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 권력이란 참으로 더럽구나! 이때는 선조도 좀 사람이 되었나! 선조가 또 이놈들이 당파 싸움을 하는구나 하고, 분이 복받쳐 옴을 금할 수가 없어서 흥분되어 떨리는 목소리로

‘그러면 1품은 당파 싸움을 잘 하는 놈들만 가지는 것인가?’

하시고 정, 유, 두 사람을 노려보니, 두 사람은 상의 노하심을 보고 낯빛이 붉어졌다.”

“네, 유성룡은 아무 말 없이 눈을 감고 있었고, 윤두수가

‘조정이 모두 순신에게 1품을 내리심을 불가라 하오니, 정2품으로 하심이 옳은가 하오.’

라고 말하며 조정을 하였습니다. 易學에서 身弱四柱로 태어나 심지가 약하고 귀가 얇았던 선조가 이렇게 된 처지에 도망하지 아니하고 자기를 따르는 것만 해도 고마운데 수많은 서인들의 감정을 상하는 것이 미안도 하고, 두렵기도 해서 두수의 말대로 정2품 정헌대부를 이순신장군에게 주시고, 이억기와 원균은 종2품 가의대부로 권준, 이순신(동명이인)어영담, 등을 가선대부 동지로 차차 봉작하고 송여종은 이순신의 막하에서 전공을 더 세우는 것이 좋다하여 녹도 만호를 제수하시고 장군에게는 특별히 교유서를 내리시어 장려하였습니다.”

“음! 그 교유서는 이러하다.

왕은 이르노라!

불세출의 뛰어난 인재는 좀처럼 세상에 없는 큰 대우가 있어야 하나니 이를 융숭하게 하는 데에 뜻을 기울였도다! 예사롭지 않은 보답은 특별한 공을 대접함이니 큰 상을 어찌 아끼리요! 이에 공적을 표창하는 예를 들어 남다른 뛰어난 노고를 갚고자 하느니라!

돌아보건대 나는 변변치 않은 자질로 참람하게 왕위를 지켜온 지 25년 동안 아침부터 밤까지 정사에 힘쓰면서 계책은 비록 국가의 근본을 견고히 하는 데에 두었지만, 이백년 동안 문무관은 안일에 빠져 백성들은 전투에 익숙하지 못하였도다!

어찌 뜻 했으리, 섬 오랑캐가 제 분수도 헤아리지 못하고 갑자기 국경이 마음 놓고 있는 틈을 타서 해를 쏘는 활시위를 당기며 중국 조정에 대해 쌓였던 원한을 씻는다며 요임금을 짖는 입을 놀리고서 먼저 우리나라의 변경을 쳤도다!

순식간에 삼도를 무너뜨리고 유린하여 팔도를 기울여 성곽과 산수가 든든함을 잃었으니 금성탕지가 어디에 있으리, 많은 무기와 곡식을 버려두어 도리어 도적에게 도움이 되었도다!

생각해보건대 지금 깨끗한 한 조각 땅이라곤 단지 호해의 한 지역만이 남았는데, 6만 기병은 경기에서 무너졌으니, 이광이 적을 가벼이 여겨 패함을 아프게 여기고 이천의 병사는 금산에서 함몰되었으니 고경명이 위기에 목숨 바침을 애석히 여기노라!

회서의 군사들은 배도를 얻어 그를 장성으로 삼았고, 강좌의 생민들은 관중이 아니었다면 오랑캐가 될 뻔하였다. 오직 경만이 저 장량이 받은 이교의 글에서 전수 받았고, 재주는 훌륭한 장수가 배출된다는 한나라 산서에서 나왔도다!

가슴 속에 뛰어난 작전계획을 품어 온 몸을 담으로 삼고 충의를 뼈 속까지 채워 나라 걱정을 마치 제 집 걱정하듯이 하였도다!

바야흐로 위상이 운중을 지키는 것 같이 하여 마침내 한신이 도성 밖의 권한을 위임받듯 중임을 절제하게 되었도다! 중류에서 조적의 노를 두드리고 군사들이 눈물을 흘리며 태진의 배에 오르니 왕의 위엄을 먼 변방에 떨치고 흉한 넋을 멀고 가까운데서 빼앗았다.

뭇 장수들은 팔짱만 끼고 다투어 먼저 갑옷을 버리고 무기를 끌고 도망갔도다! 여러 고을은 소문만 듣고 달아나 단지 문을 열어 적을 들여보낼 줄만 알았도다!

생각해보건대 경의 장렬한 용맹이 아니었다면 그 누가 국가와 더불어 존망을 함께 하리요.

이에 경에게 정헌대부를 제수하니 내가 경에게 기대함이 더욱 깊도다!”

“네, 유성룡은 이순신장군의 사람됨이 그만한 작위로 하여 그의 충성이 더하고 덜 할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그의 징비록에 한산도 싸움에 관하여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대개 적이 본래 수군과 육군이 서쪽을 치려하였으나 이 한 번의 전투로 말미암아 마침내 적의 한 팔이 끊어지게 되어 고니시가 비록 평양을 얻었으나 그 세력이 고립되어 다시 나아가지 못하니, 국가가 호남과 호서를 보전하고 이로써 황해도와 평안도 연해까지 지키게 되니, 군량이 조달되고 호령이 상통하여 나라를 회복할 수 있는 기반이 되고 요동, 산해관, 천진 등지가 침범 당하지 않게 되어 명나라 군사로 하여금 육로를 따라와서 적을 물리치게 할 수 있게 된 것은 모두 이 한 전투의 공이니, 오호라! 어찌 천운이 아니겠는가!’

라고 하였습니다.”

“그 뜻은 한산대첩이 없었더라면, 전라도 이상의 각 도의 연해안을 보유하여 군량을 대고 연결을 취하여 나라가 다시 일어날 수가 없었을 것이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