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과 사랑할 수 있을까? 로봇과 성관계를 할 수는 있을 것이다. 아니 로봇을 단순히 성인용품이라고 본다면 그것을 성관계라고 부를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성인용품과 성관계를 한다고 하지는 않기에…. 미디어들은 해외 섹스 로봇 기사만 나오면 기다렸다는 듯이 흥미성 기사로 보도하지만 아직은 크고 비싼 성인용품으로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로봇과 성관계를 한다는 것과 사랑한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인간과의 성관계도 곧 사랑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로봇과의 사랑은 가능할까? 로봇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인간이 생겨날까? 인간과의 사랑도 우리 모두에게 항상 어려운 문제이고 인간과의 사랑도 제대로 알 수 없는데, 로봇과의 사랑에 대해서 예단할 수 있을까? 사랑에 대한 무수한 이야기와 책들에도 불구하고, 로봇과의 사랑에 대해 필자가 존경해 마지않는 니클라스 루만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물론 루만이 로봇과의 사랑을 애기한 적은 없다. 사랑도 두 사람이 있는 사회이기 때문에 루만은 사랑을 ‘친밀 체계’라고 불리는 사회적 기능체계로 본다. 루만이 사회적 체계들이라고 부르는 경제, 법, 종교, 학문들처럼 사랑에 대해서는 친밀체계라는 이름을 붙였다. 루만에게 사회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사람들 사이의 소통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경제 체계는 사람들의 경제적 소통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경제 체계를 이루는 환경일 뿐이다. 법체계는 사람들의 법적 소통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고 여기서도 사람은 환경일 뿐이다. 루만이 이런 식으로 사회를 바라보는 이유는, 사람을 사회의 구성요소를 보아온 사회이론들은 그 복잡함 때문에 제대로 사회를 파악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랑이라는 친밀 체계는 소통으로 이루어지며, 사랑은 소통이지 감정이 아닌 것이 된다.

사랑이 소통이라면, 사랑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소통이 가능하면 되는 것이다. 사랑의 소통은 매우 다양한 방법으로 이루어질 수 있고 성관계도 수많은 소통의 방법 중의 하나일 뿐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사랑을 정의할 수는 없지만 성관계 없는 수많은 사랑을 알고 있고 사랑이 아닌 수많은 성관계를 알고 있다. 루만식 이해에 따르면 다양한 형태의 성소수자들의 사랑도 당연히 자연스럽게 사랑으로 인정되어야 한다.

이렇게 독창적인 루만식의 사랑 이해에서는 로봇과의 사랑도 당연히 가능한 것이 된다. 다만 소통의 조건이 문제될 뿐이다. 그리고 이러한 소통의 조건은 개인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적용할 수는 없다. 크고 비싼 성인용품과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도 이미 생겨나고 있고, 사랑의 조건이 통상적인 사람들에게는 다소 이상하게 보일지라도 이것을 단순히 물건에 대한 페티시라고 부를 수 있을지도 의문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아직은 아니고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앞으로 충분히 사람과 비슷한 성인로봇이 등장한다면 그런 로봇과 사랑하는 사람들이 좀 더 늘어날 것이다. 사람과 같은 모습으로 사람과 같이 행동하고 사람처럼 말하고 사람처럼 말한다는 것은 소통의 조건이 더욱 좋아진다는 것이다. 소통의 조건이 좋아진 것을 전제로 만들어진 수많은 SF영화들에 등장하는 로봇들은 인간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임으로써, 관객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게 하고 여러분도 다소 공감할 수도 있다. 영화 <에이 아이>(A.I.)에서 사랑받고 싶어 하는 소년으로 등장하는 로봇 데이비드, <바이센테니얼 맨>에서 무한한 삶을 포기하는 로봇 앤드류, 영미 드라마에서 인간 남자를 사랑하게 되었다가 배신당하는 로봇 미아(아니타), 착한 캐릭터는 아니지만 <엑스 마키나>에서 자유를 얻기 위해 남자를 유혹하고 배신하는 로봇 에이바, 모두 감정과 욕구를 가지고 자유와 가치를 추구한다는 사실에 감정이입되어 단순히 기계라고 치부할 수는 없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 사실 그런 느낌을 불러일으키고자 하는 것이 영화의 의도이기도 하다.

소통의 조건만 만족된다면 로봇과의 사랑도 가능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의 마음에 걸리는 한 가지는 ‘자유의지가 없는 존재를 사랑할 수 있을까’이다. 비싼 값을 치르고 구입한 로봇이 바치는 헌신적인 사랑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우리는 막대한 희생을 불사하는 헌신적인 사랑을 운명적이고도 절대적 사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자기에게 바쳐지는 헌신적인 사랑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망각하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비싼 값을 치를 수 있는 능력에 따라 사랑받을 수 있는 세상이 되지는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금 인간과의 사랑에서도 헷갈리기는 마찬가지지만….

참고 1. John Danaher, Neil McArthur(Editor), Robot Sex: Social and Ethical Implications (MIT Press) Hardcover – October 13, 2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