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박정훈 기자] 정부는 최근 각 대기업 총수들에게 기업 운영의 권한이 집중되는 것을 경계하는 ‘지배구조 개선’을 지속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코로나19의 확산으로 특수한 위기 상황이 지속되면서 정부의 원칙 중심 기조에 대해 재계에서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대기업 “우리도 힘들다”

지난 11일 경영자총연합회(이하 경총)은 코로나19로 인해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기업 223개사를 대상으로 우리나라가 겪은 3번의 경제위기에 대한 기업들의 충격 체감도를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충격 체감도를 기준점인 100으로 설정한 이 조사에서 기업들은 IMF 외환위기는 104.6, 코로나19 사태는 134.4로 체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 대상인 223개 기업에는 국내 주요 대기업·중소기업들이 거의 대부분 포함됐다. 기업들이 느끼고 있는 위기감은 같은 조사에서 향후 채용과 투자계획의 축소로 드러났다. 조사 대상 기업들의 26.5%는 ‘신규채용을 당초 계획보다 축소할 것’이라고 답했고 22.4%는 ‘신규투자를 당초 계획보다 축소할 것’이라고 응답했다. 일련의 조사 결과는 코로나19의 여파가 기업의 규모를 가리지 않고 큰 위협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 출처= 한국경영자총연합

대기업 총수들은 자사의 분위기 침체를 막기 위해 직접 전면에 나서는 등으로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은 미-중 간 힘겨루기가 계속되는 가운데 양국과 복잡하게 얽힌 다자간 이해관계를 풀기 위해 긴급하게 중국 시안 반도체 공장으로 직접 출장을 떠나기도 했다. 또 이 부회장은 전통적으로 삼성과 껄끄러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현대차그룹의 정의선 부회장을 직접 만나 차세대 전기자동차 배터리 개발과 관련해 양사 간 시너지를 도모하는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LG 구광모 회장은 LG화학 서산공장에서 발생한 사고의 수습을 위해 헬기를 타고 직접 현장을 방문해 책임자들에게 안전관리 체계의 개선을 지시했다. SK 최태원 회장은 비대면(Untact) 방식으로 코로나19 시국을 견디고 있는 계열사 담당자들을 직접 만나 응원의 메시지를 전하는가 하면, SK주식회사를 통한 바이오 사업부문에 대한 투자 확대를 지시하기도 했다.  

‘보여주기식 퍼포먼스’라는 일각의 지적도 있다. 그러나 총수들이 직접 나서 앞으로의 방향성에 대해 명확하게 보여준 행보들은 그 자체로 의미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 중국 시안 반도체 공장을 방문해 현장을 점검하고 있는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사진 가운데). 출처= 삼성전자

이러한 가운데 정부는 기업 총수일가와 연결된 내부 거래의 정황들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물론 재계는 기업 지배구조와 관련한 ‘위법 사항’을 지적하는 정부의 취지를 충분하게 공감하고 있다. 그러나 몇몇 기업의 사례에 대해 재계에서는 아쉬움을 표출하기도 했다. 

재계 한 관계자는 “대기업들의 윤리 경영은 중요한 문제이고, 정부의 방향성도 공감하지만 기업들에 대한 부정적 프레임이 다소 강조되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라면서 “원칙의 적용도 필요하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기업 규모와 상관없이 모두가 힘을 내 경제 위기 극복을 이끄는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정부가 기업들을 응원하는 관점의 접근도 필요하지 않나 싶다”라고 말했다.

정부의 ‘딜레마’ 

일각에서는 대기업을 대하는 정부의 다소 강경한 관점이 ‘그럴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그간 국내 대기업들은 시장에서의 독점적 지위나 총수 일가의 입지를 강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많은 부정행위들을 저질러 왔다. 단적인 사례가 지난 정부의 국정농단 세력과 연루된 국내 대기업들의 ‘거래’ 기록들이다. 이러한 거래는 시장에서의 공정 경쟁을 저해하고자 하는 의도가 다분했다. 이에 새롭게 들어선 현 정부가 정경유착에서 시작된 대기업의 여러 범법 행위에 대해 강경하게 대응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이다. 

최근 정부의 조사 기관들이 밝힌 대기업 규제에 대한 공식 입장들에서는 “각 기업들이 심각한 경제위기 상황을 대면하고 있는 것은 정부도 인식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대기업들이 오랜 기간 동안 자행해 온 불법들을 묵인함으로 편의를 봐 줄 이유는 없다”는 내용이 지속적으로 강조되고 있다. 

그러나 정부도 사상 유례가 없는 현재의 특수 상황을 마주하면서 대기업에 대한 나름의 ‘딜레마’를 마주하고 있다. 정부의 고민은 지난 21일 한국무역협회에서 개최된 ‘위기 극복을 위한 산업계 간담회’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에도 잘 나타나 있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코로나19로 대기업의 수주·생산이 감소해 중소 협력업체들의 일감이 줄었고 이 피해는 2차, 3차 협력업체로 갈수록 더 커지고 있다”라면서 “정부, 대기업, 중소기업 그리고 각 기업에 소속된 노사 구성원들의 긴밀한 협력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