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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동진 칼럼 : CEO만 보세요] 보고 싶은 만큼 보이고, 자기입장에서만 해석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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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어떤 것인데 함부로 버려?”

지난 일요일, 재활용 쓰레기를 모아둔 곳에 버려져 있던 밝은 연녹색의 구겨진 종이백을 집어 들며 큰 애가 화들짝 했다. 늦잠을 늘어지게 자고선 학교 행사 연습을 하러 학교에 간 사이에 방을 좀 치웠다. 구석구석 청소기를 돌리고 책상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빈 음료수 캔이며 컵 그리고 과자 봉지 같은 것을 치우는데, 한쪽 옆에 구겨진 종이백에 빈 비닐봉지들이 뭉쳐져 들어 있길래 들고 나온 것이 화근이었다.

“그게 뭔데? 버리는 거 아냐?”

“지난번 콘서트 때 받아온 건데, 이런 건 어디 가서 사지도 못한단 말이야.”

그러고 보니 쇼핑백 하단에 조그만 흰 글씨체로 애가 좋아하는 걸그룹의 영문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전에는 그러지 않았는데,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갑자기 최애 걸그룹이 생겼다. 12명이나 되는 여자애들이 모인 그룹으로, 내년까진가 한시적으로 프로젝트 활동을 하는 팀이란다. 내가 보기엔 그 12명이 비슷비슷해 보이는 데 어느 틈엔가 애 방 여기저기에 브로마이드 사진이 빼곡히 붙었고, 책상이며 탁자에는 카드 배지 응원도구들이 가지런히 놓였다.

다른 그룹에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도 않는데, 그 그룹은 팀원들의 아주 사소한 특징들까지 죄다 꿰고 있었다. 그러자 가족들이 무심결에 TV를 보다가도 그 걸그룹이 나오거나 하면 큰 애에게 알려주게 됐다. 걸그룹이라면 소녀시대와 여자친구 정도 이름만 알던 나도 이젠 그 걸그룹은 눈에 들어오고 있다.

 

가장 가깝지만 서로 잘 모르는 사이

가장 잘 알고 있는 사이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사실은 서로 모르고 있는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을 최근 실감한다. 한국과 일본 간의 관계가 대표적인 경우다. 한일경제 전문가인 박상준 와세다대 교수가 일본 수출규제로 촉발된 한일 경제전쟁에 대한 생각을 언론을 통해 털어놨다. 그의 첫 마디는 ‘서로 잘 모른다’ 였다. 이 세상에서 가장 많이 아는 나라가 한국과 일본 간의 사이라 생각해왔다. 쉽게 가고 오고 하기도 하고 다른 그 어떤 나라보다 잘 아는 사이라고 누구나가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착각이었다.

그가 말한 요지를 대충 보면 다음과 같다. 한국과 일본은 가장 가까이 있지만 서로 잘 모른다. 같은 주제를 다뤄도 내용이 전혀 달라 서로 다른 세상에 사는 것 같다. 최근 한국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50%를 넘어섰던 때에도, 일본에서는 실업률이 높아 20대 젊은 층의 지지율이 낮다며 “한국인들이 대통령에 등을 돌렸다”고 보도했다고 한다.

양 국가가 서로 보고 싶은 것만 본다고 걱정했다. 한국에서는 일본 국가부채비율이 GDP 대비 230%로 높다며 마치 일본경제가 곧 붕괴될 것처럼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박 교수는 일본 가계의 순저축율은 GDP 대비 270%에 달한다. 가계가 여윳돈을 은행에 맡기면 은행이 정부가 발행한 채권을 사는 구조라서, 단순히 국가부채비율이 높다고 일본경제가 무너진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리라고 강조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는 말이 있는데, 적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그간 한국은 그냥 안다는 생각에 제대로 알려는 노력이 부족했다.

상대방에게서 일부 나타나는 작은 현상들이 전체가 그런 것인 양 호도하는 경향도 많다. 겨우 몇 사람이 각성한 것을 두고 국민 전체가 그럴 것으로 소개하기도 한다. 그 옛날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년 전인 1590년 서인인 황윤길과 동인인 김성일 등의 조선통신사 일행 100여명이 일본을 다녀왔다. 7월에 교토에 도착했고 11월에는 풍신수길을 접견하여 선조의 국서를 전달한 뒤 수길의 국서를 받아 그 이듬해에 돌아왔다.

이들은 역사상 길이 남을 유명한 엇갈린 보고를 했다. 서인(西人)인 상사 황윤길은 “수길은 눈빛이 빛나니 틀림없이 쳐들어 온다”고 했고, 동인(東人)인 부사 김성일은 “수길의 눈이 쥐와 같으니 쳐들어 오지 못한다”고 했다. 하지만 당시 집권세력은 동인이었던 지라 ‘그럼 일본은 쳐들어 오지 않는 것으로’ 치부가 되어 그 난리가 났다. 사실 둘 다 비슷하게 느꼈지만, 반대파가 먼저 그렇게 얘기하니, 자신이 그렇게 얘기할 수 밖에 없었다고 전해지는 것은 차라리 모르는 것이 낫다. 하지만 역사인 것을 어찌하랴. 수백 년 전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아직도 별반 달라진 것이 없는 것이 더 큰 비극이다. 우린 그렇게 우리한테 유리한 쪽으로만 생각하고 다른 것들은 그냥 외면한 채 살아왔다. 번번히 호되게 당하면서도.

 

속 썩이지 않아 방치하면, 나중엔 더 크게 속 썩여

전 직장에서 있었던 일이었다. 나이는 한참 아래였지만 입사 시기가 비슷해서 자주 얘기도 나누곤 하던 계열사 영업팀장이 있었다. 덩치가 커서 산적 같아 보이기도 했는데, 웃는 얼굴은 천진해 보이고 속은 되게 여렸다. 일년에 한번씩 큰 학회 행사도 했는데, 내 나름대로 여로 모로 도와주기도 했다. 한 발 더 나아가 알고 지내면 좋을 만한 전문지 국부장단과 만날 기회도 마련해줬다. 그런 자리에 술이 빠질 수 없어서 간단히 반주를 하려는데 그 팀장은 술을 입에도 대지 못하는 체질이었음을 알게 돼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덩치 크고 산적처럼 생겼기에 무조건 술도 셀 거라는 내 착각이었다. 그날, 술 먹지도 못하는 사람이 해장만 해댔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영업팀장이 울상이 되어서 담배를 피고 있었다. 이유를 물으니 거래처 계약이 날아갔다고 했다. 물량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지금껏 군말 없이 구매해 주고 있었는데, 이유 없이 경쟁사와 계약을 진행했다고 했다. 때문에 위에서 한 소리 단단히 듣고 어깨가 축 늘어져 있었다.

“거래처 사람들과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사이였고, 재계약은 당연한 거였죠.”

“가끔씩 연락도 하고 찾아가기도 했었어야지.”

“믿고 거래하는 곳이었고, 지금까지 한번도 속 썩인 적도 없어서 방심했어요.”

“뭐라고 하던데?”

“재계약 하자는 말이 없어서, 다른 데로 계약했다는데요.”

“헐, 그게 말이 되는 소리야? 뭔가가 있었겠지.”

다음 분기에는 물량을 공급을 재개했지만, 약간의 단가 인하는 감수해야 했다. 군말 없이 물량을 소화해줬기 때문에, 오랫동안 거래해서 잘 안다고 생각하고 등한시 한 죄가 결국 매출 감소로 이어졌다. 나중에야 알게 됐다. 거래처 담당자가 사 내에서 문제가 생겨 난처한 입장에 처했고, 이를 만회하기 위해 비용절감책으로 회사에서 인정 받을 기회를 만든 것이었다. 그런 사정이 있었는데도, 이쪽에서는 속 썩이지 않으니 태평하게 넘어간 것이었다. 조금만 신경 썼어도 됐을 일인데, 자기 입장에서 편하게만 해석한 죄로 뭉텅이 매출을 날려 버린 것이다. 이런 일들은 비즈니스 현장에서 의외로 흔하다.

사회생활 시작한 지 강산이 두 번 반이 바뀌었다. 참 묘한 것이 그 전에는 전혀 눈에 띄지도 않던 것인데, 언젠가부터 그것 밖에 보이지 않게 되는 경우가 있다. 결혼 몇 년 만에 첫 애를 가지게 되자, 세상에 임산부가 이렇게도 많았나 하고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또, 큰 애가 태어난 지 일년 반 만에 수술을 받게 되었을 때는 세상은 아픈 사람들 천지였다. 그들은 어디 숨어 있던 것도 아니었는데, 내가 직접 겪게 되고 난 후에는, 온 세상이 그들로 넘쳐난다.

직장만 해도 그렇다. 이직한 곳이 레미콘을 주력으로 하는 그룹이었다. 몇 주가 지나자 신기하게도 도로 곳곳에서 레미콘 트럭들이 그렇게 많은 줄을 처음 알게 되었다. 노란 바탕의 회사 차량뿐만 아니라 파란색의 경쟁사 차량 그리고 경쟁기업이라 할 만큼 존재감도 없었던 각양 각색의 로고와 색깔의 레미콘 트럭이 눈에 보였다. 멀리서 보이는 타워크레인이 이정표로 보였다. 오죽했으면 당시 세 살배기 애까지 길거리 레미콘 트럭마다 환호성을 지르곤 했다.

그 다음은 전선회사였다. 차를 타고 갈 때는 하늘만 쳐다봤다. 전봇대 사이에 걸려있는 전선을 본 것이다. 먼 산을 볼 때도 자연경관 보다 철탑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친구 집 전기단자함이 경쟁사 것이면 괜히 기분이 상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국내 모 가전회사에서 지금까지 근무한 동생네 가족이 우리 집에 오는 게 겁이 난다. 다른 게 아니라 어쩌다 보니 세탁기 빼곤 죄다 경쟁사 가전제품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내 입장도 알아 주겠지’라고 자기만 편하게 생각해 버리기 때문에 사단이 난다. 일만 힘들어지면 괜찮지만 삶의 방향이 바뀌고 역사가 바뀔 수도 있다. 쉬운 일이었으면 역사가 이렇게 흘러오지도 않았을 성 싶다.

구동진 칼럼니스트·홍보인 expert@econovill.com

기사승인 2019.09.17  10: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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