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가 탄핵되고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온 사회가 혼란스러운 한해였다. 의료계와 제약바이오업계도 그 어느 때보다 다사다난했다. 이코노믹리뷰가 의료·제약업계의 10대 뉴스를 선정했다.  

1. ‘문재인 케어’를 둘러싼 의료계 동상이몽(同床異夢)

박근혜가 탄핵되고 문재인 정부가 야심차게 내놓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일명 문재인 케어)를 둘러싸고 기대와 우려가 교차했다. 문재인 케어는 건강보험 보장률을 현재 63.4%에서 5년 후 7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것이 골자다. 또 ‘부르는 게 값’이었던 비급여는 미용목적을 제외하고는 급여권으로 전환한다. 이 같은 정책에 일부 시민은 문재인 케어를 통해 보장성이 강화되면 국민 의료비부담이 줄 것이라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의료계와 한의계는 양극단의 반응을 보였다. 대한의사협회는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했고 3만명이 넘는 의사는 문재인 케어에 반대하며 거리로 나섰다. 의사들은 적정 수가를 보전하지 않고 무턱대고 정책을 펼치면 수많은 의료기관이 문을 닫고 의료의 질이 낮아져 결국 국민들에게 피해가 갈 것이라고 우려했다.

반대로 한의계는 환영의 뜻을 표시했다. 한의계는 현재 56종으로 제한된 의료보험 적용 한약을 보다 확대해달라고 요구했다. 한의단체는 '한의난임 및 치매치료', '추나요법' 등에도 보장성 확대의 입김이 미치길 기대하고 있다.

▲ 한림대의료원 간호사 장기자랑 모습.출처=페이스북 간호사 대나무숲

2. 간호사가 ‘기쁨조’? 논란의 한림대의료원 장기자랑

지난 10월 페이스북에 올라온 익명의 글이 의료계를 뜨겁게 달궜다. 일송학원 산하의 한림대학교의료원에서 매해 열리는 체육대회에서 간호사 장기자랑을 하는데, 행사에 참여하는 간호사들이 선정적인 의상을 입고 걸그룹 춤을 추도록 강요당했다는 것.

이 같은 사실이 폭로되자 대중들은 분노했다. 업무에 집중해도 시간이 모자라는 간호사들을 마치 ‘기쁨조’처럼 부려먹었다는 비난이 거세졌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자정을 권고했고 한림대의료원은 결국 연례 체육대회 행사를 폐지하기로 했다. 일송재단 산하 강남성심·동탄성심·한강성심·성심병원 등 4개 병원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설립했다.

그러나 한림대의료원 외에 대구가톨릭대병원에서도 간호사에게 선정적인 장기자랑을 강요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병원 내 성희롱 문제가 생각보다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것으로 나타나 논란은 쉬이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3. 중증외상센터의 열악함 알린 이국종 교수

공동경비구역(JSA)에서 총알을 맞은 채 귀순한 북한 병사가 뜻밖에 우리나라의 중증의료체계의 문제점을 드러내는 데 기여했다.

이 병사의 치료를 맡은 이국종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장은 중증환자를 제대로 치료하기 힘든 의료계 현실을 지적했다. 그는 과거 ‘아덴만의 영웅’으로 불리는 석해균 선장을 살려내 온 국민의 박수를 받았다. 이 교수는 중증외상센터의 인력이 부족한데 이곳 의료진의 근무환경도 열악하다고 호소했다. 또 치료할수록 적자가 나는 구조는 의료진이 맘 놓고 환자를 치료할 수 없는 구조라는 것을 대중에 알렸다.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이국종 교수를 돕고 중증외상센터의 환경을 변화시키자는 청원글이 올라왔고 2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서명했다. 정부는 권역외상센터에 국가 예산 200억원을 추가 편성했다. 또 석해균 선장을 치료했을 당시 아주대병원이 감당했던 치료비는 보건복지부가, 귀순병사의 치료비는 통일부가 부담하기로 했다.

▲ 낙태죄 폐지 청원글.출처=청와대 홈페이지

4. 높아지는 ‘낙태죄 폐지’ 요구…청와대, ‘실태조사’ 약속

올 한해는 유독 여성인권과 관련한 이슈가 줄을 이었다. 그 중 임신중절(낙태)을 금지하는 법을 폐지해야 한다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높았다.

낙태를 하는 방법에는 수술과 약물이 있다. 수술은 현재 법으로 금지돼 있으며 자연유산유도약(상품명 미프진)은 한국에 들어와 있지 않다. 청와대 홈페이지에 낙태죄를 폐지하고 자연유산유도약을 도입해달라는 청원글에는 23만명 이상이 서명했다. 원치 않는 임신을 하는 것은 여성 출산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한다는 것이 여성단체의 주장이다.

논란이 거세지자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직접 동영상을 통해 내년에 임신중절 실태조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헌법재판소도 낙태죄 위헌법률심판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중환자실.사진=이코노믹리뷰 DB

5.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중환자실 환아 사망, ‘감염관리’ 허점 드러나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던 신생아 4명이 잇따라 사망했다. 이 사건은 행복한 연말 온 국민을 충격에 빠트렸다.

즉각적으로 보건당국이 조사에 착수한 결과 사망한 신생아 4명 중 3명의 혈액배양검사에서 장내 세균인 시트로박터 프룬디(Citrobacter freundii)가 검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다른 의료기관으로 옮겼거나 퇴원한 환아 일부에서 괴사성 장염을 일으킬 수 있는 로타바이러스가 확인됐다.

현재까지 수액 키트나 수액 제조 당시 문제가 있었으리라는 추정이 우세하다. 아직까진 의료진의 과실인지 제조사의 문제인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 같은 사건으로 이대목동병원은 상급종합병원 재지정에 보류됐다. 질병관리본부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은 조사를 계속하고 있으며 이는 새해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 출처=이미지투데이

6. 탁월한 효과, 신개념 치료제 ‘CAR-T’ 등장

올해엔 환자의 백혈구를 이용해 암을 치료하는 획기적인 암치료제가 등장했다.

경구로 복용하거나 주사제로 놓는 등 일단 만들어지면 누구에게나 투약할 수 있는 기존 암치료제와 달리 'CAR-T'로 불리는 치료제는 면역세포인 T세포를 환자의 몸에서 꺼내 유전자를 재조작한 후 몸에 다시 넣어 유전자를 변형한 세포가 암 세포를 죽이는 독특한 방법을 쓴다.

현재까지 미국식품의약국(FDA)에서 승인받은 제품은 스위스 노바티스(Norvatis)의 티사젠렉류셀과 미국 길리어드사이언스(Gilead Sciences)의 예스카타(Yescarta) 등 2개 제품이다.

CAR-T는 복잡한 방법으로 환자를 치료하지만 그 효과는 뛰어나다. 한 치료제를 난치성 B세포 전구체 급성 림프루성 백혈병 환자에게 투여한 결과 환자 중 83%가 완전관해에 도달했다. 완전관해란 진단 당시에 있었던 모든 증세와 말초혈액이 정상 범주로 회복되고 골수에 존재했던 백혈병 세포가 5% 미만으로 감소한 것을 말한다.

문제는 높은 가격. 티사젠렉류셀(tisagenleceuce)을 1회 투여하는 가격은 5억원, 예스카타는 4억원대다. 한국에서는 바이로메드가 CAR-T 시장에 진출한다고 밝혔다. 바이로메드의 CAR-T는 동물실험 단계다. 가격은 천문학적이지만 난치성 암을 치료할 수 있는 치료제가 나와 환자들의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 편의점 안전상비의약품.사진=이코노믹리뷰 김윤선 기자

7. ‘자해소동’ 부른 편의점 안전상비약 확대 논란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안전상비의약품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에 대한약사회 임원이 자해소동을 벌였다. 보건복지부가 개최한 제5차 안전상비의약품 지정심의위원회에서 강봉윤 약사회 정책위원장이 비공개 회의 전 칼을 숨겨 들어왔다가 감정이 격해지자 칼을 꺼내들었다. 다행히 강 위원장은 바로 저지당했고 다친 사람은 없었으나 회의는 결렬됐다.

위원회에선 현재 13개인 안전상비의약품에 보령제약의 ‘겔포스’와 대웅제약의 ‘스멕타’를 도입하려는 논의를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복지부는 주요 선진국에선 편의점약을 13개 이상 판매하고 있다고 밝히는 등 안전상비의약품 품목확대에 긍정적인 모습이다. 그러나 약사회가 강하게 반대하고 있어 품목확대가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 출처=이미지투데이

8. 시가총액 1조원 평가 ‘CJ헬스케어’ 결국 매각

유통,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강점을 갖고 있는 CJ그룹이 자회사 CJ헬스케어의 매각을 발표하면서 제약업계가 들썩였다. 지난 1984년 유풍제약을 인수하며 제약사업에 뛰어든 CJ그룹은 2006년 한일약품을 인수한 후 2014년 제약사업 부문을 물적분할하고 CJ헬스케어를 설립했다. CJ헬스케어는 지난해 매출 5208억원, 영업이익 679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제약업계 10위권 안에 드는 수준이다.

CJ그룹은 모건스탠리를 매각 주관사로 선정했다. 비상장사인 CJ헬스케어의 시가총액은 1조원 정도로 평가받는다. CJ헬스케어 예비 입찰에는 한국콜마를 비롯해 사모펀드인 베인캐피탈, 칼라일 CVC캐피탈, MBK파트너스, TPG 등이 참여했다.

CJ헬스케어의 매각은 CJ그룹이 유통과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집중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 출처=이미지투데이

9. 제약바이오업계 루키 ‘신라젠’, 주가 거품논란 뜨거워

올 한해 제약바이오업계에서 가장 뜨거운 기업은 상위제약사도 아닌 바이오벤처인 ‘신라젠’이었다.

말기 간암치료제 ‘펙사벡’을 개발 중인 이 회사는 3년째 영업손실이 200억원 이상으로 마땅한 수익창출원도 없지만 시가총액이 약 7조원에 이른다. 현재 주가는 2016년말 코스닥 상장 당시보다 700% 가까이 급등했다.

신라젠 임직원 43명은 스톡옵션을 행사해 18배 넘는 수익을 내며 ‘돈방석’에 앉았다.

그러나 신라젠에 늦게 탑승한 일명 개미투자자들의 피해도 우려되는 상황이다. 신라젠이 임상 3상 시험 중인 펙사벡이 임상에 성공할지 여부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신라젠의 주가를 작전세력이 끌어올렸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같은 우려에도 불구하고 신라젠의 주가는 미국국립암연구소(NCI)에서 펙사벡의 임상을 시작했다는 소식에 10% 이상 뛰었다.

▲ 출처=이미지투데이

10. 고가 항암제 등재, 환자들 기여 컸다

유독 고가의 항암재의 보험급여 등재에 환자들의 입김이 큰 한해였다. 환자들의 노력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았고, 아픈 몸을 이끌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앞에서 시위도 벌였다.

이 같은 노력의 결과로 한국화이자의 유방암치료제 ‘입랜스’, 한국MSD의 면역항암제 ‘키트루다’, 한국오노약품공업·한국BMS의 ‘옵디보’, 한국아스트라제네카의 폐암치료제 ‘타그리소’, 한미약품의 폐암치료제 ‘올리타’ 등이 잇따라 등재됐다.

급여 등재가 결렬될 때마다 환자들은 심평원과 국민건강보험공단 홈페이지에 빠른 보험적용을 해달라는 글을 올리고, 제약사에는 항암제의 가격을 낮춰달라며 전화를 걸었다. 환자들의 입김이 약가협상 과정에 큰 영향을 미치는 기조는 내년에도 계속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