드 세계 1위 기업으로 성장했다.

한미 FTA 필요성 제기·일자리 창출 주도...경제계 중추적 역할

노무현 정부 때인 2004년 5월 재계 대표로 청와대를 방문한 조석래(앞줄 가운데) 효성 명예회장.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고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이 함께 청와대를 찾았다(조 명예회장부터 시계방향). 사진 = 효성그룹.
노무현 정부 때인 2004년 5월 재계 대표로 청와대를 방문한 조석래(앞줄 가운데) 효성 명예회장.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고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이 함께 청와대를 찾았다(조 명예회장부터 시계방향). 사진 = 효성그룹.

기업 경영뿐만 아니라, 경제계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맡아왔다.

2007~2011년에는 제31·32대 전국경제인연합회(현 한국경제인협회) 회장을 맡았다.

당시 조 명예회장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필요성을 최초로 제기하며, 민간 외교 부문에서 큰 공헌을 했다.

또, 대일 무역 역조 해소, 한일 간 대·중소기업의 상생협력, 한일경제공동체 추진 등 한국 경제인들의 자유로운 활동을 위해 앞장섰다.

또한 재계를 대변해 규제 개혁 등을 정부에 건의하고 일자리 창출 및 투자 활성화를 주도했다.

조 명예회장은 "물고기가 연못에서 평화롭게 노닐고 있는데 조약돌을 던지면 사라져버린다"며 "돈도 같은 성격이어서 상황이 불안하면 투자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한국경영자대상과 수출 유공 대통령 표창, 금탑산업훈장 등을 수상한 바 있다. 지난해 8월에는 우리나라와 일본의 관계를 개선한 공로로 제8회 한일포럼상을 받기도 했다.

조 명예회장의 유족으로는 부인 송광자 여사, 장남인 조현준 회장과 차남 조현문 전 부사장, 삼남 조현상 부회장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