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건설기계 중형 휠로더 HL960A. 출처=현대건설기계

[이코노믹리뷰=이가영 기자] 현대중공업지주(267250)가 두산인프라코어(042670) 매각전에 출사표를 던졌다. 건설기계업계 2위인 계열사 현대건설기계(267270)와 합해 시너지 효과를 누리겠다는 구상으로 풀이된다. 다만 인수 자금 부담, 시너지 효과 여부 등 요인이 남아있어 매각을 완주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현대重, KDB인베스트먼트 손잡고 두산인프라코어 매각 참전

업계에 따르면 현대건설기계를 계열사로 둔 현대중공업그룹은 산업은행 자회사인 KDB인베스트먼트(KDBI)와 컨소시엄을 꾸려 두산인프라코어 매각 예비입찰에 제안서를 제출했다고 지난 28일 공시했다. 입찰에는 MBK파트너스, 글랜우드프라이빗에쿼티(PE) 등 대형 사모펀드들도 참여한 것으로 알려진다.

인수 대상은 두산인프라코어 지분 36.27%며, 지분가치는 약 6000억원으로 평가된다. 여기에 경영권 프리미엄 등을 합하면 매각가는 8000억원에서 최대 1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시장에서는 본 입찰은 11월, 최종 인수자 결정은 연내에 이뤄질 것으로 보고있다. 

두 달도 안 돼 입장을 번복한 셈이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지난 8월 7일 한국거래소의 조회공시 답변을 통해 두산인프라코어 인수를 검토한 사실이 없다고 부인한 바 있다. 현대중공업그룹이 두산인프라코어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는 보도에 따른 것이었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일찌감치 두산인프라코어의 유력 인수 후보자로 거론돼왔다. 계열사 현대건설기계가 두산인프라코어와 비슷한 사업을 영위하고 있는데다 양사 합병 시 시장 점유율 확대 등 시너지 효과가 기대된다는 점에서였다. 

시장에서는 현대중공업그룹의 입장 선회의 가장 큰 이유로 두산인프라코어차이나(DICC)의 소송 우발채무 리스크가 사라진 점을 꼽고 있다. 

두산인프라코어 중국 자회사인 DICC는 미래에셋자산운용·하나금융투자·IMM프라이빗에쿼티 등 재무적 투자자(FI)들과 소송을 진행 중이다. DICC가 2011년 FI로부터 투자금 3800억원을 유치하면서 기업공개(IPO)를 약속했지만 이행되지 않으면서다. 현재 1심은 두산이, 2심의 투자자들이 승소했다. 만약 3심에서 DICC가 패소하는 경우 지연 이자를 포함한 우발채무 최대 1조원을 인수자가 떠안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두산그룹이 DICC 소송에 따른 우발채무를 책임지는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현대중공업그룹의 인수 의지에 방아쇠를 당긴 것으로 관측된다. 

재무적 투자자인 KDBI의 참여도 현대중공업그룹의 예비 입찰 참여의 요인으로 거론된다. 그간 현대중공업그룹은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에 집중해왔다. 하지만 KDBI 참여로 재무 부담이 완화돼 예비 입찰 참가를 결정했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현대중공업그룹 관계자 또한 <이코노믹리뷰>와의 통화에서 “재무적 투자자(FI) 제의가 들어와서 재무 부담이 줄었고, 두산그룹이 두산인프라코어차이나(DICC) 소송 우발부채를 떠안기로 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고 판단해 매각에 참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 현대건설기계와 두산인프라코어 2019년 주요 재무 상황. 출처=대신증권

인수 성사 시 독보적 경쟁력 기대… 재무부담 ‘높고’ 시너지 효과 ‘글쎄’

매각이 성공리에 성사될 경우 현대중공업그룹은 산업 내 1, 2위 업체를 모두 소유하게 돼 독보적 경쟁력을 갖추게 될 전망이다. 현재 두산인프라코어의 국내 건설기계 시장점유율은 40%, 현대건설기계는 25%를 차지한다. 

또한 글로벌 빅5 건설기계 제조업체로 도약도 노려볼 만하다. 2018년 실적을 기준 글로벌 건설기계 시장에서 두산인프라코어의 시장점유율은 3.7%로 9위, 현대건설기계는 1.5%로 20위다. 두산인프라코어 매출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두산밥캣을 제외하더라도 세계 5위인 볼보건설기계(5.2%)와 겨뤄볼 만 하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특히 현대건설기계는 두산인프라코어 공급망, 유통망, 기술 등은 물론이고 연구개발(R&D) 비용 감소, 가격 결정력 상승 등의 시너지 효과를 누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또한 경기 부양책으로 중장비 수요가 꾸준하게 증가 중인 중국시장 공략에도 유리한 고지에 설수 있게 된다. 중국시장에서는 로컬업체들과의 경쟁격화로 영업망과 기술 확보가 중요해진 상황이다. 지난해 기준 두산인프라코어의 중국 매출 비중은 40%, 현대건설기계는 약 25%다. 

그룹차원에서는 주력사업인 조선업의 집중도를 낮춰주는 등 사업 다각화 효과가 예상된다. 코로나19로 신조 발주가 급감한 상황에서 벗어나 실적 안정성을 높이는 요인이 될 수 있을 것이란 관측이다. 여기에 현대의 물류·하역용 산업차량사업, 두산의 엔진사업 등과의 결합에 따른 상승효과도 기대된다. 

업계에서는 현대건설기계가 보아뱀이 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자신보다 규모가 큰 기업을 인수하는 것을 두고 ‘보아뱀 전략’이라 칭한다. 프랑스 작가 생텍쥐페리의 동화 ‘어린 왕자’에서 보아뱀이 자기 몸집보다 몇 배나 큰 코끼리를 삼킨 이야기에 빗대어 생겨났다.

시장에서는 기업가치가 작은 기업이 동일업종의 큰 기업을 인수할 경우에는 합병 시너지보다 재무적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본다. 실제 두산인프라코어의 매각가격은 8000억원에서 1조원 사이로 알려진 가운데 시가총액(30일 기준)이 현대건설기계는 5221억원, 두산인프라코어는 1조8600억원으로 대략 4배에 달한다. 

매각 주체가 현대중공업지주인만큼 현대건설기계 자금이 직접 투입되지는 않을 전망이다. 그렇다고 그룹의 자금여력을 모두 동원할지도 미지수다. 현대중공업지주는 대우조선해양 인수도 앞두고 있다. 또한 올해 주력사업인 조선업 상황이 녹록치 않아 현금 확보에 나서야 하는 상황이다. 올해 상반기 연결 재무제표 기준 현대중공업지주와 현대건설기계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각각 2조2242억원, 8387억원 수준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입찰가를 낮추는 것도 사실상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막강한 자금동원력을 가진 대형 사모펀드가 대거 참여했다는 점에서다. 현재 두산인프라코어 매각에는 MBK파트너스, 글랜우드PE 등이 참여한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이들이 합종연횡을 이룰 수 있다는 가능성도 나온다. 

아울러 시너지 효과에 대해서도 확인이 필요하다. 특히, 두산인프라코어 엔진사업이 매각 대상에 포함되는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두산인프라코어의 엔진사업은 두산인프라코어 자체 경쟁력은 물론 두산밥캣의 영업활동에도 영향을 주는 요소다. 아울러 인수가 성사될 경우 현대건설기계가 국내 최대 건설기계 사업자로 등극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두산인프라코어와 현대건설기계 모두 매출 내 내수시장 비중은 크지 않다. 인수 후 두산이라는 브랜드가 유지 될 가능성도 제한적인 만큼 중국 등 해외에서 시너지 효과가 미미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정동익 KB증권 연구원은 “합리적인 조건과 가격으로 인프라코어를 인수할 경우 엔진 내재화, 국내 가격 결정력 상승, R&D 비용 감소, 부품 및 소재 구매 협상력 증대, 강세지역 노하우 및 유통망 공유 등에서의 시너지가 기대된다”면서도 “아직도 매물에 남겨질 차입금 규모는 미정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동헌 대신증권 연구원 또한 “사모펀드들과의 경쟁으로 입찰 가격을 낮추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이며 인수가격에 대한 부담으로 인수 성공 가능성은 미지수”라며 “현대건설기계의 매출액은 두산인프라코어의 77.6% 수준”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