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ICT 경쟁력이 갈수록 매서워지고 있다. 방대한 내수시장을 바탕으로 콘텐츠 및 플랫폼, 나아가 생태계 전략까지 유기적으로 전개되고 있어 당분간 오성홍기의 질주는 계속될 것이라는 것이 업계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 출처=위키미디어

 

시장-정부-기업의 삼위일체

중국 ICT 존재감이 날카로워진 배경에는 중국과 시장, 그리고 기업의 삼위일체가 동시다발적으로 융합했기에 가능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먼저 내수시장. 중국은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에 있어 매우 핵심적인 위치를 가지고 있다.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이 내년을 기점으로 역성장할 가능성이 높은 가운데, 중국 시장은 인도와 더불어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다.

그 연장선상에서 매력적인 내수시장을 내세운 중국의 ‘배팅’도 과감하게 전개되고 있다. 상황에 따라 자국 서비스를 막거나 일부 허용하면서도 강력한 규제를 덧대는 방법론이다. 그 과정에서 몸이 달아오른 글로벌 ICT 기업은 중국 정부의 방침에 철저히 따르며 일종의 환심을 사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한다. 자기 검열이 가능한 페이스북을 개발한 마크 저커버그, 대규모 연구개발 단지의 중국 설립을 추구하는 애플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은 상황에 따라 막대한 세금 및 규제를 통해 이들을 ‘조련’한다.

▲ 마크 저커버그. 출처=페이스북

내수시장을 매개로 글로벌 기업들을 유인, 콘텐츠와 플랫폼 융합을 적절하게 활용하는 ‘스킬’도 보여준다. 최근 알리바바의 행보가 눈에 들어온다. 지난해 9월 러티비의 별명이던 ‘중국판 넷플릭스’를 표방하며 ‘TBO’(Tmall Box Office)의 베타서비스를 시작하는 등 콘텐츠 사업에도 손을 뻗치는 상황에서 지난 10월 알리바바의 자회사인 알리바바픽처스가 미국 영화제작사이자 투자배급사인 엠블린 파트너스와 파트너십을 체결해 눈길을 끈다.

엠블린은 헐리웃 영화의 대가인 스티븐 스필버그가 지난해 설립한 곳이며 앞으로 양사는 공동제작한 영화를 중국에 배급하는 작업에 협력하기로 했다. 알리바바픽처스는 아직 자체 영화를 제작한 적이 없다.

엠블린 입장에서는 중국 시장 공략에 박차를 가할 수 있다. 알리바바의 플랫폼을 바탕으로 방대한 정보를 취합해 비교적 정교하게 현지 비즈니스 모델을 전개시킬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번 협력은 콘텐츠를 제작하는 엠블린보다 플랫폼의 알리바바에 더 커다란 이익을 보장할 전망이다. 중국 시장에는 엠블린의 콘텐츠가 알리바바의 플랫폼을 타고 흐를 수 밖에 없으며, 새로운 시장이 더욱 커질수록 엠블린의 알리바바 의존도는 점점 높아질 것이 확실하다. 이 과정에서 알리바바는 글로벌 진출의 포석을 마련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매력적인 내수시장의 존재로 가능한 일이다. 이러한 성장은 전반적 경제상황의 호조를 바탕으로 중국인들의 구매력 상승과 강력한 시너지를 보여주고 있다.

중국 정부의 전격적 지원도 주효했다. 규제는 풀어주고 진흥정책은 강하게 추진하고 있다. 인터넷전문은행 정국에서 정부 차원의 규제 개혁이 강력한 동력을 발휘했다는 점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여기에 장기 정보화 프로젝트인 국가정보화발전방향과 인터넷플러스, 스마트제조2020 프로젝트 등은 ICT 발전에 대한 중국 정부의 야심을 잘 설명하고 있다는 평가다.

나아가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시장 등 다양한 영역에서 정부 차원의 정책들이 속속 설립되고 있으며 그 연장선상에서 업계 지원을 위한 펀드 조성 등도 이뤄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매력적인 내수시장과 정부의 강력한 지원을 바탕으로 쟁쟁한 기업들이 탄생했다. 일종의 기업가 정신을 표방하는 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 등 소위 BAT 트로이카를 비롯해 화웨이와 오포 및 비보, 스마트홈을 노리는 샤오미 등 생태계 자체도 풍부해지는 분위기다.

화웨이의 경우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 3위의 자리에 오르며 네트워크 사업자 이상의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고, 비보와 오포는 중국 스마트폰 시장의 다크호스로 맹활약하고 있다. 텐센트는 메신저 위챗 등을 바탕으로 힘을 길러 게임과 엔터테인먼트 등 전방위적 영역 확장에 여념이 없다. 최근 자금난에 휘청이고 있지만 러에코의 생태계 전략도 눈부시며, 알리바바의 전자상거래 존재감은 시간이 갈수록 ‘종합 ICT 기업’의 흐름을 잡아가고 있다. 바이두는 최근 다소 주춤하는 분위기지만 중국 검색시장의 80%를 차지하며 여전히 최강자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결론적으로 매력적인 내수시장을 기반으로 자체 생태계를 키울 수 있는 중국 정부 특유의 중앙주도적 정책이 위력을 발휘하고, 그 중심에서 다양한 ICT 기업들이 스타트업까지 포함한 나름의 존재감을 자랑한다는 뜻이다.

▲ 출처=화웨이

중화일통? 한계도 있다

내수시장과 정부의 강력한 정책, 그리고 뛰어난 기업의 등장으로 중국 ICT 업계는 점점 팽창하고 있다. O2O 및 스타트업, 결제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빅데이터 로드맵 등 연결고리의 존재감도 상당하다. 전기차 및 드론, 인공지능 등 그 영역도 다양하다. 시장조사기관 스테티스타에 따르면 2016년 5월 기준 글로벌 인터넷 및 ICT 관련 기업 중 시가총액 수준 10위권 안에 중국 기업이 4개나 이름을 올릴 수 있었던 배경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삼위일체의 핵심인 중국 정부의 의지가 ICT 발전을 위한 순수한 목적이라기 보다, 일종의 정치적 의도가 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2020년까지 중산층이 많은 사회(샤오캉사회)를 구현하는 것에 방점을 찍었다. ‘중국인의 삶을 윤택하게 만든다’는 것이 기본적인 경제정책 골자며, 이는 결국 체제의 안정을 위한 집념으로 해석된다. 이 과정에서 ICT 발전을 위한 다양한 정책은 목적이 아닌 수단이 되며, 체제의 안정을 위해서는 ICT 발전 로드맵의 일부를 포기할 수 있다는 해석을 가능하게 만든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달 29일 중국 정부의 빅브라더 시도를 보도해 눈길을 끌었다. 금융정보 및 대중교통 이용현황, 심지어 SNS의 개인적 멘트를 모아 사회적 신용평가점수를 매기는 것이 골자다. 현재 중국 항저우에서 시범운영이 되고 있으며, 이렇게 모여진 사회적 신용평가점수는 취업 및 여행 등 다양한 영역에 영향을 미친다는 설명이다. 알리바바와 텐센트 등도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픈소스의 기조를 바탕으로 무한의 생태계 전략에 활용되어야 하는 ICT 기술이 체제의 안정을 위한 안전장치로 작동하는 극적인 사례다.

중국 정부는 지난달 새로운 사이버보안법(cybersecurity bill)을 통과하기도 했다. 자국에서 ICT 사업을 하는 기업들에게 제품 소스코드를 의무적으로 제공하는 법안이다. 이 역시 생태계 전략에 있어 최근의 트랜드와 반대로 가는 추세다.

심지어 중국 정부는 현지에서 특정 사업자가 사업을 할 경우 데이터를 반드시 중국에 저장해야 하며 모든 인터넷 서비스에 실명을 포함한 개인정보를 등록하도록 하는 등 더욱 까다로운 가이드 라인을 제시하기도 했다. 네트워크 사고가 벌어지면 반드시 중국 정부에 신고해야 하며 필요하다면 백도어까지 지원해야 하는 내용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리하자면, 중국은 글로벌 ICT 업계의 ‘뜨는 해’이자 삼위일체를 바탕으로 무서운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이를 위한 환경적 토대도 잘 구비되어 있으며 스펙트럼도 넓은 편이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ICT 발전의 과실을 일부 포기하는 한이 있어도 체제의 안정에 지나치게 천착하는 분위기도 풍긴다. 그 가이드라인은 외국의 기준보다 더 까다롭고, 난해하다.

물론 이러한 정책의 이면에는 자국 기업의 성장을 최우선으로 삼으려는 정부의 의지가 있으며, 결국 매력적인 내수시장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이러한 정책도 자국 기업을 ‘온실 속 화초’로 키워내는 부작용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나아가 영원히 '꿀'이 흐르는 내수시장도 없다는 점도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