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욱 아이피엘 대표와 소셜로봇 아이지니.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헬로 지니!” 동글동글 새하얀 몸뚱이에 더 동그란 파란 눈을 깜박이며 어떤 물체가 고개를 내민다. 눈망울이 호수처럼 깊다. 똑 부러져 보이는 녀석에게 말을 걸어본다. “오늘 뭐 먹었어?” 눈을 반짝이며 대답한다. “아무것도 안 먹고 기다렸어요. 기운 없어요!”

또랑또랑하게 대답도 잘하는 아이지니(IJINI)는 국내 토종 로봇이다. 2014년 설립된 아이피엘(IPL. Innovative Play Lab)은 소셜로봇 아이지니 디자인부터 하드웨어, 소프트웨어까지 도맡아 제작했다. 가정에 들어갈 수 있는 가전제품 같은 로봇을 목표로 아이지니를 디자인했다.

아이지니는 스마트홈용 소셜 로봇이다. 김경욱 아이피엘 대표는 “아이지니는 만화 <알라딘>의 요술램프 속 요정 지니를 본떠 지었다. 주인이 원하는 때 나와서 소원을 들어주는 지니 같은 로봇”이라고 설명했다. 아이지니는 집에서 커뮤니케이션 허브 역할을 한다. 자동 순찰 기능, 펫 모니터링, 아기 모니터링, CCTV 기능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한다.

이 귀엽고 똑똑한 로봇을 만든 이들은 누구일까? 아이피엘은 약 10년 동안 로봇을 개발하던 사람들이 모여 3년 전에 차린 회사다. 김 대표는 “좋은 친구들과 함께 일할 수 있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출장이 잦은 그와 아이지니를 여러 통의 문자와 전화가 오간 뒤 겨우 만날 수 있었다.

경기도 일산동구 백석동에 위치한 아이피엘 사무실엔 햇빛 가리기용 초록색 잎사귀가 군데군데 드리워져 있었다. 사무실 한편엔 소파, 낮은 벽, 탁자, 작은 침대 등이 있었다. 실제 집안 거실처럼 꾸며두고 아이지니를 실험하기 위해서다. 각종 대회에서 받은 상장들이 늘어선 벽면과 곳곳에 자리한 로봇들 덕분에 ‘대세 로봇 스타트업’에 와 있다는 게 실감 났다.

◇“1가정 1로봇 시대 연다”

지난 2014년 3월, 4명의 인원으로 카페에서 시작한 스타트업이 이제는 42명의 직원이 있는 기업으로 성장했다. 디자인부터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UX까지 로봇을 제작하고 연구하는 데 들어가는 모든 역량을 갖췄다. 로봇은 융합서비스 그 자체다. 하나의 회사에서 이런 과정을 모두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회사 슬로건은 ‘소원을 말해봐’(Make your wish)다. 김 대표는 “이용자가 원하는 걸 제공하려는 마음. 거기서 아이지니가 탄생했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 2007년부터 지금의 동료들과 로봇을 개발하는 일을 했다. 회사에 문제가 생겨 직장을 나오게 됐고, 그 후 같이 로봇을 개발하던 친구들과 스타트업을 차렸다.

김 대표는 아이지니를 개발할 때 처음부터 ‘이제까지 못 본 로봇’을 만들겠다는 목표가 있었다. 아이지니는 2.1㎏에 다섯 개의 터치 센서가 있다. 4인치 스크린의 얼굴에 두 개의 눈이 있고, 8개의 다양한 표정을 지을 수 있다. 2개의 스피커, 6개의 램프가 있다. 와이파이, 블루투스 등으로 각종 기기와 연결할 수 있다. 아이지니를 통해 집을 비웠을 때 반려동물을 모니터링할 수 있다. 자동 순찰 기능이 있어 집안을 돌아다니다 움직임이 포착되면 이용자에게 메시지로 알려줄 수도 있다.

아이지니는 소셜로봇이다. 김 대표는 “소셜로봇은 사람과 대화하고 감정을 나눌 수 있는 감성 중심의 로봇”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아이지니가 마치 하나의 가전제품처럼 집안에 스며들 수 있길 바란다. 사람을 닮은 휴머노이드 로봇과는 다르다.

해외에서도 반응이 좋았다. MWC2017에서 200개 스타트업 중 탑 20에 선정됐다. 브리티시 텔레콤 영국 통신사가 주최한 대회에서 파이널리스트를 차지했다. 저명한 디자인 공모전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에서 ‘2016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 베스트 위너’로도 선정됐다.

▲ 김경욱 아이피엘 대표와 소셜로봇 아이지니.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소셜 로봇 분야 선구자의 꿈

소셜 로봇 분야는 아직 성공한 모델이 없는 미지의 영역이다. 기업들이 인공지능 비서를 앞다투어 출시하고 있지만 현재 사람들이 생각하는 만큼 인공지능이 발달하지 않았다. 영화에서처럼 실제 로봇이 집안일을 해주고, 사람처럼 움직이는 시대는 아직 먼 셈이다.

김 대표는 “지금 세상에 나오고 있는 소셜로봇들 수준은 거의 비슷하다. 프로토타입이 조금 빨리나 오거나 늦거나 차이”라며 “기술력을 비교하며 싸우는 것보다 누가 더 빨리 고객의 반응을 이끌어내는지, 먼저 출시해 시장을 선점할 것인지가 관건”이라고 밝혔다.

아이지니는 생활 서비스 영역에 뛰어들 소셜로봇 분야의 선구자를 노린다. 김 대표는 “로봇 기술을 바탕으로 클라우드·빅데이터·사물인터넷·인공지능 등을 연동해 서비스하는 플랫폼을 구축하는 게 꿈”이라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로봇 분야는 스타트업이 가장 도전하기 어려운 분야”라며 '꾸준함'을 강조했다. 그는 “작은 회사지만 남들이 접근하지 못하는 큰일들에 도전하고 모험하며 여기까지 왔다"며 “우리나라에서 로봇사업을 할 때 큰 성과가 나오지 않더라도 꾸준히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로봇 기업들은 돈이 너무 없다. 100이라는 숫자를 놓고 볼 때 80 정도를 정부에서 지원하지 않으면 존속이 어렵다”며 "아직 소셜로봇 시장 자체가 작다. 롤모델이 없는 것, 성공할지 실패할지 모른다는 점 등이 투자를 받을 때 가장 어려운 점”이라고 설명했다.

▲ 아이피엘의 소셜로봇 아이지니.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로봇사업은 돈이 많이 들어가는 사업이다. 그는 “매출이 증가하고 돈이 돌아야 회사를 운영하고 인재를 육성하는데 그렇게 되기까지 매우 어렵다. 한 번 잘 안됐다고 해서 포기하지 말고 꾸준히 해야 한다”며 “그러나 실제 스타트업들은 지원금을 받아 국책 과제를 수행하며 성과를 보여주기에 급급하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아이지니는 조금씩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다. 지난해 11월 중국 파트너 루보(Roobo)사와 중국 서비스사와 160억원 규모의 유통 계약을 체결했다. 국내 로봇기업이 단일 제품으로 수출한 계약액 중 최고 금액이다. 소셜로봇 상용화 사례가 없는 시점, 아이지니가 물꼬를 텄다. 올해 안에 3~4개 국가에 진출하는 게 목표다.

올해 중순쯤 중국 시장에 진출하고 그 후 한국 시장에 출시할 계획이다. 아시아 시장에서 반응을 보고 다른 언어권으로 확장한다. 북미 최대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인 킥스타터에도 선보일 예정이다.

김 대표는 “중국이 거대 시장이지만 가장 앞서 있는 북미 지역에서 어느 정도 반응이 나와야한다”며 “짧게는 1~2년 정도 준비해 본격적으로 미국에 진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1가정 1로봇 시대는 아직 멀었다 해도 훗날 그날이 왔을 때 아이지니가 중심에서 눈을 반짝인다면 얼마나 반가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