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황진중 기자] 의료계 리베이트에 대한 정부의 감시와 처벌강화에도 의료분야의 불법 리베이트가 뿌리뽑히지 않고 있다. 리베이트 관행은 의약품 등의 투명한 유통질서를 왜곡하고,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을 가중하며 건강보험 재정 악화를 초래한다. 최근에는 제약사 영업사원이 의사 대신 예비군 훈련에 참석했다가 적발된 사례도 있을 만큼 '갑을문화'는 의료계의 고질병으로 지적된다. 

서울서부지방검찰청 정부합동 의약품 리베이트 수사단은 최근 영양수액제 전문 제약사의 불법 리베이트 제공사건을 수사해, 전국 병원 100곳에 소속한 다수의 의료인들에게 11억원 상당의 의약품 리베이트를 제공한 제약사 대표이사 등 임직원 3명, 제약사 영업대행업체(CSO) 대표1명과 5억원 상당의 리베이트를 제공한 의약품도매상 대표 1명, 이들로부터 수수한 의약품도매상 임직원 3명과 의사 101명을 입건해 이 중 83명을 불구속 기소하고, 보건복지부 등 관계기관에 위 제약회사와 의사들에 대한 행정처분을 의뢰했다.

의약품 리베이트 수사단은 “수사결과 다수의 종합병원에서 제약회사로부터 리베이트 자금을 받아 의국 운영비로 사용하는 불법 관행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음을 확인했다”면서 “최근 몇 년 사이 증가한 CSO가 제약회사를 대신해 의료기관에 리베이트를 제공하는 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고 밝혔다.

리베이트는 A에게 지급받은 의약품이나 용역의 값의 일부를 다시 A에게 돌려주는 행위나 금액을 뜻한다. 리베이트는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볼 수 있다. 첫번 째는 정해진 금액을 A에게 모두 받은 후 그 중 다시 일부를 A에게 돌려주는 것이다. 두 번째는 아예 처음부터 정해진 의약품 등 상품의 값에서 일정금액을 깎아 A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공정거래법은 정상 거래관행에 비추어 과도한 리베이트 제공을 ‘부당고객유인행위’로 금지하고 있다. 

▲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리베이트 민원 추이. 출처=국민권익위원회, 이코노믹리뷰

의료 병원 리베이트 민원 추이는 2014년 148건에서 2015년 105건, 2016년 213건, 지난해 7월말 기준 266건으로 2년 전부터 다시 200건 이상으로 증가했다.

국민권익위원회는 리베이트 관행이 지속하는 이유로 국내 제약업계는 성분과 효능이 동일한 제네릭(화학성분 카피약) 중심의 시장경쟁구조로, 동일증상에 대한 처방가능 의약품이 대부분 2개 품목 이상으로 어떤 의약품을 처방할지에 대한 여부를 전부 의료인이 결정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의사의 원외처방은 특정 제약사의 제품명(제품명처방)으로 처방돼 전문의약품은 의료인의 처방에 따라 제약사의 매출규모가 결정된다.

의약품 공급업체는 2016년 기준 총 2544곳이고, 이 중에서 제조사는 268곳, 수입사 195곳이며 도매상은 2081곳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의약품 유통금액은 56조5000억원이다. 이 중 의사의 처방이 필요한 전문의약품이 50조8000억원으로 89.9%를 차지하고 있다.

▲ 2016년 기준 의약품 유통금액과 지난해 기준 급여대상 의약품목 수. 출처=국민권익위원회, 이코노믹리뷰

지난해를 기준으로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되는 의약품목의 약 91.3%는 의사의 처방이 필요한 전문 의약품이다. 등제품목수 2만1399개 중 전문의약품이 1만9527개이며 일반 의약품은 8.7%인 1872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몇몇 제약회사는 자사의약품이 많이 처방될 수 있도록 의약품 판매촉진을 위해 시장조사 등 대행업체를 통해 우회해서 리베이트를 제공하거나 현금, 상품권 등 기존 리베이트 방식, 원룸 월세 등을 대답하는 음성 리베이트, 고가 선물 제공, 허위 영수증 이용 등 다양한 방식의 리베이트를 활용할 수밖에 없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제약사가 리베이트의 규모를 제시하면 의료인은 보다 많은 리베이트를 제시하는 제약사 의약품으로 처방의약품을 변경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의약품 처방에 따르는 리베이트 규모는 종류와 매출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통상 매출액의 5~20% 수준이다.

검찰청 리베이트 수사자료에 따르면 2015년 요양급여비용 58조170억원 중 연간 1조3950억원에서 2조7900억원 규모가 리베이트 비용으로 사용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의료계 리베이트는 요양급여비용에 피해를 끼칠 뿐 아니라 후발주자의 시장 참여 장벽이 높아지는 등 공정한 시장경쟁을 추구할 수 없게 되는 문제점이 있다.

리베이트에 대한 처벌은 2010년부터 수수자와 제공자 모두 처벌받는 쌍벌제가 적용된다. 이를 수수한 의료인은 자격정지 등의 행정처분, 제약사는 면허정지, 판매업무정지 등의 강력한 행정처분이 이뤄지고 있음에도 최근까지 불법 리베이트는 계속 이뤄지고 있다.

▲ 동화약품 임직원 350여명이 지난 5월 2일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 내 성의회관에서 연 ‘2018년 공정거래 자율준수 프로그램(Compliance Program, CP) 강화 선포식’에서 선서를 하고 있다. 출처=동화약품

한국제약바이오협회에 따르면 대웅제약, 대원제약, 동아ST, 유한양행, 일동제약, 코오롱제약, GC녹십자, JW중외제약, 한미약품, 동구바이오, 명인제약, 보령제약, 삼진제약, 안국약품, 휴온스글로벌, 종근당, 제일약품, 엘지화학, CJ헬스케어, SK케미칼생명과학부문, 한독, 글락소스미스클라인, 한국아스텔라스제약, 한국얀센, 동국제약, 서울제약, 신풍제약, 한국유나이티드제약, 동화약품 등이 국제표준화기구(ISO)가 제정한 반부패경영시스템 표준인 ISO 37001을 도입했거나, 도입을 준비 중에 있다.

대한의사협회도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의학회는 특정한 약품을 처방하는 대가로 의사 개인이 직간접적으로 제공받는 금품을 부당한 의약품 리베이트로 규정하고 이에 대한 명확한 단절은 선언한다”면서 “의약품을 선택하는 것은 의사의 권리이지만, 의약품의 선택에 대한 대가를 받는 것은 의사의 권리가 아니다”고 밝혔다.

의료계 불법 리베이트 근절을 위해 각 관련 단체나 기업이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가운데, 전문의약품을 선정할 때 약사심의위원회를 거치는 한림대학교의료원이 주목된다. 

5개 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한림대학교의료원은 ‘약사심의위원회’를 운영해 약품에 대해 사전 심의를 하고 있다. 한림대의료원은 ‘발사르탄 사태’가 벌어질 당시 암 유발 가능성이 있는 중국산 발사르탄를 도입 단계부터 걸러내며, ‘발사르탄 위기’를 잘 넘겼다.

약사심의위원회 등 처방약을 선정하는 위원회 설립으로 리베이트 문제가 개선될 수 있을지는 관련조사가 필요하지만, 리베이트가 의료계 구조상의 문제라는 것은 자명한 것으로 풀이된다.

경기도약사회는 “특정 제약사로부터 리베이트를 받은 의사가 선택한 의약품을 변경하거나 걸러낼 수 없이 그대로 환자에게 전달될 수밖에 없는 한국의 현실에서 제네릭 의약품을 생산하는 중소 제약사, 유통사는 리베이트에 의존하는 구조가 필연으로 형성됐다”면서 “불법적인 리베이트는 결국 약가에 전가되고 생산단가를 낮추기 위해 저가 원료를 사용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고 비판했다.

경기도약사회는 또 “갈수록 규모가 커져가는 리베이트 적발이 의료계에 리베이트 만연을 방증하고 있다”면서 “중소제약사, 판매대행업체(CSO)의 리베이트 관행으로 인한 약가 부담 증가의 악순환 구조 차단과 환자의 자기약 선택권 확보를 위해 성분명 처방 제도의 조속한 법제화를 촉구하며, 동일성분조제가 더욱 확대될 수 있도록 보건당국이 적극 나서야 한다”고 ‘성분명 처방’이라는 또 다른 구조적 해법을 제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