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야 북한과 미국이 대화에도 나서고 해서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지만, 2001년 9·11테러사건이 일어난 이듬해 1월, 미국은 북한·이라크·이란을 '악의 축'으로 규정했다. 이라크의 대량 살상무기를 제거해 자국민을 보호하고 세계평화를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영국·호주와 함께 2003년 3월20일 바그다드 남동부 등에 미사일 폭격을 가함으로써 전쟁을 개시했다. 이른바 작전명 '이라크의 자유(Freedom of Iraq)'다.

전쟁 개시와 함께 연합군은 이라크의 미사일기지, 포병기지, 방공시설, 정보통신망 등에 대해 공습을 수 차례 감행했고, 전쟁 개시 사흘 만에 이라크 남동부 바스라를 장악했다. 바그다드에 있던 대통령 궁도 파괴했다. 전쟁 개시 보름째인 4월 4일 무렵에는 바그다드 사담후세인국제공항을 장악했고, 7일엔 바그다드 중심가로 진입했다. 8일은 만수르 주거지역 비밀벙커 포격, 9일엔 영국군이 바스라 임시지방행정부 구성했으며, 10일 미국은 바그다드를 완전 장악함으로써 전면전은 스무날 만에 막을 내렸다.  그리고 4월 14일에는 미군이 이라크 최후의 보루이자 후세인의 고향인 북부 티크리트 중심부로 진입함으로써 발발 26일 만에 전쟁은 사실상 끝이 났다.

 

‘민간인 1명 희생 = 반란군 10명의 탄생’ 인터뷰로 비로소 알게 돼

전쟁은 끝났지만, 완전히 끝이 난 것은 아니었다. 지독하게도 끊이지 않는 테러가 이어졌다. 심각한 테러가 장기화 되면서 이라크의 치안유지를 맡은 미국의 여러 장성들이 경질됐다. 그러다가 제101공수사단을 지휘했던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가 치안유지를 맡게 된 이후에야 마무리 됐다. 이라크 진영으로 집중포화가 쏟아지는 장면이 뉴스를 통해서 전 세계로 실감나게 전달되었기 때문에 속전속결로 매듭지어진 것으로만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 뒤로 줄기차게 이어지던 저항을 종결하여 매듭짓기 까지는 상당한 기간이 걸렸다.

2012년 11월 비록 불륜으로 인해 불명예 퇴직으로 마감했지만, 그 전까지만 해도 그는 뛰어난 군사전략가이자 스타 군인으로 평가 받았다. 2011년에는 CIA국장에 오르기도 했다. 그가 부임하기 전까지만 해도 미군은 이라크 반란군의 신속한 궤멸과 미군의 보호라는 두 가지 임무에만 철저했다. 반란군의 궤멸을 위해서는 효율적이면서도 신속한 조치가 필요했기에, 무차별적으로 반란군를 정리해야 했는데, 그 과정에서 수많은 민간인들의 희생이 뒤따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신속한 응징에도 불구하고 쉽사리 전황은 바뀌지 않았고, 테러로 인한 희생이 더 커졌을 뿐만 아니라 전쟁이 생각만큼 빨리 종결되지도 못했다.

그러던 전황이 그가 부임하고서야 비로소 달라졌다. 부임 직후 그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전황에 대한 보고를 받고 작전회의를 하고 지시를 내리는 대신에, 인터뷰 조사를 진행하게 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인터뷰 조사에서 비로소 민간인이 테러리스트가 되기로 결심하는 가장 큰 동기가 바로 ‘가족과 이웃의 희생을 목격하는 것’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민간인 1명이 희생되면 반란군 10명이 새로 생겨난다는 것을 그의 부임 이전까지는 알지 못했다.

그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강력한 무기와 전략적 작전이 아니었다. 그간의 미군이 집중했던 임무 대신에 ‘민간인 구분과 선별적 대응'이라는 새로운 목표를 확고하게 세웠다. 반란군을 색출하는 데에 아무리 시간이 걸린다고 하더라도 민간인을 철저히 구분했다. 이로 인해 미군의 희생이 늘어나고 지체된 시간으로 우유부단하다고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민간인에 대한 피해가 줄어들자 반란군 공급원도 자연히 고갈되었다.

 

세상은 다 아는데, 정작 담당자들은 몰라

“뭘 해야 할지 몰라 앞이 캄캄합니다.”

2018년 가을, 교육부장관이 대입 공론화 실패에 대한 책임으로 물러나게 된 것도 모자라 신임 장관 후보자 국회의원마저 청와대 게시판 등에서 퇴진 운동이 벌어지자, 교육부 고위 관계자의 말이 모 일간지 기사를 통해 알려졌다. (중앙일보 2018년 9월 5일자) “교육부가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지 참담한 심경이다, 어디서부터 매듭을 풀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한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교육부만 그 이유를 모르고, 교사와 학생, 학부모는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회사 규모가 커질수록 사람도 많고 일도 많아지기 마련이다. 스타트업일 때야 한 두 사람이 거의 모든 일을 다해야 했지만, 인원이 늘어나면 일은 나눠지고 쪼개진다. 그러다가 직원 수가 수백 수천으로 늘어나면 일은 더욱 파편화 되는데, 많은 경우 ‘꼬리가 개를 흔드는 상황’이 연속된다. 익숙해졌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더 심각한 것은 왜 해야 하는지는 사라져 버리고, 그냥 허덕허덕 매여서 하는 일이 된다. 혹자가 ‘왜’ 이런 일까지 해야 하는 지 물어본다는 것은 조직에 대한 저항 또는 거부감으로 불손하게 비칠 수도 있기에 한국 사회에서는 쉽게 그런 내색을 하기도 어렵다.

1986년 1월 28일 우주왕복선 챌린저호가 10번째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날아올랐다. 하지만 정확히 73초 만에 공중분해가 됐다. 외부 추진로켓의 연료 누출 방지를 위한 고무링의 부식이 원인이었다. 겨우 몇 불짜리에 불과한 고무링을 간과했기에, 그 사이로 고온 고압의 연료가 새어 나왔고, 대폭발로 이어졌다. 한참 뒤인 2003년 2월 1일에도 콜롬비아호 대폭발이 있었다. 이륙 직후 외부 추진로켓에서 떨어져 나간 단열재 파편이 콜롬비아호의 왼쪽 날개에 작은 구멍을 냈고, 대기권에 재진입하던 콜롬비아호는 엄청난 마찰열이 그 작은 구멍으로 파고들어 기체 전체가 폭발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단열재 파편이 날개에 구멍을 낸 것이야 불가항력적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도 같다. 하지만 대기와의 마찰에서 파편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은 예측이 가능했고, 동체에 영향을 주기 않도록 연구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문제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삭아버린 고무링은 단지 몇 달러 정도면 교체가 가능했는데, 간과해버림으로써 그 이후 수년간 우주왕복선 연구가 중단되는 상황까지 이루 상상도 할 수 없을 천문학적인 손해가 나버렸다.

 

행동하는 것보다 하지 않았을 때 죄책감이 훨씬 적어

간과라는 실수도 있지만 의외로 조직은 실수에 대한 제대로 된 수정 과정을 포기하는 경우도 생긴다. 예전에 주요 자리에서 파워포인트 자료를 발표해야 하는 경우가 있었다. 신입 팀원부터 과장급 팀장급 그리고 임원까지 머리를 맞대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고, 전략적인 메시지부터 각종 통계 및 참조 자료들까지 망라해서 일목요연하게 정리를 했다.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고 마무리까지 했는데, 발표 당일 현장에서 슬라이드를 띄워보고는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팀 내에 디자인적인 부분에 능력을 보유한 사람이 없어 다른 회사에서 사용한 템플릿을 바탕으로 제작했는데, 첫 장 하단의 회사명이 우리 회사가 아니라 엉뚱한 기업명이 들어가 있었다. 다행이 리허설 격으로 몇 분전에 시험 삼아 슬라이드를 띄워 발견한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행사가 끝난 후 고생은 고생대로 했지만, 임원으로부터 온갖 험한 소리를 다 듣고 나서야 겨우 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날 저녁 화도 나고 서운한 느낌에 팀원들과 소줏잔을 기울이며 어이 없음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놀라웠다. 모두가 그 오류를 봤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더 놀라웠던 것은 자료 내부 내용의 오류에 대해서는 모두가 서로 지적하고 수정하고 했지만, 표지의 오류는 너무나 명명백백해서 ‘이건 내가 아니라 누구라도 수정하겠지’라며 다들 넘겼다는 것이었다. ‘이런 것을 지적이라고 하냐?’고 한 소리 들을 것이 더 염려되었다고 했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우리는 씁쓸한 웃음을 웃고 넘길 수 밖에 없었다.

1991년에 퓰리처상을 수상한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의 저널리스트인 조지프 핼리넌은 ‘우리는 왜 실수를 하는가’에서 ‘여러 사람이 동일한 실수를 반복한다면, 그 실수의 원인부터 파악해야 된다. 그 원인은 개인이 아닌 조직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사실 무작정 어떻게든 실수만 하지 않으려고 하는 바람에 결과적으로 실수에서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하고 마는 세태를 꼬집었던 것이다. 어떤 일을 제대로 했을 때 우리는 우리가 똑똑해서 일을 잘 한 것이라 생각한다. 반면에 일이 잘 되지 않았을 때는 운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돌려세운다. 그래서 우리는 또 똑같은 실수를 하게 되고, 그런 실수에서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하고, 그 근본 원인을 이해하지도 못한다.

중요한 한 가지가 더 있다. 사람은 행동하지 않을 때보다 행동을 했을 때에 더 큰 책임감을 느낀다. 바꿔 말하면 아무 것도 하지 않았을 때에 느끼는 죄책감이 훨씬 덜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일을 하다가 잘 못될 바에는 차라리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여긴다. 명명백백한 오류의 지적도 마찬가지다. 행동하지 않는 것은 수동적이기는 하지만 ‘내가 저지른 것이 아닌 남의 일’이 된다. 그래서 우리는 또 실수를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