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IT기업의 갑질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닙니다. 구글 지도 반출 논란부터 시작해 스텔스 회사로 불리는 유한회사로 시장에 진출, 세금 탈루 의혹을 받는가 하면 소비자를 대상으로 명백한 역차별을 벌이기도 하지요. 이 문제는 국내 사업자의 역차별로 진화하기도 합니다.

다만 이 문제는 우리 생각처럼 간단하게 해결될 수 없을 전망입니다. 갑질의 이면에는 엄연한 '시장논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누가 보기에는 말도 않되는 논리지만 그들에게는 당연하게 생각되어 더욱 감정의 골이 깊어져요.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최근 페이스북의 통신사 상대 갑질이 화두로 부상했습니다. 세상에. 그 대단한 통신사에 갑질을 하는 곳이 있었다니. 조물주 위에 건물주가 아니라 통신사 위에 페이스북이네요.

네트워크 비용 부담을 두고 SK브로드밴드(SK텔레콤 자회사)와 페이스북의 충돌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12월 SK브로드밴드와 페이스북이 국내에 캐시서버를 설치하는 협상을 진행하던 중 트래픽 문제를 두고 이견이 발생해 대화가 중단되었고, 협상결렬을 이유로 페이스북이 SK브로드밴드 이용자 접속을 불완전하게 막았습니다. 페이스북이 자사의 인터넷 전송 경로(라우터/Routing)를 바꿔버렸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마크 저커버그 CEO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메일까지 보냈다는데, 페이스북은 우리나라 사랑하는 것이 아니었나요?

문제의 근원부터 보겠습니다. 캐시서버를 알아야 해요. 캐시서버는 한번 읽은 데이터를 나름의 장치에 보관한 후, 동일한 데이터를 읽어야 할 경우 자동으로 적용하는 캐시 기술이 핵심입니다. 즉 캐시서버는 캐시라는 기술을 가능하게 만드는 인프라며 캐시서버가 존재할 경우 레이턴시 감소 및 비용절감 등의 효과가 있죠.

그리고 국내 통신사들은, 구글 유튜브에 캐시서버를 열어준 특혜를 베풀었어요. 실제로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는 구글 유투브 캐시 서버를 자사 인터넷 데이터 센터에 설치해주고 트래픽 비용을 별도로 받지 않으며 KT는 아예 자체비용으로 구글 캐시서버를 자사 인터넷 데이터 센터에 설치했습니다. 즉 공짜로 유튜브롤 모셨다는 뜻이죠.

이런 상황에서 페이스북은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똑같이 해줘"라고요. 하지만 SK브로드밴드는 "그럴 수 없어"라고 버티는 중입니다.

자, 누구 잘못일까요? 당연히 페이스북에 책임이 있습니다. 아무리 협상이 결렬되어도 이용자 접속이 어렵게 만드는 오만함은 정말 큰 문제입니다. 나아가 캐시서버를 당연하게 만들어달라는 주장을 펼치다니. 그런데 말입니다? 국내 통신사도 책임은 있어요. 애초에 왜 유튜브에 캐시서버를 만들어 줬나요. 선례가 있으니 페이스북이 동일한 특혜를 요구할 수 있는 빌미가 된 것 아닙니까. 네이버와 카카오, 아프리카TV 처럼 돈 꼬박꼬박 내고있는 국내 사업자들은 봉인가요?

여기까지 생각을 정리하고, 약간 속도 조절을 해 봅시다. 자, 더 깊게 들어가면...통신사들은 왜 유튜브에 특혜를 베풀어 지금도 골치를 썪고 있을까? 간단합니다. 유튜브가 인기 좋으니까! 국내 이용자들이 좋아하니까! 그래서 유튜브가 잘 나오지 않으면 통신사 욕을 하니까!

디지털 미디어렙 및 광고플랫폼 전문기업 DMC미디어에 따르면 지난달 5~12일 만 19세 이상 59세 이하 한국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2017 인터넷 동영상 시청 행태 및 동영상 광고 효과 분석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국내 유튜브 이용자 중에서 PC 유저의 52.1%, 모바일 유저의 78.1%가 유튜브를 지속적으로 이용할 의사가 있는 로열티 높은 ‘충성 유저’인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 DMC미디어_인터넷 동영상 주 시청 매체. 출처=DMC

그렇다면 왜 이들은 충성 유저가 되었나. 동영상 시청 매체를 선택할 때 주요하게 고려하는 기준으로는 PC(39.7%)와 모바일(39.1%) 모두 무료 콘텐츠의 양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았으며 콘텐츠 종류의 다양성이 PC 28.9%, 모바일 28.5%로 뒤를 이었다고 합니다.

아! 무료 콘텐츠의 양. 지상파 방송사들이 유튜브를 버리고 SMR의 깃발에 모여 네이버와 다음으로 이동한 부분이 생각납니다. 상황이 더 복잡해지네요. 단편적인 분석이기는 하지만 봅시다. 그러니까 '유튜브는 풍부한 무료 콘텐츠가 많다-유튜브가 인기가 많다-통신사들은 유튜브 신경써야 한다-캐시서버 조공한다-나중에 페이스북에 당하고 있다' 이런 연결고리가 완성됩니다. 여기서 문제의 최초로 돌아가면 이렇게 말할 수 있겠네요. 콘텐츠 사업자 및 최초 플랫폼 사업자들이여. 당신들은 왜 풍부하고 재미있는 콘텐츠를 만들지 못했나.

당연하지만 이런 질책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사업상의 실책이지, 법을 어긴 것이 아니니까요. 하지만 한 번 정도는 시장 전반의 부흥을 위해 곰곰히 생각할 여지는 있어 보입니다.

여담이지만 문재인 정부는 김상조 공정위원장을 내정했죠. 김 내정자는 재벌 저격수이지만, 글로벌 기업의 갑질 국내시장 진출에 있어서도 나름의 제동을 걸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업무 관련성은 없지만 네이버 부사장 출신인 윤영창 홍보수석의 등장으로 읽을 수 있는 문재인 정부의 행보, 나아가 공정위가 애플 AS 갑질에 내렸던 철퇴 등을 종합하면 유한회사로 숨어든 글로벌 기업에게는 앞으로의 5년이 다소 어려워질 수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자, 갑질의 이면에 숨어있는 시장의 매력. 그리고 이를 단기간에 뒤집기는 어렵다는 현실적인 여건속에 콘텐츠와 플랫폼 시장은 어떻게 될까요? 나아가 글로벌 ICT 기업은 어떻게 사업을 전개할까요? 스타트업 지원하며 글로벌 진출 유도하는 사탕발림이 언제까지 통할까? 흥미진진한 관전 포인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