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장영성 기자] 올해 들어 현대·기아차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AAA’를 굳건히 지켜온 현대·기아차의 신용등급이 3년 만에 꺾었다. 등급 전망은 20년 만에 하향 조정됐다. 한국기업평가와 한국신용평가 모두 등급전망을 잇따라 조정했다. 현대차의 문제는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

현대차의 부진에 근원은 여러 가지다. 시작은 ‘한전부지 매입’이라고 할 수 있다. 판매량의 약 80%를 차지하는 수출은 좀처럼 부진을 씻지 못하고 있다. 추격성장 한계에 봉착하면서 매출액은 정체돼 있다. 여기에 고임금 저효율성, 그간 순혈주의 고집, 폐쇄적인 연구개발(R&D)은 영업이익 창출 효율을 떨어뜨렸다. 판매량과 제조부분에서 정책적인 문제도 역시 빠지기 어렵다.

▲ 현대자동차 투하자본수익률(ROIC) 분기별 추이. 자료=퀀트와이즈

줄어드는 이익 창출능력과 한전 부지 매입 

현대차의 부진을 확인할 수 있는 대표적인 지표는 ‘투하자본수익률(ROIC)’과 ‘가중평균자본비용(WACC)’이다. 두 회계처리 방식은 투자은행(IB)과 사모펀드(PE)가 인수합병(M&A)에서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지표다. 즉 기업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확인할 때 사용하는 방식이다.

먼저 ROIC다. ROIC는 기업의 영업능력을 확인할 수 있는 지표다. 매출액이 아닌 투자액 대비 수익을 측정한다는 점에서 기업의 영업 수완을 알 수 있고, 분자에 영업이익을 사용하기 때문에 조달구조에 따른 왜곡 현상이 없다. ROIC의 분자는 세후영업이익으로 영업이익을 이용해 산출된다. 분모인 영업 투하자본은 ‘순운전자본+유형자산+기타순영 업자산’으로 계산된다.

현대차의 ROIC는 2013년 2분기 6.41을 기록한 뒤 정점에서 줄곧 추락해오고 있다. 2015년 2점대를 찍더니 올해 1분기에는 0.59에 그쳤다. ROIC의 분모 값인 IC(투하자본)가 줄어들면서 생기는 결과다. ROIC가 낮으면 주력사업의 마진율이 낮다고 할 수 있다. 

▲ 현대자동차 연도별 투하자본수익률(ROIC)와 가중평균자본비용(WACC), 경제적부가가치(EVASpread) 추이. 자료=퀀트와이즈

WACC은 기업의 자본 조달 방식 중 타인의 자본과 자기의 자본에 대한 비용을 가중 평균해 산출한 할인율 개념이다. 기업은 주주와 채권자 등에게 자금을 받아 자산을 구성, 이를 통해 매출을 발생시키고 이익을 만들어 낸다. WACC은 이 이익을 만들어내는 곳에 사용된 비용을 종합 고려한 것이다.

현대차의 WACC는 2014년 12월 8.37로 정점을 찍는다. 2015년에는 절반 수준인 4.93까지 떨어진다. 이후 4.18에서 지난해 4.54 수준까지 오른다. 현대차의 WACC은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만, WACC보다 ROIC가 더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는 영업활동 비용에서 얻는 수익률이 낮아다는 의미다.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현대차는 지난 2014년 10조5000억원에 삼성동 한국전력 부지를 인수는 기업의 영업이익 창출 능력 저하를 가속화했다고 볼 수 있다. 단순히 차량 판매 부진 때문이 아니라는 의미다. 이때부터 현대차의 탄탄한 기반이었던 국내 시장도 흔들린다. 기아차를 인수하면서 얻은 70%대 국내 시장 점유율은 60%대까지 추락한다.

이를 증명하듯 EVA스프레드(ROIC-WACC) 역시 하락한다. 현대차의 EVA스프레드는 2013년 말 기준 12.83에서 지난해 말 1.26까지 급락한다. EVA스프레드는 기업의 실제 수익력, 경쟁력, 주주가치 창출력 측정지표다. 실질적인 주주가치 창출여부와 주주가치의 창출규모를 동시에 반영한다. 현대차의 매출액은 25조원이라는 한계점을 돌파하지 못하고 있고 매출총이익 수준은 떨어지고 있다.

현대차는 지난해부터 유망 스타트업에 투자하며 새로운 먹거리를 찾고 있는 상황이지만, 당시 지출한 금액의 여파는 냉혹하다. 게다가 통신과 인공지능, 정밀지도를 기반으로 한 차세대 스마트카 시대에 현대차가 갖고 있는 기술 비전이 사실상 없다는 냉혹한 평가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민간경제정책연구소 관계자는 “현대차의 급성장의 배경엔 기술과 품질력보다 앞선 글로벌 업체들의 내연기관 기술 한계에 봉착한 것에 있다”면서 “추격성장 한계에 다다른 현대차의 부진은 단순 판매량 감소나 점유율 하락을 넘어서 생존에 문제가 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 현대자동차 매출액 관련 지표 추이. 자료=퀀트와이즈

‘고임금 저효율’ 고착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현대차의 고용 구조도 문제다. 현대차의 급여 추이를 보면 2014년 3분기 이후 매분기 평균 6000억원에 이르는 임금 지출을 기록하고 있다. 퇴직급여와 복리후생비 또한 크게 줄지 않고 고른 분포를 보이나, 이 기간 영업이익은 반토막이 났다.

이러한 임금 추이 배경에는 강성 노조가 대표적이다. 세계경제포럼(WEF) 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해 한국의 노동시장 효율성 종합 순위는 73위다. 2007년 24위에서 급락했다. 노사 협력 수준을 보면 137개국 중 130위에 머물러 있다. 세계 2위 자동차 생산국이었던 1950년대 영국이 2000년대 중반 몰락하게 된 길과 똑같은 길을 걷고 있다.

현대차 노조가 파업을 하지 않는다면 약 4300억원의 추가 이익이 생기게 된다. 김준성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2000년 이후 현대차는 4차례 무파업 경영을 실연한 바 있다”면서 “파업 여부에 따른 전년 대비 연간 본사 영업이익률 변동폭은 0.98%다. 이를 국내 공장 매출에 적용하면 영업이익 추가 발생금은 4356억원이다”라고 설명했다.

현대차 임직원의 고령화 문제도 자리 잡고 있다. 지난해 기준 직원 1인당 평균 급여는 현대자동차가 9200만원이다. 2014년에 1인 평균 급여가 9700만원을 기록한 뒤 매년 100만~200만원가량 하락해오고 있다. 현대차의 지난해 1인당 평균 급여는 삼성전자(1억1700만원)보다 적었다.

그러나 근속연수는 현대차가 18.8년으로 삼성전자(11.0년)보다 길었다. 현대차의 직원 평균 근속연수는 2014년에 16.9년, 2015년 17.2년, 2016년 17.5년 등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이러한 증가 추세는 현대차 임직원의 평균 나이가 올라가고 있음을 방증한다.

▲ 현대자동차 영업이익·급여·퇴직급여·복리후생비 분기별 추이. 자료=퀀트와이즈

제조업의 위기? 정책의 문제인가

현대차의 위기는 국내 제조업 위기에 근간을 두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국내 자동차 산업 위기가 현실화된 사례는 올해 초 한국GM 군산공장 폐쇄라고 할 수 있다. 홍성수 서울대학교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올해 초 한국GM의 군산공장 폐쇄는 국내 제조업 위기를 여실히 드러내는 이슈”라면서 “제조업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자동차 산업이 흔들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제조업 생산 능력은 6개월 연속 전년 대비 감소했다. 자료를 보면 한국의 제조업 생산능력지수는 지난해 12월 104.1로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0.5포인트 하락한 이후 올해 들어 8월까지 2월(0.1포인트) 한 달을 제외하고 하락 행진을 이어갔다. 특히 3월 -0.6포인트, 4~6월 -1.0포인트, 7월 -1.1포인트, 8월 -1.4포인트 등으로 하락폭이 확대됐다.

6개월 연속 감소세는 관련 통계를 작성한 이후 처음 있는 이례적인 일이다. 조선, 자동차 등 주력 산업의 구조조정으로 한국GM 군산 공장 등 일부 생산 설비가 폐쇄된 가운데 지난해 홀로 제조업 생산능력 확대를 주도했던 반도체 산업의 투자가 마무리 국면에 접어든 결과다.

▲ 제조업 생산능력지수 증감률 전년 대비 감소 추이. 자료=통계청

부문별 생산능력지수를 확인하면 자동차 침체가 여실히 드러난다. 지난해만 해도 생산능력지수가 1~2포인트 상승했던 자동차 산업(자동차 및 트레일러 제조업)의 경우도 올해 들어 하락세로 꺾였다. 특히 올해 5월 한국GM 군산공장 폐쇄를 전후해 하락폭이 -3~-4포인트로 커졌다. 자동차 부품 제조업의 생산능력지수 역시 올해 3월부터 내림세로 돌아섰다.

회복세를 기대하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한국은행이 발표하는 기업경기실사지수(BSI)에 따르면 제조업 부문 기업들의 BSI는 올해 1~9월 중 6월(80)을 제외하고 단 한 번도 기준선 80에 도달하지 못했다. 제조업 경기가 나아질 것으로 기대하는 기업들이 드물다는 의미다.

제조업 부진은 경제에 시사하는 바는 크다. 제조업 위기는 수많은 1차, 2차, 3차 협력사가 함께 부진을 겪게 만든다. 관련 생태계 하나가 통째로 어려워지는 것이다. 자동차를 포함한 국내 제조업은 우리나라 수출의 86%를 차지하고 있다. 한국자동차산업협동조합에 따르면 자동차 1차 협력 부품업체 89개사 중 42개사가 영업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워크아웃이나 부도 처리되는 기업도 잇따르고 있다.

글로벌 자동차 시장은 지난 2006년부터 2017년까지 연평균 성장률(CAGR) 3.2%의 성장률을 보이고 있지만 금융위기 이후 성장률은 줄어들고 있다. 중국 경제 ‘뉴 노멀’ 진입 등 글로벌 저성장 기조가 지속해온 결과다.

저성장 이면에는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한 통상마찰이 배경으로 자리 잡고 있다. 글로벌 보호무역주의 강화로 자동차 교역 자체가 위축된 데다 정치적 마찰 등 이슈가 발생하면서 각국이 중장기적으로 국내 업체 점유율 신장을 노리고 있다.

글로벌 선진 국가들은 이미 자국 제조업 지키기에 나섰다. 미국은 제조업 육성을 위해 해외진출 기업의 국내 복귀를 권장하는 ‘리쇼어링 정책’을 정권과 관계없이 꾸준히 추진 중이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리메이킹 아메리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2010년부터 미국으로 귀환하는 기업에 대해 법인세를 38%에서 28%로 내렸다. 공장 이전 비용 20%도 지원한다.

오바마의 모든 정책을 반대해온 트럼프 대통령도 리쇼어링 정책을 지지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법인세율을 최고 21%까지 더 내렸다. 해외 생산 제품을 미국으로 들여올 때는 35%의 관세를 부과하는 등 제조업의 귀환을 앞당기고 있다.

정책 효과는 뚜렷하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리쇼어링으로 미국 내 약 80만명의 제조업 일자리가 생겨나고 240만명에 달하는 간접고용 효과도 나타날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도 ‘아베노믹스’도 제조업 귀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파나소닉, 토요타, 닛산 등 기업들이 일본으로 돌아갔다.

반면 국내 정책은 올해부터 과세표준 3000억원 초과 기업에 대한 법인세율을 22%에서 25%로 올렸다. 대기업의 투자 및 연구개발(R&D)에 대한 공제율은 계속 줄여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