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유통기업 이온그룹의 대형마트 '이온 빅 마트'  사진= 이코노믹리뷰 박정훈 기자

[이코노믹리뷰=박정훈 기자] 특정 산업계의 시스템이나 규제를 정하는 과정에서 국가가 어느 선까지 개입해야 하는가는 각 나라의 상황에 따라 다르다. 그렇기에 경제 구조가 유사한 선진국의 방법이라고 할지라도 그를 그대로 따라갈 수는 없다. 그러나 같은 사안을 대하는 다양한 선례들은 충분히 참고할 만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유통산업에 대한 규제도 우리나라보다 앞서 고민했던 해외의 사례들은 충분히 참고할 만한 가치가 있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극단의 대립이 나타나고 있는 상황이라면.

유럽 ‘효율성’ 우선 

해외 유통산업의 규제 사례들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것은 바로 1973년과 1996년 두 차례에 걸쳐 강화된 프랑스의 대규모점포 신규출점 규제다. 1973년 프랑스는 영세 사업자 보호를 위해 대규모점포의 출점 규제를 주된 골자로 하는 ‘르와이에(Loi Royer) 법’을 제정했다. 이 법은 면적 1500㎡ 이상의 점포를 신설하거나 확장을 할 때 각 지자체의 ‘지역 도시계획 위원회(Regional Zoning Board)’로부터 승인을 얻는 것을 기본으로 하는 규제였다. 그로부터 23년 후인 1996년 프랑스 정부는 이전의 규제보다 더 엄격해진 ‘라파랭(Raffarin) 법’을 제정해 지자체로부터 의무적 승인을 받는 신규 출점 점포의 규모를 300㎡ 이상으로 줄였다. 그러나 이렇게 강화된 규제 하에서 프랑스 유통산업의 효율성은 점점 떨어졌다. 이에 위기를 감지한 사르코지 대통령은 2009년 1월부터 ‘경제현대화법(Economic Modernization Act)’ 이라는 유통규제완화 법안을 시행한다. 법안의 시행으로 프랑스 유통업계의 대형 신규점포 허가 대상 기준이 종전 300㎡에서 1000㎡이상으로 완화됐다.

비슷한 맥락의 규제 강화는 이탈리아에서도 있었다. 1998년 이전까지 아탈리아의 모든 소매유통 업체들은 신규 입점 시 지방 정부에 의무적으로 허가를 받아야 했다. 그러나 강한 규제로 인해 유통산업군의 효율성이 저하되는 부작용이 나타나자 이탈리아 정부는 1998년 ‘베르사니(Bersani) 법’ 제정을 통해 영업면적 1500㎡ 이상의 중대형점포에 한해 지방정부 상업 도시계획(Commercial Zoning Plan)에 의해 승인을 받도록 하는 등으로 규제를 완화했다. 유럽에서의 유통규제는 산업 효율성을 저해하지 않는 선에서 이뤄지는 성향이 강하게 드러났다.  

일본 ‘일거양득 도모’ 

그런가하면 우리나라 유통기업의 운영 시스템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일본에서도 1970년대 유통산업의 규제에 대한 고민들이 있었다.  

일본 정부는 1974년 중소소매업체의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대규모소매점포법(大規模小売店舗法, 이하 대점법)을 제정했다. 이 법은 도(都), 도(道), 부(府)급 대도시에서는 면적 3000㎡ 이상의 점포 출점을 규제했고, 그 외 현(県)급 이하 지역에서는 면적 1500㎡ 이상 점포의 신규 출점을 규제의 대상으로 분류해 규제했다. 일본 유통기업들은 각 도시의 규제 제한 기준에 약간 못 미치는 점포를 내 우회적으로 출점하는 식으로 교묘하게 규제를 피했다. 이에 일본 정부는 출점 규제를 대상을 500㎡이상으로 강화하며 기업들을 견제한다. 

이러한 기조는 1990년대까지 이어지며 일본 유통업계의 규제는 흥미롭게도 미국을 통해 이뤄진다. 1997년 미국은 일본의 대점법이 일본 현지에 진출한 미국계 유통기업들의 정당한 영업활동을 제한하고 있다면서 ‘비관세장벽’을 문제삼아 이를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했다. 이에 일본 정부는 대규모점포의 출점과 영업에 대한 규제를 간접 방식으로 전환한 대규모소매점포입지법(大規模小売店舗立地法, 이하 대점입지법)을 제정해 2000년부터 시행한다. 대점입지법은 출점 점포의 규모 등 외견을 규제하지 않는 대신 주변 입지의 교통이나 인근 거주민의 편의성을 제고하기 위해 유통업체가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사항들을 규정했다. 이 법의 근간에는 대형 유통점포의 출점을 직접 규제로 견제하는 것보다는 점포의 출점으로 지역의 균형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고자 하는 인식이 깔려있다.    

미국 ‘규제 없음’

미국의 경우 각 주(州)마다 상세한 내용이 다르지만 지역의 토지이용에 관한 조례 이외에는 특별히 대형 유통업체들의 출점이나 운영시간을 규제하는 법안은 없다. 미국에서도 과거에는 영업 요일을 규제하는 법안이 잠시 시행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유럽이나 일본처럼 기업의 출점을 견제하는 것과는 완전히 관점이 달랐다. ‘일요일 거래금지법(Sunday Closing Law)’이라 불린 미국의 유통규제는 기독교 예배를 중요하게 여기는 종교적 이유, 가족 간 유대감 증대 그리고 노동자의 휴식 등을 위한다는 의도로 시행됐다. 그러나 현재는 지역에 따라 이를 지키는 곳도 있고 지키지 않는 곳도 있는 등으로 여겨지며 거의 유명무실해졌다. 

▲ 미국 대형 오프라인 유통채널의 상징 '월마트' 출처= 월마트

이처럼 우리나라보다 앞서 대규모상점의 시장 진입에 대한 규제를 고민한 국가들의 선례에서 나타나는 공통점은 바로 ‘산업 전반의 효율성 제고’다. 미국을 제외하고 우리보다 앞서 같은 문제로 고민했던 주요 국가들은 공통적으로 대규모 점포 규제 강화로 인한 시행착오를 겪었다. 이후, 유통산업에서 발생할 수 있는 효율성을 저해하지 않는 수준의 저강도(低强度) 규제가 이뤄지는 식으로 결론을 내렸다. 

일련의 선례들에 대해 서강대학교 경제학부 주하연 조교수와 연세대학교 상경대학 경제학부 최윤정 조교수는 공동 집필한 논문 ‘대형마트 진입규제 및 영업규제 정책에 대한 고찰’(2015) 에서 “대규모상점의 시장진입은 유통산업 내 경쟁을 강화시켜 기존 영세 소규모 유통업체의 퇴출을 발생시켰지만, 이는 산업 전반에 있어서는 효율성의 제고를 가져왔다”라면서 “대규모상점 진입을 억제하는 정부의 정책은 대형 유통체인업체들로 하여금 소규모 슈퍼마켓 형태로 시장에 진출하는 유인으로 작용해 오히려 소규모 상점간 경쟁을 심화시키고 업체들의 퇴출을 가속화했으며, 산업 생산성에도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온 것으로 나타났다”라고 정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