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전현수 기자] 페미니즘에 중도적인 입장을 취한 게임 업계가 난관에 봉착했다. 여당인 더불어 민주당에서 게임 업계 ‘페미니즘 사상검증’의 피해자를 돕겠다며 제보와 조치를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지지와 반발의 목소리가 동시에 분출하고 있다.

게임 업계의 사상검증 문제란 주로 일러스트레이터(이하 일러레)나 성우가 참여하는 게임에서 ‘페미니즘’ 사상을 가지고 있는 일러레, 성우가 발견되면 남성 이용자들을 중심으로 해당 게임을 보이콧하는 현상을 일컫는다. 게임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남성 이용자들이 다발적으로 게임을 보이콧 할 경우 게임사는 해당 게임의 게임성과 관계없이 운영에 직격탄을 맞게 된다. 때문에 업계에선 매우 민감한 문제로 여기고 있다. 

▲ 소녀전선 이미지. 출처=소녀전선 공식홈페이지

게임 업계 일러레, 성우들의 사상검증은 주로 SNS를 통해 이루어진다. 만약 페미니스트라는 게 발견되면 빠르게 이슈가 공론화되고 이용자들은 게임사에 해당 일러레, 성우가 참여한 캐릭터의 삭제 등의 조치를 요구한다. 대표적인 사례로 지난 2016년 발생한 넥슨의 ‘클로저스’ 사태가 있으며, ‘트리 오브 세이비어’ ‘어센던트 원’ 스마일게이트의 '소울워커' 키위웍스의 ‘마녀의 샘’ XD글로벌의 ‘소녀전선’ '벽람항로' 네오위즈의 ‘디제이맥스’ 등 게임도 해당 이슈를 겪은 바 있다.

민주당 청년을지로 “다양성이 존중받는 문화 만들 것”

▲ 더불어민주당 전국청년위원회 청년을지로분과위원회이 게임업계 사상검증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섰다. 출처=트위터 갈무리

더불어민주당 전국청년위원회 청년을지로분과위원회(이하 '민주당 청년을지로')는 이 같은 문제로 해고된 프리랜서를 돕겠다는 명목으로 지난 18일 SNS 공식 계정을 통해 이와 관련한 피해자들의 제보를 받는다는 글을 게시했다. 제보를 받는 작업은 아직 진행중이며, 민주당 청년을지로는 법률적 방안을 검토하는 한편 공론화도 진행하며 이들을 돕겠다는 방침이다.

민주당 청년을지로는 트위터를 통해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 영화를 시청했다, 왕자는 필요 없다는 티셔츠를 구매했다, 여성민우회의 의견을 RT했다 등의 핑계로 페미니즘을 반사회적으로 규정하려는 일부 게임 이용자들의 태도야말로 '게임은 우리만의 문화'라는 공허한 주장에 지나지않다”면서 “당 위원회는 한국 게임 산업과 문화의 미래를 위해, 게임업계에서의 사상검증을 처벌하고 보다 다양성이 존중받는 문화를 만들어 나가고자 한다”고 밝혔다.

해당 트윗은 프리랜서 일러레들과 일부 사상의자유를 주장하는 이용자들이 리트윗과 좋아요로 반응하고 있다. 22일 기준 1000여개의 리트윗과 90여개 좋아요를 기록 중이다.

“남성 혐오자를 위해 남성이 돈을 써야 하나” vs “사상과 게임 콘텐츠는 별개”

그러나 반발 여론도 거세다.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등장하는 극단적인 페미니즘을 반사회적 행동으로 분류하는 분위기가 거센 가운데 게임 소비자들의 선택은 자유라는 주장이다. 또한 게임 업계 입장에서도 프리랜서 노동자를 경영상의 이유로 고용·해고할 자유가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특히 일러레와 성우가 참여하는 게임을 즐기는 남성 이용자들은 강하게 반발한다. 평소 일러스트가 등장하는 미소녀 게임을 즐기는 A씨(남·27)는 “극단적 페미니스트들은 남성을 혐오한다. 그런데 남성 게이머들이 결제한 돈이 그들의 급여로 들어간다고 생각하면 화가 난다”면서 “주요 소비자로서 게임 이용자는 당연히 제품에 대한 수정을 요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여성 이용자의 경우 해당 이슈에 대해 크게 신경쓰지 않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평소 비슷한 장르의 게임을 즐기는 B(여·26)씨는 “사상과 게임 콘텐츠는 별개로 보아야한다”면서 “SNS를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게 잘못은 아니지 않나”라고 밝혔다. B씨는 “가끔은 극단적인 수준이 아닌 페미니즘 성향에 대해서도 과도하게 반응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 벽람항로 이미지.. 해당 게임은 위 사례와 관계 없음. 출처=구글플레이스토어 갈무리

업계는 쉽지 않은 문제라는 입장이다. 게임에 사상적 이슈가 발생하면 이에 대해 어떤 조치를 취해도 비난을 면하기 힘들다. 주 이용자들의 요구대로 해당 직원과 계약을 종료하면 기업이 사상적 자유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고, 사상적 자유를 인정한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하고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이용자들의 보이콧에 게임 매출에 극심한 타격을 받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기업 입장에선 어느쪽으로 행동해도 타격을 받아 상당히 대응하기 힘든 이슈다”면서 “지난 몇 년 간 업계에서 해답을 찾지 못한 문제”라고 말했다.

현실적으로 기업이 완벽하게 사상검증을 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설명도 나온다. 해당 이슈를 겪어본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한때 회사에서 여성 프리랜서 일러레를 안 쓰는 분위기도 감지된 적이 있지만 사실 일러스트레이터의 상당 수가 여성이기 때문에 쓸 사람이 없던 상황도 생겼다”면서 “그렇다고 기업이 자체적으로 개개인의 사상을 검증할 수는 없지 않나”고 밝혔다.

이처럼 게임 업계에 지난 몇 년 간 지속된 사상검증 이슈의 논란은 현재 진행형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더불어 민주당 전국청년위원회의 행보에 관심과 우려가 공존하고 있다. <이코노믹리뷰>는 사상검증 자유 보호 활동을 펼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전국청년위원회 청년을지로분과위원회 남상섭 위원장과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아래는 남상섭 위원장과의 일문일답.

▲ 더불어민주당 남상섭 전국청년위원회 청년을지로분과위윈장. 출처=남상섭 위원장 페이스북 갈무리

사상검증 피해 제보 수집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어떤 조치를 할 계획인가

▶법률적으로 구제가 가능한 경우에는 법률적 도움을 드리고, 그렇지 못한 경우에도 사례를 최대한 수집하고, 게임계 내부에 은폐된 사건의 실체를 공론화함으로써 문제를 보다 면밀히 분석하고 정책적 해결책까지 찾아나가려 한다. 어려운 일이지만 오히려 저희 같은 위원회이기 때문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남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게임 업계에서 사상검증 이슈는 몇 년 전 부터 지속됐고 풀기 어려운 이슈로 평가 받고 있다. 최근에 활동을 기획한 계기는?

▶더불어민주당 전국청년위원회 청년을지로위원회는 2019년 3월9일에 발족한 위원회로, 4차 산업에 따른 노동시장의 변화로 인한 플랫폼노동자 및 프리랜서에 대한 권리 침해에 전문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위원회 내에 ‘비정형노동에 관한 특별위원회’(이하 ‘특위’)를 올해 8월에 구성했다. 특위 구성 후 사상검증 이슈가 발생하지 않았기에 이번이 첫 대응이고, 사상검증 이슈를 해결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내부적 우려도 컸던 것도 사실이지만 공식적으로 블랙리스트의 존재까지 언급된 현 상황에서 당장 발생한 문제를 두고 보기는 어려웠다. 사상검증 이슈는 단순히 ‘페미 논란’이 아닌, 헌법 제124조가 보장하는 ‘소비자보호운동이 헌법 제19조가 보호하는 ‘사상의 자유’가 내포된 ‘양심의 자유’, 헌법 제21조의 ‘표현의 자유’, 그리고 헌법 제15조의 ‘직업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어디까지 침해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즉, 불매운동이 특정한 사상 강요나 사상 포기 강요의 수단으로 악용되는지 실태를 조사한 후, 다양한 근로형태로 협업하는 게임제작 종사자들의 생존권과 직업 선택·수행의 자유를 침해하는지 살펴볼 계획이다. 부수적으로, 불매운동이 게임제작사의 업무를 방해하는지, 영업의 자유를 침해하여 공정해야 할 시장 질서를 위반하는지도 살펴보고자 한다.

현재까지 많은 제보가 들어왔나. 제보자들이 중점적으로 주장하는 건 무엇인가

▶어느 정도의 제보가 들어왔는지를 밝히기는 어려우나 관련 단체의 도움까지 받아 단기간에 꽤 많은 사례를 수집했다. 페미니즘에 적대적인 네티즌의 공격으로 받은 정신적 상처와 계약이 끊기면서 발생한 경제적 피해에 대한 증언이 주를 이루긴 했지만 급하게 단정 짓기는 어려우며 이후 공식적으로 정리해 발표하겠다. 

일러스터가 들어가는 게임의 특성상 아직까지 주 고객이 남성인 건 사실이다. 실제로 해당 이슈로 타격을 받은 기업이 많았고, 소비자들의 선택은 저지가 불가능하다. 때문에 게임사 입장에선 고객이 원하는 방향으로 운영을 할 수밖에 없다는 토로도 나온다. 

▶주 고객이 남성이고 이 때문에 공격적 여론에 회사가 흔들리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요구에 대응한다고 반드시 매출이 오르거나 피해를 완벽히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실제로 이번 사건(티키타카 스튜디오의 '아르카나 택틱스')에서는 회사가 빠르게 대응했음에도 불구하고 남성 고객층이 빠르게 이탈했고, 반대로 '영원한 7일의 도시'의 경우, 여성 유저들의 요구를 받아 성차별적 일부 콘텐츠를 수정했다는 이유로 남성 유저들이 극도로 반발하는 일이 있었으나 회사 측이 반발을 수용하지 않은 사례도 있다. 

페미니즘에 대한 극도의 반감이 남성들에게 널리 자리 잡힌 것 또한 문제다. 제보 채널을 통해 다양한 의견이 접수되어 조사를 한 결과, 실제 일러스트레이터들이 강경하고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어 반감을 산 경우는 일부였고, 성별과 무관하게 대부분은 여성의 노동인권을 지지하고 계약해지의 부당함을 말하는 등 오히려 아르카나 택틱스가 시대적 조류에 역행하는 신중치 못한 결정을 내린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을 피력해 주셨다. 반면, 아르카나 택틱스와 계약한 일러스트레이터의 교체를 강하게 주장하는 측의 주장 중에는 페미니즘 자체가 ‘반사회적 사상’이라거나 ‘정신병’이라는 주장도 흔히 볼 수 있었다. 이런 주장에 청년을지로위원회는 동의할 수 없고, 남녀 평등의 사회적 가치를 등한시 한 채 수익에만 매몰되어 실체가 불분명한 세력에 의해 경거망동하는 게임제작사의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해서라도 불매운동의 주체가 누구인지 밝히는 일을 지속적으로 해나가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