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박정훈 기자] #외국계 컨설팅 업체에 다니는 직장인 정세영(32)씨는 요즘 채널A의 연애매칭 예능 프로그램 <하트시그널2> 보는 재미에 푹 빠졌다. 대다수가 30대 초중반인 그녀의 직장 동료들은 함께 식사를 할 때면 늘 <하트시그널2> 출연자들의 연애 방식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하면서 각자의 아름다운 지난 연애 경험으로 토대로 열띤 토론을 한다. 그러나, 정 씨도 직장 동료들도 정작 자기의 진짜 연애나 결혼을 생각하면 그저 막막하기만 하다.    

한동안 ‘경연·경쟁형’ 예능 프로그램들이 유행을 이끈 방송 콘텐츠 업계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최근 다수의 방송사들은 청춘남녀들의 연애 감성을 자극하는 ‘연애 매칭(과거에는 짝짓기 프로그램이라고도 했지만 적절한 표현은 아니기에) 프로그램’들을 잇달아 선보이며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물론 이전에도 MBC <사랑의 스튜디오>(1994~2001)나 KBS <산장미팅 장미의 전쟁>(2002~2004), SBS <짝>(2011~2014) 등 수많은 연애 매칭형 프로그램들이 있었다. 그러나 요즘처럼 비슷한 시기에 여러 방송사들이 동시에 유사 콘셉트의 프로그램들을 선보이는 것은 전례가 드문 일로 회자되고 있다. 

‘사랑이 넘치는’ 방송 콘텐츠 업계? 

▲ 인기 연애 예능 프로그램 <하트시그널2>. 출처= 채널A

인기 프로그램으로는 채널A의 <하트시그널>이 있다. 지난해 6월 방송된 첫 번째 시즌이 매력 넘치는 출연자들과 드라마 같은 구성으로 매 방송마다 화제를 불러일으키면서 인기를 끌었고 이에 힘입어 올해 시즌2가 제작돼 현재 방송되고 있다. 최근 두드러진 연애 매칭 프로그램 인기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독보적 입지의 프로그램이다. 

예능 프로그램의 명가 CJ E&M tvN도 지난달 연애 매칭 프로그램 <선다방>을 선보였다. <선다방>은 ‘연애 좀 잘 안다’는 연예인들이 일반인 출연자들의 맞선 전용 카페를 운영한다는 콘셉트를 내세운 프로그램이다. 지원으로 선발된 남녀 일반인들의 실제 맞선 장면을 관찰하면서 우리나라 청춘남녀들의 사랑과 연애에 대한 관점에 대해 이야기한다. 재미를 위한 극적 설정없이 남녀의 맞선 장면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 인기를 끌고 있다.   

▲ tvN의 맞선 예능 프로그램 <선다방> 출처= CJ E&M

인기 프로그램 <짝>으로 예능 역사에 한 획을 그은 SBS도 지난 2일 새로운 연애 매칭 프로그램 <로맨스 패키지>를 선보였다. <로맨스 패키지>는 3박4일 동안 10명의 남녀가 한 호텔에서 지내면서 알콩달콩 심리전으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커플 매칭을 이뤄내는 프로그램이다. 첫 방송 이후 <로맨스 패키지> 출연자들은 포털사이트 인기 검색어 순위 상위권에 오르기도 했다.   

한 콘텐츠 제작업체 PD는 “과거에는 유명 연예인들이 출연하는 오락형 예능과 연애 매칭이 연결된 프로그램들이 많았다면, 최근에는 연예인 못지않은 외모와 더불어 사회적 입지까지 갖춘 일반인들을 출연시킨 연애 매칭 예능 프로그램들이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면서 “연예인들보다는 일반 시청자들과 더 가깝다는 느낌이 있어 ‘나에게도 같은 상황이 주어진다면’이라는 기대감 혹은 드라마와 같은 대리만족을 주기 때문에 인기 프로그램의 일부 출연자들은 방송 출연 후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 SBS의 연애 매칭 프로그램 <로맨스패키지>. 출처=SBS

‘연애 프로그램’에 열광하는 청년들의 안타까운 현실 

이러한 연애 매칭 예능 프로그램의 인기에는 이 시대 결혼 적령기의 젊은이들이 처한 안타까운 현실이 반영된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도무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우리나라 경제, 점점 높아지는 청년 실업률로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 3포(연애·결혼·출산 포기)세대 청년들이 연예 매칭 프로그램을 일종의 ‘대리만족’ 수단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고려대학교 윤인진 사회학 교수는 “청년들의 3포세대 문제는 특정 집단의 문제가 아닌 대다수 젊은이들이 공유하는 좌절이나 무력감이 가시화된 것”이라면서 “이 문제를 방치하면 사회 전체의 불안과 위험이 점점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발표된 여러 경제 지표는 청년들이 더 연애나 결혼을 ‘포기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고 있다. 지난 15일에 있었던 추가경정예산안과 기금운용계획 변경안 제출 관련 국회 시정연설에서 이낙연 국무총리는 “지난 3월 취업자 증가는 11만2000명으로 2개월 연속 10만명대에 머물렀고, 실업자 수는 125만7000명으로 2000년 이후 최대 수준”이라면서 “청년실업률은 11.6%, 체감실업률은 24%로 사실상 4명 중 1명이 실업상태”라면서 현재 청년들이 처한 위기 상황을 설명했다. 

젊은 세대들의 연애 대리만족에 대해 서울대학교 정도언 명예교수는 “사람들은 대리만족의 달콤함에 빠지면 당장은 즐거울 수 있어도 현실과 환상의 괴리를 이기지 못한 마음의 균형이 무너져 삶이 위태로울 수 있어 너무 몰입하는 것은 위험하다”라고 말했다.

이전에는 그 무엇보다 자연스러웠던 청춘들의 아름다운 사랑과 낭만도 이제는 볼거리로 대리만족할 수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젊은이들은 연애 매칭 프로그램에 열광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