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견다희 기자] “헤어스타일에 변화가 좀 있었다. 정치적인 의사표시도 아니고, 사회에 불만이 있는 것도 아니고, 종교적인 의도가 있는 것도 아니다. 최근 좀 심하게 탈모현상이 일어났는데 방법이 없었다. 본의 아니게 속살을 보여드리게 됐다”

지난해 5월 23일 경남 김해시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8주기 추도식에서 삭발한 모습으로 단상에 오른 아들 노건호 씨가 한 말이다. 그의 말처럼 헤어스타일은 정치적 의사, 사회 불만, 종교적 의미, 정체성, 미적인 측면에 등 많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예민한 부분이다.

서양사에 한 획을 그은 로마의 정치가 가이우스 율리우스 사이사르는 탈모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시저’라는 영어식 발음으로 더 잘 알려진 그는 정수리가 반짝이는 것이 남들에게 보이지 않게 가리고 다녔다.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그를 대머리라고 조롱한다고 생각해 탈모를 큰 결점으로 여겼다.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탈모 대처 방법으로 염소 오줌을 직접 머리에 발랐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의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히포크라테스는 비둘이 똥을 이용해 탈모 환자 치료를 시도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렇듯 탈모의 역사는 장구하다. 그러나 과거보다 기술과 과학이 월등히 발전했음에도 여전히 유전, 스트레스 등의 이유로 많은 사람이 탈모로 고통을 받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닐슨코리아의 지난해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 남성 80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47%가 탈모로부터 고통 받고 있다. 국내 탈모 인구는 1000만명 이상인 것으로 파악된다.

탈모관리 제품 시장도 4조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2004년 대비 10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해마다 14% 이상 성장하고 있다. 전 세계 탈모 관련 산업 규모가 8조원인 것을 감안하면 절반에 해당한다.  

‘머리카락이 쑥쑥’ 허위·과대 광고

탈모 관련 산업의 경제적 부가가치만 보고 무작정 시장에 뛰어들어 소비자를 기만하는 행위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기업들이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지난 9일 탈모 증상 완하에 도움을 주는 기능성화장품을 허위·과대 광고한 인터넷, 홈쇼핑 등 온라인 판매사이트 587개(14개사, 14개 제품)을 적발해 시정, 고발, 행정처분 등의 조처를 했다.

시정, 고발, 행정처분을 받은 곳 중 ‘네이처리퍼블릭’, ‘TS트릴리온’, ‘코스모코스’, ‘꽃을든남자’ 등 다수의 유명 브랜드도 포함돼 있었다.

▲ 네이처리퍼블릭은 화장품을 의약외품으로 광고해 시정조치를 받았다. 출처= 식약처

네이처리퍼블릭은 ‘자연의올리브하이드로 샴푸’를 판매하면서 ‘의약외품’으로 표시했을 뿐 아니라 ‘모발 굵기 증가’, ‘발보·양보’ 등의 표현을 사용했다. 이는 모두 허위·과대광고에 해당한다.

네이처리퍼블릭 관계자는 “식약처 처분 내용에 따라 자사 공식 쇼핑몰과 입점몰 들에 게재된 광고 내용에 대해 수정했다”면서 “적발 내용 가운데 많은 부분을 오픈마켓에서 판매하는 개인 사업자여서 입점몰 협조를 받아 광고 내용에 대한 수정을 요청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앞으로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관리·감독을 철저히 하고 내부 제도 개선에 나설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TS트릴리온은 탈모샴푸 시장점유 1위 브랜드다. 지난 2014년 GS홈쇼핑 단독 론칭한 이래 지난해까지 1100억원의 매출과 135회 매진을 기록했다. 그러나 TS트릴리온은 포털사이트에서 확인되는 기업사이트 소개부터 ‘탈모예방’, ‘탈모방지’, ‘탈모치료’ 등 문구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TS트릴리온은 일부 인터넷몰에서 ‘탈모증상 완화’ 광고 글이 적힌 TS샴푸가 ‘의약외품 탈모의 방지’ 문구가 있는 제품과 함께 팔리고 있다. ‘의약외품 탈모의 방지’를 표기한 제품이 많이 판매된 제품군의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어 일각에서 제기된 ‘양체 영업론’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TS트릴리온 관계자는 “인터넷에서 현재 판매되는 ‘탈모의 방지’ 표시 제품들은 다른 업체가 대량으로 사들여 재판매하고 있는 것”이라면서 “우리 책임과 무관하다”고 회피했다.

▲ 제품별 점검결과와 위반내용. 출처= 식약처

의약외품은 질병을 치료하거나 예방하기 위한 의약품보다 인체에 대한 작용이 경미한 물품이다. 이는 보건복지부가 따로 정한 분류 기준에 의한 약품을 뜻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처장에게 제조업 신고와 품목별 품목허가 또는 품목신고도 해야 한다.

정부는 지난해 5월 탈모완화 샴푸를 ‘의약외품’에서 ‘기능성화장품으로’ 이관하면서 ‘탈모 증상 완화에 도움을 주는 화장품’으로 정의했다. 이는 소비자들의 오해를 막기 위한 조치지다. 그러나 네이처리퍼블릭, 닥터포헤어, 코스모코스, TS트릴리온 등 유명 탈모샴푸 브랜드들은 이를 따르지 않았다.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은 유방암 선고를 받은 한 여성에 관한 일화를 소개했다. 유방암 선고를 받은 한 여성은 입에서 가장 먼저 나온 말이 놀랍게도 ‘내 머리카락을 잃게 되는가’였다. 머리카락을 잃는다는 것은 그녀에게 정체성과 여성성을 상실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실제로 전문가들은 탈모가 광범위하게 일어나는 환자들은 팔, 다리처럼 중요 신체부위를 잃는 사람들과 동일한 반응을 보인다고 설명한다. 이들은 부정-분노-협상-우울-수용의 감정적 고통 단계를 겪게 된다.

김문규 경북의대 피부과 교수는 “탈모 관련 산업의 경제적 부가가치만 보고 무작정 이 시장에 뛰어드는 것은 단견의 소치다”면서 “철저한 과학적 연구와 세심한 마케팅이 요구되고 개개인의 특성을 반영한 모발관리 코칭과 심리 상담 등 한 단계 진화된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 지적했다. 김 교수는 “탈모 환자들도 보조적인 제품에 의지할 것이 아니라 적극 치료에 나서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