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이코노믹리뷰 노연주 기자

초여름에 가까워진 날, 서울시 성동구 성수동에 위치한 소녀방앗간 ‘서울숲시작점’에서 김민영 대표를 기다렸다. 소녀방앗간은 지난 2014년 10월 설립된 한식밥집이다. 농민들에게는 정당한 가격을, 소비자에게는 청정식단을 제공한다는 게 소녀방앗간이 추구하는 가치다. 5월 현재 서울숲시작점, 커먼그라운드 건대점 등 8개 지점이 운영되고 있다.

약속했던 시간보다 조금 늦게 김 대표가 도착했다. 헝클어진 머리로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인터뷰 이후 있을 사진촬영에 대해 설명하니 “그럴 줄 알고 앞치마랑 유니폼도 챙겨왔다”며 앳된 미소로 답했다.

 

일반적으로 취업을 준비할 시기, 창업에 도전했다.

20대 초반 다니던 대학교를 휴학하고 외식업체 홍보팀에서 2년간 인턴생활을 했다. 인턴을 마치고 취업 준비를 앞두고 있는 단계에서 이미 지쳐 있었다. 진심을 다해도 결국 중요한 것은 돈이었고, 사내정치까지 신경 써야 하는 도시생활에 피로감을 느꼈다. 몸도 마음도 힘든 시기였다. 며칠 쉬고 싶은 마음에 안면이 있던 ‘생생농업유통’ 김가영 대표에게 연락을 했다(김가영 대표는 소녀방앗간 설립자로, 현재 소녀방앗간에서 이사직을 겸임하며 농산물 유통부문을 담당하고 있다). 생생농업유통은 농촌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도시로 유통하는 기업이다.

농촌에서 심신을 추스르려 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김가영 이사의 권유로 경상북도 청송군에 있는 생생농업유통에 찾아갔다. 청송에 머무는 2주간 정신적 안정감을 되찾았다. 시간에 쫓기지 않는 생활, 화려하지 않고 소박하지만 건강한 음식 등 서울에 있는 친구들에게도 이 같은 경험을 전달해주고 싶었다.

 

창업까지 결심한 걸 보면 청송에서 다양한 일이 있었나 보다.

직접 겪어보니 농촌 생활은 전원일기 같은 농촌 드라마와 달랐다. 특히 농산물 유통 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농민이 적지 않았다. 농산물을 도시로 제공할 수 있는 믿을 만한 유통판로는 부족한 실정이다. 쌀의 경우 다양한 곳에서 수확된 쌀은 정미소 한 곳으로 몰린다. 생산자와 생산지별 품질이 무시되는 것은 물론, 햅쌀과 묵은쌀마저 뒤섞인다. 이에 농민은 고품질 농산물을 수확해도 제값을 받지 못하고, 소비자는 양질의 농산품을 누릴 수 없게 된다.

청송에 있을 당시 유통 시스템을 개선하면 생산자(농민)와 소비자 모두에게 의미가 있을 거라는 판단이 들었다. 처음에는 (창업이) 무서웠다. 사업은 특별한 사람들이 하는 일, 나 같이 평범한 사람과는 무관하다고 생각했다. 부모님의 반대도 심했다. 청송에서 서울로 돌아왔을 때가 2년간 휴학을 마치고 복학을 앞둔 시점이었다. 부모님 입장에서는 겨우 복학을 결심했던 딸이 돌연 휴학기간을 늘리고 사업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던 것이다.

그간 ‘세상에 오랫동안 남을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는 바람을 갖고 있었다. 창업을 결심하고 김가영 이사에게 도움을 청했다. 창업에 필요한 경제적 투자와 농산물 유통분야 조력자로 함께 하게 됐다. 가족도 어렵게 설득하고 결국 소녀방앗간 문을 열게 됐다.

 

생생농업유통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소녀방앗간과의 관계가 궁금하다.

소녀방앗간은 생생농업유통으로부터 투자를 받아 설립됐다. 다만 양사는 단순한 투자관계는 아니다. 두 회사는 수평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역할을 분담하고 있다. 생생농업유통은 농민들이 생산한 농산물을 유통하고, 소녀방앗간은 그 농산물로 음식을 만들어 소비자에게 판매한다. 쉽게 말하자면 소녀방앗간은 소비자, 생생농업유통은 생산자의 입장을 대변한다.

예를 들어 호박 작황이 좋은 해라면 생생농업유통은 소녀방앗간에 호박 반찬을 늘리도록 요구해온다. 최대한 많은 양의 호박을 소비시키기 위해서다. 소녀방앗간은 소비자에게 합리적인 가격으로 좋은 식단을 제공하는 데 무게 중심을 둔다. 생생농업유통의 요청을 무작정 따를 수 없다는 뜻이다. 김가영 이사와 논쟁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소녀방앗간과 생생농업유통은 합의점을 찾기 위해 치열하게 협의한다. 결국 새로운 호박 반찬을 개발하는 대신 고추의 부산물인 고춧잎을 무상으로 제공받는 식의 대안을 찾아낸다.

 

소녀방앗간에서 식사를 했을 때 음식만큼 점원들의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주문한 음식에 대해 설명해주거나, 멀찌감치서 대기하고 있는 고객을 큰소리로 부르기보다는 식당 밖으로 찾아가더라. 별도의 고객 응대 가이드라인이 있는 건가.

우선 같이 일하는 친구(직원)들에게 우리가 전달자라는 사실을 숙지시킨다. 어떻게 먹어야 가장 맛있게 먹을 수 있는지, 어떻게 즐겨야 가장 편안한 식사가 될지, 재료의 특징은 무엇인지 등은 손님들이 알아야 할 기본적인 정보다. 특정 문장이나 어투를 정해두지는 않았다. 키워드를 중심으로 손님들에게 기본정보를 제공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더불어 직원들이 소녀방앗간의 가치를 공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패밀리레스토랑 점원들의 친절한 서비스가 친절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것은 진심이 담겨있지 않아서다. 이런 면에 대해서는 직원들에게 정말 감사하다.

 

소녀방앗간 경영자로서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가.

소녀방앗간이 처음 시작할 때부터 다양한 식재료를 손님들에게 선보이고 싶었다. 소녀방앗간 전 아주 짧게 식재료를 유통하는 온라인 마켓을 운영하기도 했다. 오픈 1개월 만에 적자만 남기고 바로 문을 닫았다. 해보니깐 더 이상 하면 안 되겠다 싶더라. 소비자들이 찾는 곳은 홈쇼핑 등 대형 유통사로 정해져 있다. 후발업체로서 경쟁력을 갖기가 어려웠다. ‘직접 먹어보면 알겠지’라는 생각은 소녀방앗간을 시작하게 된 결정적인 배경 중 하나다. 소녀방앗간 지점들은 식당이자 식재료 판매처 역할도 하고 있다. 문제는 소녀방앗간이 서울·경기 지역에만 지점이 있어 식재료를 유통할 수 있는 지역이 한정돼 있다는 것이다. 다양한 지역에 있는 소비자 니즈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유통채널을 다각화하고 싶다. 소녀방앗간 유통망이 넓어지는 만큼 생산자(농민)들의 고정 수익원도 확대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