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사는 하셨습니까?'

요즘 검찰을 두고 국론이 뜨거운데, 바로 그 검찰 출신의 한 의원이 청문대상자에게 던졌던 첫마디다. 의도는 어쨌거나, 꽃구경도 식후사(食後事)다.

필자의 병원은 조용한 편이다.

어떤 병원에서는 수술이 끝난 환자를 일정기간동안 매일 내원하게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이유가 씁쓸하다. 수술 후 매일 치료받으러 오게 하면 대기실이 훨씬 북적거릴 것이다. 그러면 손님 많은 식당이 맛있어 보이듯 첫 방문한 환자들이 병원을 더 신뢰하게 될거라는 꼼수다.

필자의 병원은 돌출입, 윤곽 수술 날 하룻밤 입원했다가 퇴원하고나서  딱 두 세 번만 더 내원하니, 병원이 북적거릴 일이 없다. 물론 매일 치료 해드리겠다면야 만사 제치고 오시는 분들도 있긴 하겠지만 집도 멀고 오기도 힘든 전국구 단위의 환자들을 내원하게 하는 건 불필요하다는 생각이다.

환자 치료를 열심히 안하는 것 아니냐고 할지 모르나 전혀 아니다. 20년 가까운 기간 동안 똑같은 환자를 봐온 경험에 의한 것이다.

돌출입, 양악수술, 안면윤곽 수술의 경우 치료를 자주한다고 결과가 더 좋아지는 게 아니다. 결과는 수술 그 자체로 이미 결판난다. 너무 자주 치료를 하는 것은 환자가 아닌 ‘의사의 불안’을 반영하는 것일 수 있다.

필자의 경우 돌출입, 윤곽, 양악 수술은 보통 오후에 이루어진다. 최근 이십년간 오전에 수술을 시작한 적이 없다. 같은 수술을 계속하다보니 수술시간은 거의 루틴대로 일정하고 오후에 시작해도 여유있게 정시에 퇴근한다.

물론 공장처럼 규모가 큰 대형병원에서는 아침부터 밤까지 수많은 환자들을 계속해서 수술해야 할 속사정이 있을지 모르나, 필자는 하루 수술 건수와 컨디션을 조절해가며 수술하고 싶다. 필자 스스로를 혹사시켜가면서 해 뜰때부터 해 질때까지 수술을 해서는 결코 일이 즐거울 리 없으며,  삶의 질도, 진료의 질도 떨어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는 수술이 산책처럼 즐겁다. 만약 하루 종일 걷고 뛴다면 결코 산책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돌출입, 안면윤곽 수술 전에 수술할 환자를 보는 시간은 대개 점심 때과 겹친다. 필자는 점심시간을 따로 정해놓지 않는다. 수술에 들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수술을 앞둔 환자에게 자주 하게 되는 말이 있다.

'점심 먹고 기운내서 예쁘게 수술해드리겠습니다'

나중에 어느 돌출입 수술 환자가 말해주기를, 수술 전 이 말을 듣고 마음 속 불안이 많이 안정되었다고 한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필자가 하는 이 말 속에는 환자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수술이라는 미지의 불안을 원장의 일상적인 삶의 일부로 환원시키는 묘한 효과가 있는 듯하다. 의사가 밥을 먹는 일상처럼, 수술 역시 별 일 없이 지나가리라는 느낌을 받는 모양이다.

어쨌거나 점심을 먹고 기운내서 수술을 하겠다는 말은 진심이다. 필자는 정말 점심을 먹어야만 힘을 내서 수술할 수 있다. 아침을 먹지 않기 때문이다. 누가 차려줘도 잘 안먹는다. 아침 안먹은지가 30년이 넘었다. 학창시절에는 밥보다 아침잠이 좋아서 지각 직전까지 절대로 눈을 뜨지 않았고, 의사가 된 후 인턴 때에는 새벽부터 일을 해야하므로 아침먹을 시간이 아예 없었다. 이후로는 습관처럼, 아침을 차려줘도 잘 못먹게 되어버렸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뭘 먹기부터 하는 사람이 있다는데 나로서는 신기할 따름이다.

여담이지만 시켜먹을 점심 메뉴를 정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메뉴를 자유롭게 정할 수 있으니 참 좋을 것 같지만 하루이틀 하다 보면 할 짓이 못된다. 철학자 사르트르는 '인간은 자유롭도록 저주받은 존재'라고 말했던가? 그래서 언젠가부터 요일마다 알아서 메뉴를 바꿔주는 한식도시락을 시킨다.

필자에게 돌출입, 윤곽 수술을 받으려는 환자가 이 글을 본다면 점심을 꼭 챙겨먹고 수술해달라는 당부를 할지도 모르겠다.

줄리아로버츠 주연의 영화로도 만들어졌던 엘리자베스 길버트의 자전적 소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에는 이태리어로 '아트라베시아모', 즉 '우리 함께 건너자'는 말이 나온다.

필자에게는 매일이 ‘먹고 기도하고 수술하라’이다. 내 몸에 에너지원이 되는 밥심이 있고 환자에게 최선을 다하는 기도하는 마음이 있다면 수술이 즐겁고 행복하다. 수술하는 집도의의 몸과 마음이 행복해야 환자도 행복해질 것이다. 의사와 환자는 함께 건너야 할 운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