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게임빌

11년 만에 게임빌이 기자 간담회를 열었다. 2000년 문을 연 게임빌은 국내 1세대 모바일게임사라 불리며 대한민국 모바일게임의 원조라고 자평한다. ‘국가대표 모바일게임사’라는 수식어도 있다. 글로벌 시장 곳곳에서 승전보를 울려왔던 이유에서다.

하지만 지난해엔 자존심을 구겼다. 신작을 히트작으로 거듭나게 하는 데 실패하며 실적 부진에 빠졌다. 2014년과 비교하면 영업이익이 71.5%나 줄어든 대목이 결정적이다. 그 사이 넷마블게임즈가 모바일게임 국내 최고의 자리를 꿰찼으며 넥슨과 엔씨소프트도 모바일 사업 역량을 키워나갔다. 형제 회사인 컴투스는 ‘서머너즈 워’를 앞세워 글로벌 시장에서 독보적 위상을 지켰다.

이런 상황에서 게임빌은 올해 반등을 꾀하고 있다. ‘마스커레이드’나 ‘킹덤오브워’ 같은 신작을 내세워 분투 중이다. 30일 오랜만에 열린 기자 간담회가 반가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가까운 미래를 겨냥한 ‘반등 패’를 보여주려는 취지다. 게임빌이 제시한 키워드는 어쩌면 흔하디 흔한 ‘RPG’였으나, 이제는 달라진 각오가 엿보인다.

▲ 출처=게임빌

11년 만의 행사, 모바일 RPG만 6종

게임빌은 30일 ‘RPG the Next’라는 제목의 기자 간담회를 열었다. 2005년 11월 ‘2006프로야구’ 출시 기념 간담회 이후 11년 만이다. 게임빌은 이 자리에서 신작 라인업 6종을 공개했으며 행사 제목처럼 신작 6종은 모두 RPG 장르의 모바일게임이다.

게임빌은 올해 3분기 중에 ‘나인하츠’를 우선 선보인다고 전했다. 스토리와 일러스트에 심혈을 기울여 읽는 재미와 보는 재미를 주는 게임이다. 4분기에는 PC온라인게임 IP(지적재산권)를 기반으로 개발한 ‘데빌리언’을 출시한다. 원작에서처럼 주인공 캐릭터가 악마로 변신할 수 있다는 특징을 지닌다.

내년 1분기에는 ‘워오브크라운’과 ‘A.C.E’와 ‘아키에이지 비긴즈’를 출시할 예정이다. ‘워오브크라운’은 모바일 플랫폼에서는 아직 생소한 택틱스 전투 기반 SRPG 장르다. ‘A.C.E’는 PC온라인게임 ‘에이지오브스톰’의 세계관을 계승하는 모바일 전략 RPG다. ‘아키에이지 비긴즈’ 역시 PC온라인게임 IP를 기반으로 개발한 기대작이다.

▲ 출처=게임빌

게임빌은 특히 이 자리에서 모바일 MMORPG ‘로열블러드’를 첫 공개했다. 자체 개발 게임으로 블록버스터급 방대한 콘텐츠가 특징이다. 개발 방향은 ‘낯설게 하기’인데, 기존 MMORPG의 요소를 가져와 새롭게 재해석한다는 설명이다. 정식 출시는 내년 3분기로 계획하고 있다.

글로벌 RPG 시장, 있다? 없다?

왜 RPG인가. 사실 업계에서는 국내 모바일 RPG 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르렀다는 얘기가 나온다. 앱마켓 랭킹 최상위권에 RPG가 대거 이름을 올린 것은 사실이지만 그만큼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이다. 모바일 RPG가 유독 국내에서만 인기를 끄는 탓에 ‘내수용 장르’ 아니냐는 우려도 존재한다.

송재준 부사장 생각은 다르다. “RPG가 해외는 포화 시장으로 보이진 않습니다. 북미나 유럽 앱마켓 톱 10에 RPG는 ‘서너머즈 워’가 유일한 정도죠. 한국의 앞선 RPG로 글로벌 시장을 공략한다면 뚫어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박원희 블루홀 지노게임즈(‘데빌리언’ 개발사) 대표도 말을 덧붙였다. “성공 사례가 없다는 것이지, 시장이 없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습니다.”

▲ 출처=게임빌

다만 ‘어떻게’의 문제는 빠져있다. 여기에서 게임빌이 믿는 구석은 ‘글로벌 역량’이다. “게임빌의 가장 큰 경쟁력은 글로벌 시장에 대한 자신감입니다.” 송재준 부사장의 말이다. 게임빌이 미국에 현지 법인을 세운 게 벌써 10년 전이며 이후 아시아·유럽·북미를 아우르는 12개 거점 지사를 세웠다. 이 거점을 중심으로 안정적인 글로벌 서비스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참고로 게임빌 전체 실적에서 해외 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을 훌쩍 넘는다.

다른 국내 게임사들도 글로벌 시장을 당연히 바라본다. 다만 현지 퍼블리셔와 협력하는 방식을 택한다. 불리한 수익 배분이라든지, 소통 문제와 같은 시행착오를 겪을 수 있는 방식이다. 글로벌 라이브 서비스를 지향하는 게임빌은 겪지 않을 문제들이다.

요약하자면 게임빌은 글로벌 서비스 역량을 바탕으로 자체 개발은 물론 국내 개발사들의 RPG 개발 역량을 끌어모아 글로벌 모바일 RPG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포부를 전한 셈이다. 또 이를 실적 반등 카드로 활용하겠다는 생각이다.

▲ 출처=게임빌

게임빌의 가까운 미래

게임빌이 6종의 라인업을 발표하자 다른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6종 모두 중세 판타지를 배경으로 한 RPG라서 차별화 요소가 부족하지 않냐는 것이다. 사실 이전의 다른 RPG도 중세 기반으로 한 작품이 대부분이기는 하다. ‘획일화’ 문제가 제기되는 지점이다.

게임빌은 RPG 장르의 대중성을 취하면서도 장르 세분화를 통해 차별화를 꾀했다. RPG도 다 같은 RPG가 아니다. 이번에 공개한 라인업을 보면 장르가 세밀하게 나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SRPG·액션 RPG·전략 RPG 등 그 구분이 세밀하다. 장르 세분화를 통해 글로벌 유저층의 다양한 취향에 대응하는 일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글로벌 모바일 RPG 흥행 공식을 추출해내는 일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게임빌이 RPG에만 몰두한다는 얘긴 아니다. 게임빌은 그간 장르·지역 불문 전략을 구사해왔으며, 이런 전략은 이어간다는 방침이다. 그럼에도 11년 만에 진행한 간담회에서 RPG 게임만 6종을 공개했다는 것은 의미가 크게 다가온다. 게임빌이 가까운 미래를 겨냥한 승부 키워드가 RPG인 것이니 말이다. 게임빌이 모바일 RPG의 글로벌 시장성에 대한 편견과 의구심을 떨쳐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