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1학년 시절, 어머니의 추천으로 피아노를 배운 경험이 있다. 나는 자의적 판단보다는 추천에 의해 배우는 터라 크게 흥미가 있지는 않았다. 그 증거로 지지부진하게 바이엘 1권만 6개월이 넘게 배우고 있었다. 딱히 어떤 곡이 재미있지도, 피아노 학원을 가는 날이 기대되지도 않은 상태로 시간만 흐르고 있었다. 그러다 어느날 같은 반의 반장이 피아노 학원에 등장했다. 그 녀석은 분명한 목표가 있었다. 바로 베토벤의 교향곡인 ‘운명’을 치고 싶어서 이곳에 왔다는 것이다. 피아노 학원의 원장님은 반장의 당돌함이 귀엽기도 하고 한편으론 대견하기도 하다는 듯 다양한 표정을 지으셨다. 그때부터 나와는 다른 경로의 배움이 시작되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피아노를 배운다기보다는 ‘운명’을 치기위한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분명한 곡의 선택은 배움의 초기 단계부터 날카롭게 설정되었다. 반장을 가르치는 모든 학습 시스템은 ‘운명’을 중심으로 맞춤형으로 진행되었다. 결국 3개월이 지나자 반장 녀석은 ‘운명’을 칠 수 있게 되었고, 나는 여전히 바이엘이라는 두루뭉술한 일반적인 배움의 과정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이 사건을 접한 나는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내가 더 관심 있는 미술공부에 집중했다.

자! 다시 창업으로 돌아가 보자. 혹시 우리는 창업을 한다면서 정작 바이엘을 습득하려고 하고 있지는 않을까? 창업을 하면서 겪는 어려움 80%이상은 스스로 만든 구조 속에서 겪는 것이다. 창업을 시작한다고 하자, 우선 핵심 제품이나 서비스가 불투명한 상태에서 창업을 진행하게 된다. 그러면서 그럴듯한 사무실을 하나 임대한다. 또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을 대신하거나 일을 분담할 수 있는 직원을 채용한다. 이때, 창업자의 부담은 점차 증가한다. 자신의 월급이 문제가 아니라 숨만 쉬어도 임대료와 인건비가 나가는 것이다. 운이 좋게 정부 지원 사업에 도전해서 사업비를 받는다. 그러나 시제품 개발의 초기 단계 후에는 이미 사업비를 모두 소진한 상태에 다다른다. 따라서 이후의 제품양산이나 판매까지 가지 못하고 좌절하는 경우가 상당하다.

이제 프로세스를 바꿔보자. 남들에게 그럴듯한 창업이 아닌, 창업가의 부담은 줄이고 창업의 성공확률을 높이는 창업의 승자가 되는 방법을 고민해야할 때이다. 우선 시제품 제작의 단계를 맨 앞으로 끌어온다. 기술기반이거나 디자인, 콘텐츠 등 사업의 세부 장르에 따라 연계할 수 있는 창업지원 사업을 함께 준비한다. 또 여력이 된다면 지적재산권(디자인, 특허 등)을 동시에 확보해간다. 앞선 과정을 통해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고, 전문가들의 피드백을 수렴할 수 있다. 또 이러한 아이디어가 시장성이 있는지, 향후 민간의 투자를 이끌어낼 수 있는지를 지원 사업을 통해 테스트한다. 당연히 공간임대와 직원채용은 가능한 미루는 것이 좋다. 필요하다면 단기간 전문가와 비용을 지불하고 원하는 결과를 얻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래서 충분히 핵심 제품 및 서비스의 시제품 단계를 거쳐야한다. 이 과정을 통해 중대한 결정이 남았다. 바로 이 핵심 아이템으로 창업을 할 것인가?를 결정해야한다.

이 결정에서 창업을 진행하는 것으로 결론이 난다면 이때부터 팀 빌딩 및 활동공간을 확보해도 늦지 않는다. 그 후 시제품을 가지고 새로운 자원을 연결하고 제품 양산 및 판매에 들어간다. 당연히 충분한 시제품에 대한 고민이 있었기에 새로운 자원을 연결하기에도 수월하다. 새로운 자원은 제품생산에 투입되고 이는 시장의 반응을 테스트할 여력을 만든다. 결과적으로 시제품에 대한 고민을 맨 앞단에 둔 결과가 창업기업의 성장여부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한성대학교의 경우는 학생 창업의 지원 프로세스를 혁신하려는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다.

 

창업에 관심을 둔 당신은 지금 창업의 바이엘을 공부하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초등학생 시절 반장의 행동처럼 ‘운명’을 목표로 행동해보기를 권한다. 그의 행동은 지금도 나의 삶의 행동을 결정하는데 주요하게 작동하고 있다. 창업이라는 밀림은 넓고 위험하지만 나의 운명과도 같은 핵심 제품으로 길을 헤쳐 나가기를 조언한다. 선택하고 집중하자. 새로운 창업의 ‘운명’이 열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