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이미지투데이

[이코노믹리뷰=김윤선 기자] 미국 등 제약강국에서는 거대 제약회사가 유망 바이오벤처를 인수해 신약개발을 하는 추세다. 거대 다국적 제약사는 막대한 자금력으로 유망한 바이오벤처를 선별해 인수합병한다. 우수한 개발능력과 신약물질을 보유했으나 저평가됐거나 잘 알려지지 않아 투자 유치가 쉽지 않은 바이오벤처는 인수 제의를 신약개발의 기회로 삼는다.

우리나라에서도 제약바이오산업이 성장하면서 바이오 벤처기업과 중견제약사 간 협업이 늘고 있다. 중견제약사들은 바이오 벤처에 투자하는 전문 투자회사도 설립했다. 그러나 인수합병할 마땅한 대상이 드문 데다 인수금액이 커 신약개발 시장에 지각변동을 일으킬 뉴스는 나오지 않고 있는 형편이다.

◆바이오벤처의 신화 ‘제넨테크’, CAR-T 개발 ‘카이트파마’

글로벌 다국적 기업의 바이오벤처기업을 인수해 성공한 예는 적지 않다. 스위스 제약사 로슈(Roche)는 지난 2009년 미국 바이오벤처의 신화 제넨테크(Genentech)를 인수해 대성공을 거뒀다. 이 회사는 허셉틴, 리툭산, 아바스틴 등 전 세계 바이오의약품 매출액 1위에 여러 번 이름을 올린 제품을 개발한 회사다. 이 약품은 현재 특허가 만료돼 국내에선 셀트리온, 삼성바이오에피스 같은 곳에서 앞다퉈 개발할 정도로 여전히 시장성이 높다.

바이오벤처를 인수한 덕을 제대로 본 다른 예로는 미국 길리어드사이언스(Gilead Sciences International, 이하 길리어드)다. 길리어드는 지난해 신개념 암 치료제 CAR-T를 개발한 미국 바이오벤처 카이트파마(kite Pharma)를 인수했다. CAR-T는 2017년 세상에 출시된 가장 혁신적인 치료제로 평가받는다. 환자의 몸에서 면역 관련 세포를 꺼내 재조작한 후 환자에게 다시 재주입하는 환자 맞춤형 치료제로 현재까지 스위스 노바티스(Novartis)와 길리어드의 제품 단 두 가지만 나왔다.

거대 다국적 제약사는 막강한 자금력으로 바이오벤처를 선별해 인수하고 있다. 옥석 가리기를 하는 셈이다. 우수한 개발능력과 신약물질을 보유하고 있지만 저평가됐거나 잘 알려지지 않아 투자유치가 쉽지 않은 바이오벤처들은 이들과의 합병을 도약을 위한 기회로 여긴다.

물론 아무리 큰 제약사라도 몇 조원을 호가하는 돈을 투자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원석’을 잘 골랐을 때의 이익은 상상을 초월한다. 로슈가 제넨테크를 인수할 때 지불한 금액은 468억달러(약 5조원). 제넨테크가 개발한 허셉틴의 한 해 매출액은 해마다 5조~8조원 수준에 이른다. 1년만 허셉틴을 팔아도 제넨테크 인수금액을 고스란히 회수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벤처에 손 내미는 국내제약사 늘었지만… “인수할 정도는 아냐”

우리나라에서도 제약바이오산업이 성장하면서 벤처와 중견제약사가 협업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국내에서 신약연구를 선도하고 있는 한미약품은 2016년부터 역량 있는 바이오벤처, 연구기관, 학계 등과 함께 하는 ‘오픈이노베이션’을 시작했다. 이에 대해 한미약품 관계자는 “다양한 관점과 가능성을 수용하고 한미약품의 경험과 노하우, 자본을 공유해 우리나라가 제약강국으로 도약하는 데 기여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미약품은 바이오벤처 등에 투자하는 업무를 맡을 ‘한미벤쳐스’도 설립했다.

유한양행도 2016년 항체신약을 개발하는 파멥신에 30억원, 신약개발 벤처 오스코텍의 자회사인 제노스코에 50억원을 투자한 데 이어 2017년에는 동물백신을 개발하는 바이오포아에 20억원을 투자했다.

녹십자는 2011년 자궁경부암 치료제 개발업체 바이오리더스에 26억원, 2013년 백신 개발사 유바이오로직스에 12억원을 투자했다. 녹십자는 유한양행과 함께 파멥신의 주요 주주이기도 하다.

문제는 국내에서 이뤄지는 협업은 바이오벤처의 인수가 아닌 투자에만 그치고 있다는 점이다. 업계는 “어쩔 수 없는 속사정이 있다”고 토로한다. 국내 최상위 제약사의 한 해 매출액 1조원을 넘는 인수금액이 넘어야 할 산이다. 그것보다 더 큰 걸림돌은 인수할 만한 마땅한 바이오 벤처를 찾기 힘들다는 점이다. 한미벤쳐스가 1년 넘게 투자 대상을 선정하지 못해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은 국내 바이오벤처업계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