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積意9678, 마천석 에폭시 60×30×30㎝, 1976

박석원은 여전히 돌덩어리를 절단하고 또 그것을 네모나게 재단하기도 한다. 그리고 절단된 크고 작은 돌덩어리를 언제부터인가 하나둘씩 쌓아 올려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와 같은 작업을 두고 작가 스스로가 <적>이라고 했다.

두말할 것도 없이 이 ‘적(積)’연작은 전기의 ‘절(切)’연작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해서 이 '쌓아올리기' 작업은 ‘절단’이라는 과정 없이는 성립될 수 없으며 또 실질적으로 ‘적’연작은 연대적으로 보아 ‘절’연작과 병행하여 1970년대 말 경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작업인즉 단일 단위로서의 돌덩어리가 아니라 일정 크기로 절단 구획된 돌덩어리를 모아 하나의 전체로서 통합시킨다는 데 있다. 박석원의 ‘적’연작이 이전의 ‘절’과 확연히 획을 긋는 보다 명확한 형태로 나타나기는 아마도 1981년의 다섯 번째 개인전 때부터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그 작업은 석조뿐만 아니라 철조 목조에로 확대되어 가며 그 다양한 전개와 함께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적’이라고는 했으나 그것은 실질적으로 ‘절의 연장선상에서의 전개이며 땅(또는 마루) 위에 직접 세워져 있거나 눕혀져 있을 때나 소단위의 낱개와 그 적립에 의한 전체와의 사이에는 형태상의 차이는 별로 없다.

거의가 동일한 단위의 반복적인 결합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또 실제로 ‘적’연작에서 볼 수 있는 또 다른 조형적 라이트모티프는 바로 ‘반복’이며 절단하고 그것을 다시 쌓아올리는 작업, 동일한 소단위의 부분을 모아 그것을 하나의 전체로 확대 구성하는 작업 또한 반복의 행위이다.

▲ 積8201, 화강석, 30×120×120c㎝, 1979

그리하여 그 ‘적’은 바로 그 관계의 구조적 실체이다. 그리하여 ‘적’은 전체로서 때로는 돌담이 되기도 하고 돌기둥이 되기도 하며 매로는 각주(角柱, 목조의 경우) 또는 원주(圓柱-철조의 경우)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부분이 하나의 전체로 통합된다고 했을 때, 그것은 단순한 적립 또는 조립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절단과 적립, 더 나아가 해체와 구성 요컨대 부분과 전체와의 은밀한 관계가 존재하여 박석원(A South Korea Sculptor PARK SUK WON,조각가 박석원,朴石元,PARK SUK WON,한국현대추상조각 선각자 박석원,박석원 작가,한국현대추상조각 선구자 박석원)의 ‘적’은 바로 그 관계의 구조적 실체이다.

그리하여 ‘적’연작에 있어서는 어떤 특징 형태보다는 그것을 규정하는 구조가 선행하며 그 구조는 형태와의 관계에 있어 또 다른 공간성을 획득하기에 이르는 것이다. 그 공간성, 그것은 일종의 구조화된 공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며 그 공간은 작품마다 그 구조의 변화에 따라 그 공간적 위상을 미묘하게 달리한다. 그렇다고 해서 조각에서 어떤 부분이 제거되거나 또는 추가되는 것은 아니다.

하나의 전체는 작품은 흔들림 없는 견고성을 지탱하고 있거니와 그 견고성은 사실인 즉 대범스러움과 면밀한 계산을 이울러 갖춘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서 결과하는 내재적인 공간적 위상의 미묘한 편차는 때로는 시적(詩的)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은밀한 운치를 발산하고 있기도 한 것이다.

△이일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