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이가영 기자] 국내 항공 산업이 유례없는 위기에 맞닥뜨렸다. 원·달러 환율과 유가 상승 등이 지속되고 있고 주요국 공항과 글로벌 항공사 간 경쟁은 날로 심화되는 양상이다.

여기에 미중무역 분쟁으로 인한 항공화물 감소와 일본노선 여객 감소 역시 항공 시장에 치열한 생존경쟁을 예고하고 있다. 하반기 LCC시장의 구조조정 가능성이 수면위로 떠오르는 이유다.

▲ 국내 LCC들. 제주항공(상단 왼쪽), 티웨이항공(상단 오른쪽), 진에어(하단 왼쪽), 이스타항공(하단 오른쪽). 출처=각 사

잘나가던 LCC들, 바람 앞에 등불 신세 

17일 업계에 따르면 그간 파죽지세로 몸집을 불려온 LCC들이 끝없는 추락을 하고 있다. 5년만에 분기 적자를 기록한 제주항공에 이어 이번에는 이스타항공이 비상경영체제를 선포했다.

전날 최종구 이스타항공 대표이사 사장은 사내게시판에 “최근 당사는 대내외 항공시장 여건 악화로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내용의 담화문을 올렸다. 

최 사장은 “16일부로 비상경영을 선포하고 위기극복 경영체제로 전환할 것”이라며 “위기극복을 위한 대응 TF팀을 구성, 단계별로 위기극복 방안을 마련하고 TF팀을 중심으로 상황별·분야별로 준비된 대응방안을 전사적으로 실천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스타항공은 비상경영체제와 함께 무급휴직도 시행한다는 방침이다. 

과당경쟁으로 인한 수익성 악화가 누적된 가운데 수요 위축과 환율 상승 등 악재가 겹치면서 LCC시장이 크게 휘청이는 모양새다.

지금까지의 황금기가 무색할 지경이다. 실제로 그간 소득 증가에 따른 해외여행 문화의 확산, 저유가 기조로 인한 유류할증료 하락 등으로 2015년 이후 매년 15% 이상의 해외여행객이 늘면서 LCC들은 황금기를 맞았다.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에 따르면 현재 한국에서 비행기를 띄우는 LCC 숫자는 9개에 달한다. 올 초 국토부가 플라이강원과 에어프레미아, 에어로케이에 대해 사업 허가를 내주면서 기존(6곳)에서 3곳이 더해졌다. 그러나 글로벌 경제 성장 둔화와 이로 인한 소비 심리 저하, 원화 약세, 유가 상승 등 대내외 악재가 겹치면서 여객 수요는 점점 둔화되고 있다. 

국토교통부 항공정보포털시스템에 따르면 올 상반기 LCC 6개 업체의 공급 좌석 수는 1688만여석으로 전년 동기 대비 19.6% 증가했다. 반면, 같은 기간 탑승률은 83.6%로 3.1%포인트 줄었다. 

‘일본 여행 보이콧’에 ‘사우디 사태’까지…하반기 전망 불투명

더 큰 문제는 여행 수요 부진과 원화값 약세에 따른 부담이 이어지는 가운데 항공 수요에 타격을 입힐 치명적인 대외 변수들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 여행 보이콧과 사우디 아람코 석유 생산시설 피습이 대표적이다.

특히 일본 여행 보이콧으로 인해 LCC들이 입은 피해는 재앙 수준이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국제선 여객 수는 외항사들이 13% 늘어난 반면 8개 국적사 기준으로는 정체를 보였다. LCC들의 여객 증가가 역대 가장 낮은 3%에 머문 영향이 컸다. 국적사들의 성장이 멈춘 것은 2015년 7월 메르스사태 이후 처음이다.

LCC 업계에서 일본 노선은 그간 효자 노선으로 분류돼왔다. 매출 비중도 컸고, 수익성도 좋았던 탓이다. 일본 여행 보이콧이 벌어지기 전 주요 LCC의 일본 노선 매출 비중은 30%, 이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0%에 달했다. 

그러나 일본 노선 운행이 지난달 70%이상 줄어들면서 LCC들은 직격타를 맞았다. 설상가상으로 공급 축소보다 운임 하락 폭이 더 커지면서 1000원짜리 일본 행 항공권이 등장하기도 했다. 3분기 성수기 효과가 유명무실해지면서 실적 개선은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LCC들은 앞다퉈 일본 노선을 줄이는 한편 중화권이나 동남아 노선을 공격적으로 확대해 수익성 회복을 노리고 있다. 하지만 이미 해당 지역의 항공 공급도 포화상태인데다, 이로 인한 저가 경쟁이 치열해 일본 노선을 대체하기엔 역부족이다.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한 만큼 하반기 한일 항공화물 지표 하락세도 뚜렷하게 나타날 전망이다. 

또 다른 악재도 터졌다. 사우디 아람코의 석유 생산시설이 공격을 받아 큰 피해를 입으면서 유가가 급등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 

16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10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전 거래일보다 배럴당 14.7%(8.05달러) 치솟은 62.90달러에 장을 마감했다. 런던에서 거래되는 브렌트유 역시 전날 밤 20%까지 폭등했다. 로이터통신은 2008년 12월 이후 약 11년 만의 최대폭 급등이라고 평가했다. 

사우디 당국과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비축유로 공급 부족분을 메우겠다고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당분간 유가 상승세는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CNBC 방송은 사우디 생산시설에서의 생산 감소가 수주간 지속되면 브렌트유는 배럴당 75달러, 미국 등의 군사적 대응이 이뤄지면 배럴당 85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영업비용 중 유류비의 비중이 30% 안팎에 이르는 항공업은 유가 변동에 대한 민감도가 다른 산업에 비해 높은 편이다. 

항공유 상승 악재가 겹칠 경우 하반기 실적이 당초 예상보다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앞서 지난 2분기 제주항공(-274억원)을 비롯해 진에어(-266억원), 티웨이항공(-265억원), 에어부산(-219억원) 등 LCC 대다수가 200억원대의 영업적자를 낸 바 있다. 

국내 항공업계, 미국·유럽 전철 밟을수도… 

일각에서는 하반기 항공업계 구조조정이 현실화 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하반기 실적이 상승할 수 있는 요인이 전무해, 경쟁력 없는 항공사는 구조조정이 전개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앞서 미국은 1978년 항공사규제완화법을 제정한 이래 1992년까지 168개 항공사가 신규 진입했으나 과당 경쟁이 벌어지면서 99개 항공사가 퇴출됐다. 유럽에서도 최근 몇 년간 LCC업체들의 도산이 이어지고 있다. 올 들어 WOW항공(아이슬란드)과 플라이브미(영국), 게르마니아(독일), 노위전항공(노르웨이) 등이 운항을 중단하거나 파산했다.  과당경쟁과 고유가가 원인으로 지목된다. 

류제현 미래에셋대우 연구원은 “장기적으로는 이번 불황을 기점으로 점유율 격차가 확대되고 재무구조 건전성의 차이에 따라 성장성 차별화가 본격화될 것”이라며 “특히 현금흐름 악화를 견디기 쉽지 않은 하위 항공사를 중심으로 2019년말~2020년경 의미 있는 구조조정이 예상된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