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기업의 운영, 기업이 생산하는 상품 및 서비스에서 기술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물론 몇몇의 실패사례도 있으나 이는 현실세계와 기술의 엇박자, 혹은 조직 내부의 문제라는 것이 중론이다. 이는 역으로 몇몇 문제만 해결한다면 기술과 기업의 절묘한 진화는 계속될 가능성이 높고, 그 비중은 더 커질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재미있는 대목은 기업이 상품이나 서비스를 효과적으로 제공하기 위해 택한 기술이 아예 기업의 정체성으로 굳어지는 현상이다. 기업활동에서 기술, 특히 ICT 기술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으로 커지다 못해 '힘의 권력관계'가 역전되는 순간이다. 기술기업이라는 키워드를 이해하는 지름길이다.

▲ 출처=이코노믹리뷰DB

핀테크부터 인슈어테크까지
세계은행에 따르면 2017년 글로벌 해외송금 규모는 6248억달러에서 2019년 6890억달러로 10%가량 성장했다. 또 다른 시장조사 업체인 주니퍼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핀테크(fintech) 송금 업체의 시장점유율은 2015년 2.5%에 머물렀으나 2019년에는 약 12%까지 비중이 늘어났다. 핀테크 시장은 확장일로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핀테크 시장이 커지고 있는 점도 눈여겨 볼 포인트다. 미국 시장조사업체 이마케터와 글로벌 컨설팅 회사 베인앤드컴퍼니의 세대별 핀테크 인식에 대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18세에서 34세 사이 미국 인터넷 사용자 중 약 75%가 IT 회사의 핀테크 상품을 구매할 생각이 있다고 답했다.

핀테크는 최근 테크핀으로 불리기도 한다. 금융을 기반으로 ICT 기술을 덧대는 것이 아니라, ICT 기술을 중심에 두고 금융을 배치하는 패턴이다.

▲ 삼성페이가 가동되고 있다. 출처=삼성전자

핀테크, 테크핀의 사례는 기술이 기업의 정체성을 100% 바꿔버리는 단적인 사례다. 즉 기술의 등장으로 기업의 DNA가 철저하게 기술 중심으로 변신한다는 뜻이다. 기술이 수단이 아니라 기업 그 자체로 변하는 순간이다.

카카오뱅크가 대표적이다. 정규돈 카카오뱅크 CTO는 한 컨퍼런스에서 “카카오뱅크의 경우 개발자가 단순히 기둥으로 버티는 것이 아니라,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직접적인 피드백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카카오뱅크의 경우 개발자 직군이 41%. 서비스 및 상품 직군이 20%, 고객 서비스 직군 18%, 기타 직군 21%로 구성되어 있다. 일반적인 IT기업이라면 모르겠지만, 금융회사의 관점에서 보면 개발자 직군의 비중은 매우 높다”고 말했다.

▲ 카카오뱅크 정규돈 CTO. 출처=카카오

ICT 모바일 기술로 은행이라는 기업의 체질을 바꾸는 것에 성공한다면, 이러한 파급력을 기존 은행을 넘어 금융권 전체에 떨치는 것도 가능하다. 정 CTO는 “카카오뱅크의 등장으로 많은 은행 앱들이 이전에 복잡한 콘텐츠, 기능에서 단순하게 바뀌었다. 카카오뱅크로 인해 국내의 디지털 금융 경제력이 상승하게 되었다”면서 “카카오 기술을 도입해 오픈소스 기반 은행 시스템 개편 톰캣, 노드, 엔진X와 같은 기술을 도입했다. 현재는 모든 은행들이 이런 시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프롭테크(Prop Tech)라는 단어도 중요하다. 부동산(property)과 기술(technology)을 결합한 용어로 부동산 업무와 ICT 기술의 만남을 의미한다. 단순한 O2O 전략을 모바일 기술로 풀어내 부동산 사업을 키우는 것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ICT 기술을 통해 부동산 업무의 체질을 완전히 바꾸는 것이 특징이다.

국내에서는 직방, 다방을 운영하는 스테이션3가 있다. 이들은 ICT 기술을 통해 기존 부동산 산업을 더 편리하고 효율적으로 전개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이를 바탕으로 아예 ICT 기술을 중심에 두기도 한다.

푸드테크(Food tech)도 있다. 주로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이나 요기요 및 배달통을 가동하는 딜리버리히어로가 주역이다. 배달음식 시장에서 O2O 기술을 바탕으로 혁신을 추구하는 것에서 시작하지만, 종국에는 자율주행로봇 및 인공지능 등을 활용한 미래의 먹거리 플랫폼 전반을 상징하기도 한다.

현재 국내 푸드테크 현장에서 가장 두각을 보이는 곳은 우아한형제들이며, 자율주행로봇 딜리플레이트의 행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딜리플레이트는 실내 레스토랑 전용 자율주행 로봇이며 총 4개의 선반을 통해 한 번에 4개의 테이블에 음식을 서빙할 수 있다. 최대 적재용량은 50킬로그램(kg)이며 점원이 딜리플레이트의 선반에 음식을 올려놓고 테이블 번호를 누르면, 딜리플레이트가 알아서 주문자의 테이블까지 최적의 경로로 음식을 싣고 찾아간다. 도중에 길을 막고 있는 장애물을 마주치면 스스로 피해간다.

우아한형제들이 지난해 7월 서울 송파구에 있는 이탈리안 퓨전 레스토랑 ‘메리고키친’에 시범적으로 선보인 이후 딜리플레이트를 도입하는 매장이 많아지고 있다. 렌탈 프로그램을 시작한지 두달여만에 전국 12곳 식당에서 18대가 운영되고 있다. 실제로 딜리플레이트를 렌탈해 사용하고 있는 속초 청초수물회앤섭국 지상엽 지배인은 “무거운 그릇을 끊임없이 나르는 일을 딜리플레이트가 대신해주면서 직원들은 고객과의 소통에 시간을 더욱 많이 할애할 수 있게 됐다”며 “고객 응대 서비스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만큼 서빙로봇에 대한 긍정적인 측면이 크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우아한형제들 로봇사업실 김요섭 이사는 “단순 음식 주문 중개를 넘어 푸드테크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 서빙로봇 상용화 및 렌탈 프로그램을 국내 처음으로 선보였다”며 “올해 연말까지 200개 매장에 딜리플레이트 300대 공급을 목표로, 다양한 메뉴를 취급할 수 있도록 로봇 솔루션을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푸드테크에 로봇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는 온라인 플랫폼을 기반으로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기술력도 포함되며, 이를 바탕으로 '먹거리 전반의 생태계'를 새롭게 바꾸는 시도가 이어진다.

인슈어테크(Insur tech) 존재한다. 보험과 ICT 기술의 만남이다. 보험(Insurance)과 기술(Technology)의 합성어로 데이터 분석, 인공지능 등의 정보기술을 활용해 기존 보험산업을 혁신하는 서비스를 말한다. 국내에도 다양한 기업들이 뛰어든 가운데, 단독 플랫폼 사업자로는 보맵이 가장 발 빠른 행보를 보이는 중이다.

보맵은 지난 1월 기준 보험금 간편청구, 내 보험 관리, 건강분석을 제공하며 서비스 2년만에 누적다운로드 200만과 회원수 150만 명을 기록했다. 기업 대상의 비즈사이트 개설, 국내 다양한 플랫폼 기업과 제휴로 B2B사업도 확대하고 있으며 최근 하나금융그룹 계열 3사로부터 85억원 투자를 받아 누적 투자금만 215억원을 달성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꿈을 꾸고 있다. 류준우 보맵 대표이사는 “이번 투자를 발판삼아 해외시장에 적극 진출할 계획이다. 올 상반기 싱가포르 법인 설립을 시작으로 동남아를 넘어 글로벌 인슈어테크 기업으로 성장할 것이다”고 포부를 밝혔다.

꼬리가 몸통을 흔들 때

기업에게 기술은 활용해야 할 대상이고, 목표는 금전적인 이익을 얻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다. 특히 기술의 중심이 일반 제조업에서 ICT로 빠르게 이동하며 플랫폼 비즈니스가 강세를 보이기 시작했고, 이제는 활용해야 할 대상이자 수단인 기술이 아예 기업의 정체성을 바꾸는 장면이 연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기업이 활동하는 시장 자체를 변화시키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O2O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O2O 시장이 커지며 플랫폼 비즈니스, 구독경제, 온디맨드로 대표되는 디지털 전략이 강세를 보이며 시장의 태생적 변화를 끌어내기 때문이다.

실제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최근 국내 O2O 시장 현황을 처음으로 점검한 결과 관련 기업은 555개, 여기서 일하는 플랫폼 노동자의 숫자만 52만1000명을 기록했다. 국내 O2O 시장은 거래에 따른 수수료, 광고 서비스 시장만 약 3조원에 달한다. 기존 오프라인 사업을 온라인과 연계했기 때문에 기존 서비스의 활성화에 방점이 찍히고, 생활밀착형 서비스를 전개하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에 말 그대로 생활 분야에 종사하는 기업이 179개로 가장 많다. 이어 모빌리티 121개, 인력중개 100개, 숙박 및 레저 65개, 식품 및 음식 47개, 부동산이 43개로 집계됐다.

▲ 출처=이코노믹리뷰DB
▲ 출처=이코노믹리뷰DB

지난해 기준 국내 O2O 기업의 거래액만 97조원이며 이는 전년 80조원 대비 22.3% 성장한 수치다. 서비스 매출액 총합은 3조원인 가운데 식품과 음식 분야가 8조4000억원, 모빌리티가 6조4000억원, 생활이 5조원, 인력중개가 4조2000억원 순서다.

O2O의 등장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연결해 기존 구사업의 충격을 끌어낸다는 점에서, 기업이 활동하는 시장을 바꾸고 업의 본질을 바꾼다. 하나의 사업 영역이 온라인과 오프라인 모두에서 시작되며, 결국 구사업의 무대인 오프라인의 속성을 바꾸기 때문이다.

ICT 테크 인사이더 연구소의 강화송 전문위원은 "기술은 이제 수단이 아닌 기업의 목적인 이윤과 동일시되는 정체성"이라면서 "ICT 기술의 발달로 기업의 체질이 변하는 것을 넘어 기업이 활동하는 무대가 빠르게 디지털 전환을 이뤄내며, 결국 여기서 승리하는 기업은 업의 본질을 변화시키거나 업의 본질을 가장 잘 이해한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꼬리(기술)가 몸통(기업, 시장)을 흔드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