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일 오후 7시 경 서울 회기동 거리. 사진=이코노믹리뷰 박민규 기자

[이코노믹리뷰=박민규 기자] 정부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발 경제 위기의 타개책으로 내놓은 '긴급재난지원금'은 한동안 온 나라를 들썩이게 하는 화두였다. 그러나 지급 시점으로부터 한 달 여 간이 지난 현재, 재난지원금 사용 및 그에 따른 결과가 어느 정도 윤곽이 드러나면서 실제 효용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평범한 동네 상권의 경우, 상인과 소비자 모두 재난지원금 사용 실태와 효과에 대해 미온적 반응을 보였다. 한시적이고 미미한 매출 증가를 경기 활성화의 지표로 단정할 수 없고, 또 재난지원금의 일회성 지급으로는 소비심리를 개선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지난 3일과 4일,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이문동·휘경동 일대와 경기 김포 등의 주거 지역을 중심으로 재난지원금 사용 실태 및 효과에 대해 물었다. 


 소비 진작? 허리띠 졸라매고 필요한 것만 사더라


이문동에 있는 T 휴대폰 대리점주 A씨는 가게 문 앞에 '긴급재난지원금 사용 가능'이라는 안내문을 붙여놨지만 단말기 구매로 이어지는 일은 좀처럼 없었다고 설명한다. A씨는 "재난지원금을 쓰려고 오는 손님들은 주로 에어팟 같은 블루투스 이어폰이나 액정 보호 필름 등 액세서리류를 찾는다"면서 "이참에 휴대폰을 바꾸려는 생각은 잘 안 하는 듯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안 그래도 돈 쓸 데가 많은데, 휴대전화가 없는 사람이면 몰라도 정 필요하지 않은 이상 (새 기기를) 구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하면서, "더구나 (재난지원금을 사용한) 통신비 납부가 불가하니까 스마트폰을 살 수 있다고는 더욱 생각 못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A씨에 따르면 T 대리점의 매출은 코로나19 유행으로 평년 동기 대비 40% 수준으로 하락했고, 재난지원금 지급 이후 코로나19 확산이 한창일 때보다 30% 정도 늘었다. 회복 단계로 보기는 힘들고, 단지 조금 좋아진 수준이라는 전언이다. 그러면서 그는 "현금화 가능하냐고 물어보는 사람도 많았다"고 전했다.

같은 동네에서 J 약국을 운영하는 B씨는 "공적마스크 판매가 현 매출의 90%"라며 "마스크를 제외하면 매출은 오히려 줄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감염 우려와 마스크 착용 의무화 등에 따라 마스크 판매량은 정점을 찍었지만, 한편으로 감기 환자 수가 감소하면서 다른 약물에 대한 수요가 떨어졌다는 설명이다.

그는 "파스와 진통제 등의 구매율도 비슷하고, 건강 보조제의 경우 1~2개월 전 들여온 그대로 남아있다"면서 매출에 변화가 있었어도 미세한 정도였다고 분석했다. 

Y 안경원의 경우,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의 50%를 하회하는 수준으로 떨어졌다. 재난지원금 지급 이후 매출 회복 정도를 묻는 질문에 사장 C씨는 "체감 상 변화가 없다"고 답했다. 그는 "조금이나마 나아지기야 했겠지만, 그래봤자 (매출 증가는) 한 달 갈 것"이라면서 "원상 복구는 어림 없다"며 고개를 저었다.

C씨는 재난지원금 규모가 한 달도 되지 않아 다 쓸 수 있는 금액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사람들이 재난지원금을) 지금 쯤이면 최소 50%, 보통 70% 정도는 쓰지 않았겠냐"며 "반짝 효과도 체감하기 어려운데, 임시방편만으로는 (경기 회복을) 기대하기 힘들 것"이라고 언급했다.

C씨는 "손님들은 평소처럼 (돈을) 쓸 뿐"이라고 설명하는 한편, 새로운 손님들의 발길이 늘었다는 희소식도 전했다. 그는 "고가 (안경) 렌즈의 경우 (가격) 부담이 있어 신규 고객의 구매는 보통 월 10번 정도에 그치는데, 요즘 15번 가량으로 늘었다"며 "따지자면 150% 수준으로 증가한 셈"이라고 밝혔다.

대학가에서 조금 떨어져 주거 지역과 인접한 한 주상 복합 건물의 W 이불 가게는 코로나19 확산으로 매출이 반토막 밑으로 떨어진 이래 전혀 회복이 되지 않고 있다. 

사장 D씨는 "사람이라도 다녀야 재난지원금을 쓰고 말고 할 것 아니냐"며 "예전에는 밤 10시까지 (가게) 문을 열었는데, 요즘은 8시 반 전에 닫는다"고 한탄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인근 주거 지역이 재개발 사업 대상이 되면서 주민들의 이주 행렬이 이어졌다. 해당 가게가 자리한 거리는 대형마트 옆이라 평소 늦은 시간대까지 유동인구가 꽤 있는 편이었으나, 취재 당시 오후 8시가 되기 전임에도 지나가는 사람은 2~3명에 불과했다. 식당·약국·미용실 등 업종을 불문하고 곳곳이 문을 닫아 황량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미용실·네일샵 "나아지긴 했는데, 시기적 요인 무시 못 해"


▲ 지난 4일 오후 7시 경 회기역 사거리. 사진=이코노믹리뷰 박민규 기자

대면 시간이 비교적 긴 서비스산업으로, 코로나19발 타격을 특히 크게 입었던 미용업계는 어떨까.

회기동 소재 C 미용실은 지하철 1호선·경의중앙선·경춘선 3개 노선이 관통하는 회기역 근방의 황금 상권에 자리하고 있으나, 코로나19의 확산세가 극심하던 당시 매출이 평소의 3분의 1 수준으로 격감하는 등 진통을 겪어야 했다.

해당 가게는 취재 당시 쉬고 있는 직원이 없을 정도로 바쁜 모습이었지만, 미용사 E씨는 "매출이 평상시의 3분의 2 정도로 회복됐기는 한데, 체감을 잘 못하겠다"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염색·파마·클리닉 등 컷트보다 값이 나가는 시술의 수요도 별 다른 증감 추이를 보이지 않았다. 같은 지역의 W 미용실과 P 미용실 역시 이와 관련해 동일한 의견을 전했다.

속눈썹 시술을 겸하는 휘경동 소재 B 네일샵은, 직원 F씨의 말에 의하면 "손님 수가 코로나19로 평소 70% 수준으로 줄어들었으나, 현재 그때에 비해 약 15% 회복된 상태"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재난지원금은 매출 상승에 있어 '부차적 효과'다. F씨는 "여름 휴가철을 앞두고 네일·페디 (아트) 받으러 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면서 "새로운 손님들은 아니고, 원래 고객들이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참다가 재난지원금도 들어오고 코로나19 확산세도 누그러지니까 겸사겸사 오는 듯하다"고 진단했다. 


 학원, 애초에 재난지원금 영향 받는 업종 아니다


▲ 지난 5월 28일 경기 김포에 있는 한 입시학원에서 학생들이 수업을 듣고 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박민규 기자

경기 김포의 한 입시 학원은 평소 월 2000만원 이상의 수익을 올려왔지만, 지난 2월 중·하순 경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운영 중단 권고와 개학 연기 결정 등의 악재로 개원 이래 최악의 위기를 맞았다.

해당 학원의 원장 G씨는 "3월에 1000만원은 그냥 까먹었다"고 회상하면서, "2주 휴업이 끝난 후 입시가 급한 고등학생과 중학생들이 돌아오면서 현재 원생 70%가 복귀한 상태"라고 언급했다. 중·고등학생의 복귀율이 100%인 반면, 초등학생들은 코로나19의 국내 유행이 완화세를 보이던 4월 중·하순에도 기존의 20% 밖에 등원하지 않자 그는 아예 초등학생 대상 강의를 없애버렸다.

한편 G씨는 "나는 운이 좋은 케이스"라며 "이웃한 유도 체육관의 수강생은 6분의 1 수준으로 감소했고, 바둑 학원에는 현재 (전체 수강생의) 4%, 그러니까 1명만 나온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예체능 분야이거나 유아·초등학생 수강생의 비중이 높은 학원일수록 코로나19 리스크에 취약했다는 설명이다.

G씨가 운영하는 학원의 매출은 3월 바닥을 찍은 뒤, 4월과 5월 각각 3월 대비 120%와 160~170% 수준으로 회복됐다. 코로나19 사태에서도 오히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매출이 증가한 것이다.  

이와 관련, G씨는 "(학원) 업종 자체가 재난지원금의 영향권이 아니다"고 주장한다. 그는 "애초에 (자녀를 학원에) 보낼 집만 보내고, 가세가 크게 기울지 않는 이상 (학부모들이) 학원비는 웬만하면 낸다"고 말했다. 즉, 학원 수요는 재난지원금과 큰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사교육이 의식주와 관련된 필수 영역은 아니지만, 입시 열기가 높은 현 사회 풍조에 따라 '고정 지출 내역'으로 정착했기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재난지원금으로 밀린 학원비를 납부한  경우는 70여명의 원생 가운데 단 한 사례에 불과했다.

▲ 서울 서초구 강남역에서 시민들이 마스크를 쓴 채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임형택 기자

동네 상권의 대다수 자영업자들은 입을 모아 "매출 회복 단계라고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재난지원금의 일회성 지급만으로는 소비 심리 개선에 역부족이며, 계절적 수요의 영향도 있어 재난지원금의 효과만 따로 측정하기 힘들다는 설명이다.

이들 가운데 몇몇은 "동네 마트만은 사람들로 바글바글하더라"면서, 재난지원금의 수혜가 주로 식료품 관련 특수 업종들에 한정된 것으로 느꼈다. 심지어 이들조차 재난지원금을 수령한 뒤 사용 가능한 마트부터 찾아 식료품과 생필품, 아기용품 등을 우선순위로 구매했다는 전언이다.

한편, 광진구 중곡동에 거주하는 직장인 H씨는 "주로 회사 근처에서 식사하니까 편의점 외에는 동네에서 잘 이용 안 한 것 같다"며 "야식도 평소 시켜 먹는 데서 주문하고, 지출 면에서 크게 달라진 건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재난지원금은) 현금화도 안 되는데 아껴 쓰기라도 해야 할 것 아니냐"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