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리운전기사가 도로 가운데 정차한 자동차를 술에 취한 상태로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킨 경우도 음주운전에 해당할까?

# A는 운전면허가 취소될 수 있는 혈중알코올농도 0.140% 상태에서 술에 취한 상태로 자동차를 운전하였다는 이유로 도로교통법 위반(음주운전)으로 기소되었습니다. 그러나 A는 자신이 술을 마신 후 대리운전 기사를 호출하여 자신의 집까지 자동차를 운전하도록 하였다가 운전 중 서로 시비가 되어 대리운전 기사가 자동차를 편도 2차선 갓길이 없고 2차로 옆에 가드레일이 있는 도로에 정차시키고 가버리자 어쩔 수 없이 자신이 자동차를 그곳에서부터 운전하여 약 300m 떨어진 주유소 앞에 정차하였을 뿐이라며 억울함을 호소하였습니다.

이에 법원은 대리운전기사가 자동차를 정차하여 둔 도로는 새벽 시간에 장시간 자동차를 정차할 경우 사고 위험이 상당히 높다고 보이는 점, A가 자동차를 운전하여 간 거리는 약 300m에 불과하여 A는 임박할지도 모르는 사고 위험을 회피하기 위하여 필요한 만큼의 거리를 운전한 것으로 보이는 점, A는 자동차를 안전한 곳에 정차하여 둔 후 경찰에 112로 자발적으로 신고하면서 자신의 음주운전 사실을 여과 없이 그대로 진술한 점, A의 행위로 침해되는 사회적 법익과 그로 인하여 보호되는 법익을 비교할 때 후자가 보다 우월한 법익이라는 점 등을 고려해 비록 A의 행위가 음주운전에는 해당하지만, 자기의 법익에 대한 현재의 위난을 피하기 위한 상당한 이유 있는 행위, 즉 ‘긴급피난’에 해당하여 위법성이 조각된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하였습니다.

이번 판결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범죄성립요건’이라는 개념을 먼저 알고 있어야 하는데요. ‘범죄성립요건’이란 말 그대로 어떠한 행위가 범죄로 인정되기 위한 요건으로서 ① 해당 행위가 형법 등이 규정한 범죄행위에 해당할 것(구성요건해당성), ② 해당 행위가 위법할 것(위법성 조각사유의 부존재), ③ 행위자가 해당 행위에 대한 책임능력이 있을 것(책임 조각사유의 부존재)을 그 내용으로  합니다. A의 사례에 적용시켜 보자면, A의 음주운전행위는 비록 도로교통법이 정한 범죄행위에 해당하여 ‘구성요건해당성’은 있지만, 음주운전을 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 법익보다는 A의 자동차가 도로 한 가운데 방치되어 위태로워진 A의 생명을 구하는 것이 훨씬 위급하고 가치 있는 일이므로 이 경우의 음주운전은 A의 부득이한 선택으로서 ‘위법성이 조각’, 즉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 판결은 1심 판결에 불과하고, 실제로 검찰은 이번 무죄판결에 반발하여 항소까지 한 상황이어서, 이를 일반화하는 것은 곤란합니다. 오히려 지금까지의 판례들에 비추어 본다면, 이번 판결은 매우 이례적인 것에 속하고, 위법성 조각사유인 ‘긴급피난’이 인정되는 사례도 매우 드문 편입니다. 일례로 최근 서울남부지방법원은 ‘피고인이 새벽 3시쯤 대리운전 기사를 불러 집 근처까지 운전해 왔으나, 대리운전 기사가 남의 가게 문 앞에 주차를 하고 가버려 혈중알코올 농도 0.122%로 면허취소까지 될 수 있는 피고인이 차량을 직접 30㎝ 정도 운전해 다시 주차했다가 음주운전 위반으로 단속에 걸린 사안’에서 ‘당시 새벽 3시라서 가게가 영업을 하지 않고 있었고, 다른 대리운전 기사나 경찰 등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차량을 이동시킬 수도 있었으므로, 긴급피난이나 정당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유죄를 선고한 적도 있습니다(서울남부지방법원 2017. 9. 7. 2017고정389 판결). 술자리가 잦은 명절에는 가급적 차량을 두고 대중교통을 이용하시고, 혹시 음주 후 대리운전을 호출하시더라도 대리운전기사와는 다투지 않으시는 것이 불미스러운 일을 막는 근본적인 대책이겠습니다.

 

2. 시어머니가 며느리 몰래 며느리의 공인인증서로 보증을 서도 그 보증은 유효하다.

# 남편과 함께 주유소를 운영하는 시어머니 A는 며느리 B에게 아파트를 사주려는데 자금이 부족해 B 명의로 일부 대출을 받아야 한다며, 같이 은행에 갈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이에 B는 A와 함께 은행에 방문하여 B명의의 대출거래용 계좌를 개설한 후 그 계좌의 통장과 인터넷 뱅킹 보안카드 등을 A에게 교부하였습니다. 그러나 A는 남편이 주유소에 유류를 공급하는 정유사에 대한 외상대금지급을 담보하기 위하여 C보험회사와 보증보험계약을 체결하면서 B의 허락도 받지 않고 B가 교부한 보안카드 등을 이용하여 B명의의 공인인증서를 발급받았고, 이를 이용해 C보험회사 홈페이지에 로그인하여 연대보증서류에 전자서명을 하는 방법으로 C보험회사와 B 사이의 연대보증계약을 체결하였습니다. 

이번에는 며느리의 동의도 받지 않고 며느리를 자기 채무의 연대보증인으로 세운 시어머니 사건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흔히 보증계약이라고 하면 많은 분들이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에 존재하는 계약에 부가되는 계약쯤으로 생각하시는데요. 사실 보증계약은 채무자를 위하여 채권자와 보증인이 체결하는 별도의 독립된 계약입니다. 따라서 보증계약 역시 일반적인 채권자, 채무자 사이의 계약과 마찬가지로 채권자와 보증인 사이에 ‘채무자를 위하여 보증인이 채무자가 채권자에 대하여 부담하고 있는 채무를 보증한다.’는 합의가 필요한 것이지요. 그러나 이번 사건을 살펴보면, 시어머니인 A는 며느리 B의 동의도 받지 않고 B를 대리하여 C보험회사와 연대보증계약을 체결하였으니, B와 C 사이에는 A를 위하여 연대보증계약을 체결한다는 합의 자체가 없었다고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B와 C 사이의 연대보증계약은 원칙적으로 무효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C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죠. C는 B의 시어머니인 A가 B의 공인인증서까지 가지고 와서 보증계약을 체결하겠다고 하니 A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지금의 공인인증서는 과거 인감도장과도 같은 역할을 하여 공인인증서만 있으면 은행거래로부터 부동산 처분까지 대부분의 경제활동을 할 수 있으니 누군가의 공인인증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 사람의 경제활동에 관한 모든 처분권한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대리인이 공인인증서 명의자와 가족관계라면 상대방으로서는 대리인에게 대리권이 있다고 믿을 수밖에 없겠죠.

이에 법원도 C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B는 A에게 아파트를 매수하는 내용의 매매계약을 체결하거나 이와 관련한 대출을 받는 등 금융거래에 관한 대리권을 이미 A에게 수여하였고, 현행 전자서명법, 전자문서 및 전자거래 기본법 등의 내용을 살펴보면, C가 A에게 B의 대리권이 있다고 믿은 것에는 ‘정당한 사유’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 민법은 대리권 없는 거래 행위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무효’로 판단하면서도, 거래 상대방이 대리권이 있다고 믿은 데에 ‘정당한 사유’가 있다면 거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예외적으로 해당 거래가 정상적인 대리권 수여에 의하여 이루어진 것으로 보겠다는, 이른바 ‘표현대리’규정을 두고 있습니다(민법 제125조, 제126조, 제129조 참조). 이번 판결의 경우도 비록 B가 A에게 연대보증을 위한 대리권을 수여한 적은 없지만, 여러 정황상 C가 A에게 연대보증과 관련한 B의 대리권이 있음을 믿은 것에 ‘정당한 사유’가 있다고 보아 표현대리를 인정한 사안입니다.

아무리 가까운 가족사이라도, 금전적인 문제는 투명하게, 그리고 자기 재산에 대한 처분권한은 누구에게도 맡기지 말고 반드시 자기의 관리 하에 두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