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류전원의 대명사를 하나 꼽아본다면 ‘화학전지’, 즉 배터리를 들 수 있다. 세 가지 전지에 관한 칼럼에서 썼듯, 전지라는 이름이 크게 세 가지가 있다 보니 혼동될 때가 많다. 그래서 배터리를 뜻할 때는 ‘화학전지’만을 지칭할 수밖에 없다. 비록 사전적 의미로 배터리는 ‘셀’의 복합적 연결체를 뜻한다 해도 연료 배터리, 태양광 배터리는 쓰지 않는 용어일 뿐이다.

이런 ‘화학전지’의 역사에 리튬이온 이차전지가 1990년대 초에 상업화되기도 전에 일부 연구자들에 의해 꾸준히 연구되던 ‘재충전 가능한 화학전지’들이 있었으며, 이 중에도 All Solid State Batteries라고 부를 수 있는 게 있다. 대표적인 게 ‘리튬금속폴리머 이차전지’와 ‘박막전지’다.

먼저 ‘리튬금속폴리머이차전지’ 이야기를 해보자면, 리튬이온이차전지의 시작점 당시 강력한 경쟁자였던 이차전지 후보의 하나다. 이유는 ‘안전한 이차전지’의 개발이었는데, 기존의 리튬금속일차전지를 재사용 가능한 이차전지로 개발하려는 시도 중에 ‘무모하고도 성급하게’ 휴대전화용으로 채용한 캐나다 ‘몰리에너지’의 리튬 금속 이차전지의 인사사고가 원인이 됐다.

‘안전한 리튬계 이차전지 시스템’을 위한 두 가지 큰 연구 흐름 중 하나였는데, 미국과 유럽 쪽은 리튬금속을 음극 활물질로 그대로 사용하고 ‘액상(액체 상태)’의 비수계 유기 전해질(전지 내에서 이온 전류가 흐를 수 있도록 이온 전도성만을 가진 매질로, 전자 전도성을 가져선 안 된다)을 보다 극한 조건에 견딜 수 있는 매질로 ‘고체 상태’의 난연성 물질로 대체하자는 아이디어였다. 그러던 중 일본 소니 에너지텍에서 ‘반응성이 큰 금속(성) 리튬 음극’이 반복된 충방전 중의 안전사고 원인이라 보고, 전지 내에 ‘리튬이 금속이 아닌 이온 상태로만 존재하도록 설계된’ 리튬이온 이차전지를 1990년대 초에 발명해 상업화에 성공했다. 전지 전체에 리튬이 이온 상태로 존재할 수 있도록 새로운 양음극 활물질을 채용한 것이 핵심이었고 그 중심엔 음극 활물질로 탄소재를 채용한 것이 요체다.

‘안전한’ 최초의 리튬계 이차전지로 세계 최고 수준의 에너지 밀도(용량이 아닌)까지 달성한 듯 보였던 리튬이온 이차전지였지만, 느리게나마 지속적인 에너지밀도 진화를 하던 중에 간헐적인 리튬이온 이차전지 안전사고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차전지의 ‘에너지 밀도’와 ‘안전성’은 동시에 달성하기가 극히 힘든 것으로 리튬이온 이차전지의 ‘세계 최고 수준의 에너지 밀도 달성’은 ‘안전성 문제’를 여전히 갖고 있음이 여러 사례 연구를 통해 속속들이 확인되기 시작했다. 이는 ‘비수계 이차전지’의 천형과도 같은 것이다.

리튬이온 이차전지가 리튬금속을 음극으로 썼을 때 비해 비약적인 안전성 향상이 있었지만, 여전히 간헐적인 안전사고가 터지며 업계는 새로운 기술 개발에 골몰했고, 그의 성과로 안전성이 향상됐다고 주장된 새로운 리튬계 이차전지가 발표되었는데, 이게 바로 소니 에너지텍이 ‘또’ 세계 최초로 개발한 ‘리튬이온폴리머 이차전지’다.

제법 많은 매체와 제작사가 ‘리튬폴리머 전지’라고 마케팅하며 안전성이 획기적으로 개선됐다고 주장했던 것이 바로 ‘리튬이온폴리머 이차전지’였는데, 전지 내 전체를 돌아다니던 액체 전해질을 함침할 수 있는 신형 리튬이온 이차전지가 그의 실체였다. 그런데 오래지 않아 리튬이온폴리머 이차전지도 리튬이온 이차전지와 상보적으로 안전성 측면에서 일장일단이 있음이 속속들이 밝혀졌고, ‘플렉서블’하고 눌려도 된다고 주장하던 이차전지 산학연이 콤보로 친 대형 사고가 갤럭시 노트7 이상발화 사건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일련의 흐름 속에 안전한 새로운 전지는 결국 ‘제대로 된 전고체 상태 이차전지’가 나와야 한다는 과거의 주장이 다시 부각되기 시작했다. 전해질만 제대로 된 ‘고체 상태’의 안전한 기술이 개발되면 된다는 시각이 그것이다. 그런 와중에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간과되고 있는데, ‘리튬 금속’도 고체 상태이기 때문에 얼떨결에 ‘안전한 듯 간주’되고 있다는 점이다.

자, Back to the Basic이다. 역사를 모르고 역사로부터 배우지 못한 이들에겐 진보는 없다. 기초와 기본이 없는 산학연에서 ‘리튬 금속’을 그대로 쓴 채로 만들어질 ‘전고체 상태 이차전지’는 기존 리튬이온 이차전지를 압도할 수 있다는 ‘무개념한’ 주장을 하는 ‘실적 좋고 실력 없는 가짜 석학’들이 자꾸 무리한 주장을 한다는 이야기를 업계에서 듣고 있다. 우리가 그릇된 길로 가는 동안 과거의 최강자였던 일본은 다시 산업, 기술, 기초과학 측면에서 명실항부한 리튬계 이차전지 세계 1위로 다시 올라섰고, 한참 우리 뒤에 있는 줄 알았던 중국도 바람 같이 우리 곁을 지나고 있다. ‘전고체 상태 이차전지’, 정확히 이야기하면 ‘전고상 이차전지’가 과연 우리의 미래일지 다시 고민해봐야 할 때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