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김동규 기자, 전현수 기자, 황진중 기자] 오는 7월부터 주 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된다. 주 52시간제 시행을 밀어붙인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정부, 청와대는 지난 20일 오전 국회서 고위 당정청협의회를 열고 근로시간 단축이 담긴 근로기준법 개정안 시행에 대해 올해 말까지 6개월 동안 계도기간을 갖기로 결정했다. 사용자를 대변하는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요구한 근로시간 단축 시행 후 ‘6개월 계도기간’ 요청을 수용한 것이다.

▲ 7월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에서 주52시간 근무제가 시행된다. 출처=고용노동부

경총은 지난 18일 고용노동부에 ‘근로시간 단축 개정 근로기준법 시행 관련 경영계 건의문’을 전달했다. 경총은 건의문에서 “근로시간을 주 52시간으로 단축하는 개정 근로기준법이 다음달 1일부터 시행되는데 현장의 노력과 연말과 연초에 이뤄지는 신규채용의 특성을 감안해 단속과 처벌보다는 6개월의 충분한 계도기간을 부여해야 한다”고 건의했다. 경총은 “인가연장근로의 허용범위 확대와 탄력적 근로시간제 단위기간 확대를 위한 조속한 논의가 필요하다”고도 밝혔다.

경총은 인가연장근로 허용범위 확대를 위한 이유로 ‘석유, 화학, 철강업의 대정비와 보수작업과 조선업의 시운전, 건설업의 기상 악화로 인한 공사기간 지연, 방송과 영화 제작업의 인력 대체가 불가능한 만큼 근로시간 총량 자체가 한시적으로 증가한다는 것’을 들었다. 또 탄력적 근로시간제에는 근로시간의 총량이 정해져 있는 만큼 활용이 제한적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경총은 “현행 탄력적 근로시간제는 단위기간이 2주 또는 3개월에 불과하고, 선택적 근로시간제 역시 1개월 이내로 제한돼 있어 기업이 근로시간을 유연하게 활용하는데 한계가 있다”면서 “단위기간을 확대하는 제도개선이 조속히 이뤄져야 성공적인 근로시간 단축의 연착륙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 중소기업체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애로사항.출처=중소기업중앙회,신한금융투자

경총의 건의가 받아져 계도기간이 6개월로 늘어남에 따라 기업들은 일단 한 숨을 돌리는 분위기다. 기업들은 근로시간 단축이 일과 생활의 균형을 뜻하는 ‘워라밸’과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수 있도록 일하는 방식과 기업문화를 바꿔야 한다는 큰 뜻에는 동의하면서도 연구개발과 영업분야에서 대책을 마련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는 견해를 보여왔다.  업종과 기업 규모에 따라 의견이 다르고 대응책도 상이하지만 52시간제 시행 방향에 대해서는 공감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자동차 업계 OK...R&D분야 유연한 근무제도 필요해

자동차 업계는 생산부문에서 52시간 근무제를 도입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현대차 등 국내 5사 모두 주 52시간을 넘지 않는 근무를 시행중이기 때문이다. 

생산직 직원들은 근무환경 변화에 낯설어하지만 점차 적응하면서 밝아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전언이다.  34년째 쌍용차에서 근무한 조병호 평택공장 차체2팀 기술수석은 “집에서는 아내가 오히려 좋아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사무직이나 연구개발(R&D)부서에는 유연근로제를 도입해 현대차를 비롯한 대부분 기업들이 시범 운영을 하거나 운영방침을 논의 중이다. 한 자동차 업체 R&D(연구개발)부서 관계자는 “신차 출시나 프로젝트 마감, 차량 리콜 등의 문제가 터지면 업무가 많아지는 경향이 있는데 이럴때는 더욱더 유연한 근무제도가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R&D부서는 6개월에서 1년 이상 장기 프로젝트를 수행하는데 막판 1~2달은 야근을 기본으로 해야 한다.

▲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별 실근로시간. 출처=OECD

현대차는 근무시간을 일정 범위 안에서 선택할 수 있는 선택적 근로시간제와 업무시간을 본인이 입력하는 근무시간 관리시스템을 시범 운영 중이다. 본사 일부 부서는 유연근무제를 적용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특정시간을 집중근로시간으로 정하고 출퇴근 시간을 유연하게 운영하는 방법이다. 현대모비스는 지난달부터 사무직에 한해 집중근무제를 시행하고 있다. 

쌍용차는 지난 4월부터 주야 2교대에서 주간 연속 2교대로 바꾸며 밤샘 작업을 없앴다.  근로자 1인당 일일 평균 근로시간은 기존 10.25시간에서 8.5시간으로 줄었다. 르노삼성차와 한국GM의 생산직도 일일 8시간 근무제를 시행하고 있다.

쌍용차와 한국GM은 사무직 근로방법을 조율중이다. 탄력근무제를 통해 근무시간을 조정하는 방향으로 논의를 계속 하고 있다. 

수입차 업체는 조금 다르다.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는 국가가 지정한 공휴일 전날 오후를 쉬는 ‘패밀리데이 제도’를 도입했다. 직원들이 더 유연하게 휴가를 계획하고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하는 조치다. 특히 벤츠는 정부가 대체 휴무일 제도를 도입하기 전부터 공휴일이나 명절이 주말과 겹치면 ‘회사 휴무일’로 지정해 휴식을 보장해왔다.

벤츠는 유연근무제도 6년 전부터 이미 시행하고 있다. 직원들은 스스로 하루 9시간 내에서 근무시간을 정해 탄력적으로 일한다. 워라밸을 배려한 제대로 2주 리프레시 휴가도 운영하고 있다. BMW코리아는 탄력근무제를 이용해 주 52시간 근무를 동비해도 무리가 없다. 독일 BMW그룹은 노동자 개인별로 근로시간 저축 계좌를 만들어 단기적인 경기상황와 생산량 변동에 대해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삼성 7월부터 유연근무제

삼성그룹은 7월부터 유연근무제를 도입한다. 방식은 최소 근무시간은 주 40시간이 아니라 월평균 주 40시간으로 정했다. 즉 월평균 개념으로 야근 포함해 한 주에 52시간 이상 근무가 가능하도록 했다. 예를 들면 첫주에 주당 40시간, 둘째 주 40시간, 셋째 주 60시간, 넷째 주 20시간으로 하는 방식이다.

바쁜 주에 일을 몰아서하고 그 다음 주에 매일 4시간씩 하고 퇴근할 수 있도록 하는 근무방식이다.

삼성 관계자는 "이미 자율출퇴근제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주 52시간으로 근무시간이 바뀌어도 별다른 문제사항이 없다"고 말했다.
 

현대중공업 업무용 PC 강제종료 

현대중공업은  7월부터 퇴근 시간이 지나면 회사 내 업무용 PC의 전원을 강제종료하는 시스템을 도입한다고. 연장근로가 필요하다면 사전 승인 후에야 PC를 사용할 수 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새달 1일부터 사무직 직원의 컴퓨터는 퇴근 시간인 오후 5시 이후 모두 강제로 꺼진다”면서 “연장근무가 필요하다면 회사 시스템을 통해 사전 승인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롯데는 이미 올해 초부터 퇴근시간 30분이 지나면 사무용 컴퓨터가 자동으로 꺼지는 ‘PC오프제’를 전 계열사에서 단계별로 시행하고 있다. 롯데도 초과근무를 할 경우 반드시 사전승인을 받아야 한다. CJ대한통운도 PC오프제 도입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PC강제종료는 기업뿐만 아니라 공공부문에서도 적용되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 3월 매주 금요일 밤 업무용 PC를 강제로 끄게 만드는 ‘셧다운’제도를 도입했다. 

 
게임업계, 일 많은데...
 
게임 출시가 임박하면 어쩔 수 없이 근무시간이 늘어나는 특성이 있는 게임업계도 자체적인 대응 방안을 마련 중이지만 여전히 애로사항이 많을 것이라고 하소연하고 있다.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현재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부족하고 개발 파트의 경우 업데이트나 신작 출시를 앞둘 경우에 근로시간에 대한 압박을 크게 느끼고 있다”면서 “특수 상황에 어떻게 대응해 나가느냐가 가장 큰 고민”이라고 말했다.

게임개발사인 엔씨소프트는 연초부터 대응을 시작해 유연출퇴근제와 탄력 근로시간제를 도입했다.  유연출퇴근제는 오전 7~10시 사이 30분 단위로 원하는 시간에 출근하고 일주일에 40시간을 근무하는 제도이다. 직원들의 만족도가 높다는 전언이다. 각자의 라이프스타일에 맞게 근무할 수 있기 대문이다.  자녀를 둔 직원들은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출근할 수 있어 반응은 좋다고 한다.

넷마블은 선택적근무시간제를 도입했다. 오전 10~오후 4시까지 모든 직원이 근무하고 그 외 시간은 법정 근로시간에 맞게 자율로 근무하는 방식이다.

급여 감소가 가장 큰 걱정거리

급여가 줄어든다는 애로사항도 있었다. 한 제약업체 공장에서 생산직으로 근무하는 직원A씨는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으로 근무시간이 짧아져 수당을 포함한 월급이 약 100만원 정도 감소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한 박스 제조업체 관계자는 “연봉직보다는 생산직쪽에서 주 52시간 근무제에 따른 하소연이 많다”면서 “보통 일주일에 70시간씩 일하다가 52시간으로 줄어들면 그만큼의 수당 등 급여가 깎이는데 결국 기본급이 줄어들어 나중에 퇴직금이 줄어드는 현상까지 발생한다”고 말했다.

제약업계의 경우 생산직 근로자들의 불만이 많다. D 제약사의 경우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으로 근무시간 짧아져 수당 포함해서 월급 약 100만원이 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특히 공장생산근무자들은 10년 이상 근무하고서도 과장 진급을 기피한다. 생산 근로자들은 "진급을 안 할 정도로 월급을 더 받기 위해 스스로 일을 더 하려고 하는데, 왜 정부가 나서서 내가 일할 시간을 줄이냐"고 불만을 터뜨렸다. 

다른 제약회사 H사는 평일에 이미 주 40시간 근무제를 시행하고 있어 큰 문제는 없다는 견해를 보였다. 공장에서는 교대 근무와 관련해 조정이 필요하긴 하지만 크게 문제가 될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다만 영업부문의 근로시간 조정이 가장  숙제라고 이구동성이라고 입을 모았다. H사 고위 임원은 "영업부서의 업무는 들쑥날쑥 하기 때문에 일정시간 일한 것으로 간주하는 간주근로제를 시행하고 있는데 연구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업계 관계자는 "주 52시간제는  워라밸을 확립하고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면서도 "반면 회식과 이동시간 등에서 근로시간 적용에 애매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도 "직원들의 삶의 질을 국가가 보장해준다는 측면이 긍정적"이라면서도 "명확한 가이드라인 부족하고 업계 특성을 좀 더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