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시와 정비계획 변경을 두고 협의 중인 여의도 시범아파트 전경. 사진=이코노믹리뷰 김진후 기자.

[이코노믹리뷰=김진후 기자] “재건축을 기대하고 한양아파트에 전세를 구해 이사 왔지만 1년 넘게 제자리다.” 시범아파트에 거주하다 올해 초 한양아파트로 이사 온 K씨의 말이다.

건축된 지 40년이 넘은 아파트가 수두룩한 여의도는 재건축 사업의 활로가 보이지 않고 있었다. 지난 7월 ‘용산-여의도 통개발’이 보류되고, 각 아파트의 주민들은 단지 개별로 재건축을 추진하고 있었다. 그러나 원체 느린 재건축 사업에 부동산 시장 상황까지 더해져 주민들 대부분은 회의적인 시선을 보냈다.

여의도 공항이 폐쇄된 1971년 여의도에 가장 먼저 세워진 시범아파트는 12월 10일 기준 정비계획 변경을 두고 서울시와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범아파트 재건축 추진 시행자인 한국자산신탁에 따르면, 지난해 6월 한국자산신탁이 사업시행자로 지정되고 목표치인 ‘3종 주거지, 용적률 300%’를 계획 변경안에 담았지만 두 차례 보류됐다. 이미 안전진단 D등급으로 규정돼 ‘즉시 재건축 요함’ 판정을 받았지만 재건축은 요원한 실정이다. 한국자산신탁 측은 사업 난항의 원인으로 정비계획의 상위 규정인 ‘지구단위계획’ 등 정책 규제와 함께 ‘여의도 마스터플랜’ 지연을 꼽았다. 서울시의 밑그림이 무엇인지 주민들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사업 진행이 교착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처럼 재건축 연한 30년을 넘긴 여의도 지역 아파트 11개 단지들은 당초 통합 재건축을 추진했지만, ‘여의도 마스터플랜’의 좌초되면서 독자 계획을 수립해가고 있다. 시범아파트는 현재 1584가구를 2409가구로 늘리고, 층수 역시 현 13층에서 35층으로 늘리는 계획을 피력 중이다. 지금으로썬 시범아파트가 여타 단지에 비해 가장 앞서 있지만, 재건축 추진위 관계자는 물론 주변 공인중개사들은 사업의 열쇠는 서울시가 쥐고 있다며 ‘마스터플랜’의 향방만 바라보고 있는 실정이다.

이제형 시범아파트 재건축추진 운영위원회 위원장은 “준비계획이 허가가 나면 법 절차에 따라, 계획이 어떤 형태로 변경되는지 토지 소유자에게 설명할 방침”이라면서 “현재 지구단위계획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용산-여의도 통개발’을 발표한 7월 이후, 통개발 발언이 철회됐음에도 시범아파트의 실거래가는 널을 뛰었다. 가장 좁은 면적인 60.96㎡는 7월 2일 9억4000만원에 거래됐지만, 9월 3일까지 약 1억6000만원이 상승한 11억원에 거래됐다. 12월 3일 현재 같은 면적의 실거래가 11억3000만원이다. 넓은 면적인 156.99㎡는 더욱 극적이다. 7월 2일 17억3500만원에서 9월 10일 22억원까지 치솟았고, 12월 3일 현재는 조금 주춤해진 21억2000만원을 기록하고 있다.

박원순 시장의 발언은 재건축이 필요한 단지의 개발 기대감을 부추겼고, 이후 ‘마스터플랜’ 보류와 재건축 지연 등을 거치면서 서울시에 대한 불만감은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 지상주차장 공간 부족으로 주차난을 겪고 있는 여의도 한양아파트. 사진=이코노믹리뷰 김진후 기자.

현재 여의도 지역은 시범아파트 외에도 수정·광장·공작·대교·진주·한양 등 6군데의 단지가 개별 재건축을 추진 중이다.

한양아파트 재건축 추진위원회 관계자는 “여의도를 금융지구로 개발하겠다는 서울시의 ‘마스터플랜’은 지구단위계획이 빠져 있고, 아마 무분별한 재건축을 피해보자는 본의가 와전된 것으로 안다”면서 “언론이 말한 것처럼 플랜에 따라 약 6300가구가 한꺼번에 움직이는 것은 사실상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아파트별로 용적률과 토지용도 등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개별 재건축 추진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이다.

한양아파트 재건축 추진위 역시 총회에서 조합 방식이 아닌 신탁 방식으로 재건축을 추진하는데 70% 이상의 동의를 얻었다. 이후 추진위는 입찰을 통해 뽑힌 KB부동산신탁을 사업자로 지정하는 데 대한 주민 동의서를 받고 있다. 추진위 관계자는 “서울시 발표가 늦어도 내년 날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에 계약서는 아직 작성하지 않았고, 주민 동의서를 구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현재 한양아파트의 허용 용적률은 230%이고, 기본은 237% 정도다. 이 때문에 1:1 재건축을 추진할 경우 오히려 가구 수가 줄 위험도 있기 때문에, 추진위는 서울시 법정 상한인 300%를 목표로 기부채납 등을 고려하고 있다.

이후 상황에 대해 한양아파트 추진위 관계자는 “여의도 인허가는 아직 한 군데도 없지만 대출규제도 막혀 있고 전세난도 가중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순차적으로 재건축이 진행되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연한 외에도 여의도 아파트들이 안고 있는 문제는 여럿이다. 배관, 배수 문제를 비롯해 주차장이 지상에 있는 관계로 주차 가능한 대수가 모자라다는 게 주민들의 불만이다. 저녁이 되면 단지 내 소방도로는 물론 단지 밖 갓길도 주차 차량으로 가득하다.

▲ 신탁을 통한 재건축 찬반 여부를 두고 내홍을 겪고 있는 대교아파트 단지 내 현수막. 사진=이코노믹리뷰 김진후 기자.

조합 VS 신탁, 내홍 겪는 단지도 있어

1975년 준공된 대교아파트 재건축 사업은 내홍을 겪고 있었다. 대교아파트 주택재건축사업 정비사업운영위원회는 지난해 66%의 찬성률로 KB부동산신탁을 사업시행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지만, 이에 반대하는 비상대책위원회가 들어섰다. 대교아파트 단지 안은 운영위와 비대위가 서로에 반대하는 주장을 적어놓은 플랜카드가 나부끼고 있었다.

재건축 운영위원회 측은 지어진 지 43년이 지나 노후화한 대교아파트를 빠르게 재건축해야 한다면서 현금기부채납, 서울시를 향한 재건축 추진투쟁을 위해 빠른 사업자 지정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속칭 ‘비대위’가 토지등소유자들의 분열을 조장하는 유령단체라는 입장이다. 반면 비대위는 오히려 KB부동산신탁이 서울시 조례를 위반한 단체라면서, 이들을 통할 경우 현재 거주 중인 아파트보다 평형이 줄어든다면서, 재산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동의서 철회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대교 아파트의 한 주민은 “어느 단지나 재건축 사업을 전개하면 추진위·비대위 싸움이 있다”면서 “일장일단이 있어 신중히 판단하려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신탁을 통하면 억대의 수수료가 들지만, 안전진단, 지구지정 등에 필요한 초기 비용을 마련하는 데 유리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면 주민들 사이에선 신탁을 믿기 힘들어 자비를 부담하더라도 자신들이 구성한 조합을 신뢰하는 게 낫다는 판단도 있다.

▲ 상업용지에 자리해 용적률 상향을 기대하고 있는 여의도 공작아파트와 서울아파트. 사진=이코노믹리뷰 김진후 기자.

1976년 준공된 공작아파트는 신탁사를 통한 재건축 사업의 효시로, KB부동산신탁을 통해 현재 용적률을 상향하는 내용을 서울시와 협의 중이다. 공작아파트를 포함해 서울아파트, 수정아파트는 상업지역에 자리해 본래 지구지정이 어려운 곳이었다. 그러나 최근 서울시는 상업지역의 주거용 용도비율을 종전의 20~30%에서 20% 이상으로 하향하고, 주거용 사용부분의 용적률 역시 400%에서 600%로 상향하는 조례 개정안을 한시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에 따라 공작아파트 역시 용적률 470%를 적용해 현재 12층을 49층으로 올리는 방안을 추진할 방침이지만, 조례안이 개정되면 임대주택을 포함해 600% 미만까지 추진할 가능성도 있다. 공작아파트 주변 공인중개사는 “서울시가 임대주택을 늘리는 동시에 고밀개발을 추진하는 방향이기 때문에, 공작아파트 역시 영등포구청과 적정 용적률을 협의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반면 1976년 건축된 수정아파트는 각 가구에 정비계획 변경의 입안제안 동의서가 배부되고 있었다. 그렇지만 재건축 추진위원회는 단지 지하에 상주하고 있는 한편, 상주 비용 부담으로 관계자들은 출근을 하지 않고 있었다. 추진위 사무실에 사람이 없는 경우는 이외에도 부지기수였다. 미주아파트 역시 추진위가 들어섰지만 사무실은 <이코노믹리뷰>가 방문한 7일 당시에는 누구도 맞아주지 않았다. 건너편 광장아파트는 사업자 지정고시가 신청 보류된 채, 안전진단 강화로 희비가 엇갈린 1·2동과 3~11동 사이의 소송 공방이 이어질 전망이다.

▲ 여의도 광장아파트는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안전진단 결과가 갈리며, 재건축 사업이 불투명해졌다. 사진=이코노믹리뷰 김진후 기자.

여의도 가장 남쪽에 1977년 세워진 진주아파트는 시범아파트와 마찬가지로 지난 9월 한국토지신탁과 주택재건축정비사업의 업무협약을 맺었다. 다만 단지 가운데 A·D동은 상업지역에 속해 있고, B·C동은 3종 주거지역이라 각각 용적률이 800%, 300%로 달라 추후 계획의 향방이 주목받고 있다.

서울아파트의 건너편에 자리한 목화아파트는 리모델링을 추진 중이지만 난항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건축보다 리모델링의 이익이 더 큰 것으로 판단했다고 한 관계자는 전했다. 또는 공작·서울 아파트와 달리 주거지역에 있어, 여의도 마스터플랜에 따라 전체 통개발을 추진하고 용적률을 일률 상향하는 게 오히려 주민 편익에 도움이 된다는 평가도 있었다.

▲ 삼부아파트 운영회 관계자는 재건축 현황을 묻자 재건축 추진 활동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사진=이코노믹리뷰 김진후 기자.

반면 서울시 움직임에 따라 아예 재건축 추진이 멈춘 곳도 허다했다. 1975년 세워진 삼부아파트 운영회 관계자는 “우리는 공식적인 활동이 전혀 없다”면서 극구 재건축 의사를 부정했다. 삼부아파트 외에도 서울아파트를 포함해 초원아파트, 장미아파트, 은하아파트, 삼익아파트, 화랑아파트 등은 눈에 띄는 움직임이 없었다. 이 단지들은 대부분 지난해 11월 안전진단을 받았지만 은하아파트는 이마저 신청하지 않는 등 재건축 의사를 공표하지 않고 있었다. 한 관리사무소 관계자는 “시범아파트 등을 리트머스 삼아 현재 재건축 수익성의 지표가 되는 용적률 상향이 이뤄질지 주목하고 있다”면서 “이곳 주민들이라고 관심이 없겠나. 될 가망이 있나 없나 관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아파트는 한강을 마주보고 있고, 전용면적이 넓어 재건축 연한을 넘은 여의도 아파트 단지 가운데 가장 매매가가 높다. 전용면적 139.64㎡와 200.3㎡의 매매가는 12월 3일 기준 각각 26억9000만원, 35억원에 이른다.

그러나 여의도역 근처 Y공인중개사는 “침묵 속에 진리가 있는 경우가 있다”면서 “오히려 조용한 단지들을 중심으로 내부에서 활발하게 논의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