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는 원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지 않았다. <총, 균, 쇠>, <섹스의 진화> 등의 저서로 한국인에게 친숙한 제레드 다이아몬드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교수는 유명 석학으로서는 드물게 소탈하고 인간적인 매력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잦은 출장으로 수차례 서면으로 질문과 답을 보내고 받으며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박사는 ‘인터뷰가 출판되면 학교 사무실로 보내달라’고 했고 ‘기다려줘서 고맙다’는 사과도 여러 번 했다. 지성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우문(愚問)으로 여겨졌을 기자의 질문에도 그의 대답은 놀랍도록 유쾌하고 재기발랄했다. 지나치게 전문적이거나 자극적인 대답은 없었다. 그가 꺼낸 것은 가족에 대한 이야기였다. 인류에 대한 연구도 결국 자신의 아이와 가족을 위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설명이 됐다.

▲ 제라드 다이아몬드 박사. 출처=제라드 다이아몬드 제공

<총, 균, 쇠>가 한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됐다. 이 같은 성공을 예상했나?

작가들은 대개 비현실적인 꿈을 꾼다. 20년 전 이 책이 나오기 전에 내가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한국에서 미국 시장 다음으로 큰 매출을 올릴 만큼의 인기를 얻을 것이라고는 절대 기대하지는 않았다. <총, 균, 쇠>가 서울대학교 도서관에서 가장 자주 대출되는 책이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렇지만 어떻게 보면 놀랄 것도 없는 것이 내 책들은 주로 오래된 역사에 대한 의문을 다루고 있다. 한국은 단일민족이며 오랜 기간 분단국가였고 중국, 일본, 러시아 등의 열강의 이웃나라로서 세계사의 분명한 역할을 담당해 왔다. 한국인들이라면 내 책의 요체가 되는 세계사의 큰 궁금증들을 풀어나가는 것에 대해 충분히 관심을 가질 것 같다.

 

지난 1만년 동안 전 세계 지역은 각기 다른 속도로 다르게 발전해 왔다. 책에서는 그 원인을 ‘지리’에서 기인했다고 했다.

2000년 전까지 중국은 일본보다 훨씬 빨리 진보했고, 이라크와 시리아도 유럽보다 훨씬 빨리 발전했다. 오늘날의 유럽의 막대한 부와 기술적 발전을 감안하면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지난 1만년 전부터 수천년 전에 이르기까지 각 지역에서 농경 발전의 속도가 달랐기 때문이다. 농경 발전에 따른 인구 성장과 과잉생산된 식량 축적은 중앙집권적인 지배 체제, 기술, 활자 등을 발달케 했다.

이라크와 시리아 등 중동에서는 전 세계 어느 곳보다 일찍 농경이 발달해 유럽으로 전파됐고, 마찬가지로 일찍이 중국에서 발달한 농경문화는 빠르게 한국으로 전파됐다. 그러나 3000년 전과는 달리 현재 이들 국가들은 전 세계를 선도하는 나라들은 아니다. 농경문화가 세계의 다른 나라들로 전해진 이후 그들만의 독특한 장점을 갖지 못했기 때문일 거다.

 

박사가 지구의 지속가능성에 대해서 연구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

계기가 있다. 1987년에 늦둥이인 쌍둥이 아들들을 얻고난 다음이다. 1937년생인 내게 사람들이 2050년에 대해서 말할 때는 마치 2352년 같은 비현실적인 말로만 들렸다. 어차피 그 전에 죽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아들들이 태어나고 보니 2050년에도 내 아이들은 고작 63살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들의 인생은 분명 2050년의 세계가 어떤 모습인가에 영향을 받게 될 것이고 말이다. 아내와 내가 유언장을 쓰거나 생명보험을 들거나 하는 어린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하는 일들도 만약 그 때 세계가 망가져 버린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이전에 지구의 문제를 바로잡을 수 있는 시간은 50년밖에 없다고 했다. 여전히 그렇게 믿고 있는가?

지구를 고치는 데 50년이 남았다고 믿느냐고? 아니 그렇지 않다. 그 글을 쓴 지 20년이 됐다. 그러니까 이제 우리에겐 고작 30년이 남았을 뿐이다. 그동안 문제가 더 나아졌을 수도 또 나빠졌을 수도 있다. 나빠진 점은 더 많은 사람들로 인해 더 많은 자원이 소모됐다는 것이고 좋아진 점은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전 세계적인 각성이 늘었다는 점이다.

 

그러면 우리가 그것들을 바로잡기 위해 먼저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가.

갓 결혼한 부부가 “우리 방금 결혼했어요. 행복한 결혼을 위해 먼저 무엇을 해야 하나요? 아이들, 돈, 부부관계, 시댁, 대화 또 뭐가 있죠?” 하고 묻는 것 같다. 이런 커플이라면 금방 이혼해 버리지 않겠나. 행복한 결혼은 문제를 하나하나 나눠 규명하는 것이 우선이 아니라 많은 문제를 한 번에 풀어버릴 수 있을 때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유사하게 인류의 문제들도 ‘어느 것부터 먼저’ 하는 식으로 풀어낼 수 없다. 세계적 불평등, 자원 고갈, 기후 변화, 핵전쟁 등의 문제들 중 대부분을 해결한다 해도 단 하나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실패한다면 그만으로도 인류에게는 충분한 위협이 된다.

 

박사는 인류의 미래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보는 것 같다.

그렇지 않다. 나는 스스로를 ‘신중한 낙관론자(Cautious Optimist)’라고 부른다. 그러니까 나는 51%의 확률로 우리가 문제를 풀 수 있다고 생각하고, 고작 49%의 확률로 우리가 문제를 푸는데 실패해 세계가 망하고 말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에 닥친 문제들은 모두 우리가 만든 것이다. 문제를 만든 것이 인류라면 더 이상 문제를 만들지 않기로 하는 것도 우리의 선택이라고 믿는다.

 

전 세계를 탐험하고 연구했다.

나는 소규모의 전통적 부족사회에 사는 소위 문명화되지 않은 사람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 지난 50년 동안 함께 필드 연구를 함께 해온 뉴기니인들의 경우에도 아이들을 양육하는 법, 건강을 유지하는 법, 분쟁을 해결하는 법, 행복하게 늙어가는 법 등 거의 인간이기에 갖게 되는 일반적인 문제를 똑같이 갖고 있다. 부족사회는 이러한 인간들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많은 방법들을 깨우쳐 습득하고 있었고 몇몇은 도시화된 미국이나 한국의 방식보다도 더 나을 때도 있었다. 그래서 직접 내 인생에 적용한 적도 많았다.

 

뉴기니에서 육아법을 배웠다고 한 것을 들었다. 이제 성년이 됐을 박사의 자녀들은 정말로 멋진 어른이 됐나?

모든 부모는 자신의 자녀가 특별한 어른이 됐다고 말한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뉴기니에서는 아이들이 아주 어릴 때부터 안전을 위협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들 스스로 선택을 할 수 있게끔 허락해준다.

내 아들 중 하나는 3살에 뱀과 파충류와 양서류에 매료됐다. 나는 아들의 애완동물로 그것들을 147마리나 키우도록 해줬다. 또 다른 아들은 어려서 미국 남북전쟁에 푹 빠져 유적지를 돌아다녔다. 뱀을 모으던 아들은 지금 요리사가 됐고 남북전쟁 역사학자를 꿈꾸던 아들은 헤지펀드 리서처이자 벤처캐피털 투자자가 됐다. 나는 어떻게 뱀을 수집하는 취미와 남북전쟁에 대한 관심이 그런 선택들을 하게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선택한 삶을 살고 있다.

 

현재 관심을 갖고 있는 나라나 특정 문화가 있나.

인간을 연구하기 위해서 세계 어디라도 연구해 왔다. 최근에는 모국인 미국에 대해 공부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또 뉴기니, 인도네시아 등 필드 연구를 위해 즐겨 찾았던 곳들에 여전한 관심을 갖고 있다.

 

최근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인물이 누구인가.

내가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인물은 지난 38년간은 내 아내였고 29년 동안은 아이들이었다. 최근은 물론, 지금 그리고 미래에도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고 흥미로운 사람들은 내 가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