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물산 사옥 전경. 출처=삼성물산 패션부문

[이코노믹리뷰=박자연 기자] 박철규 부문장이 삼성물산 패션부문(이하 삼성패션)의 지휘봉을 잡은지 약 2년 만에 암초를 만났다. 지난해 본격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된 후 올해 상반기 최악의 성적표를 받은 탓이다. 부임한 첫해 체질개선에 속도를 내며 순항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올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직격탄을 맞으면서 적자라는 큰 벽에 부딪혔다.

24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삼성패션(000830)의 올 2분기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9.4% 감소한 3770억원, 영업이익은 무려 90% 감소한 10억원에 그쳤다. 지난 1분기 309억원이라는 큰 폭의 적자를 기록한 이후 간신히 흑자전환을 이뤄냈지만, 비용절감에 따른 일시적인 효과라는 지적이 나온다. 상반기로 보면 총 매출은 7340억원으로 전년 동기대비 16% 줄었고, 영업손실은 300억원으로 적자 전환했다.

이는 지난해 박 부문장이 부임한 이후 성공적인 성적표를 받았던 모습과 크게 대조된다. 삼성패션의 지난해 실적은 매출 1조7320억원, 영업이익 320억원을 기록했다. 매출은 2018년 대비 1.6% 줄었지만, 영업이익은 28% 끌어올리며 ‘체질 개선’에 성공했다는 평을 받으며 무난히 경영 시험대를 통과했던바 있다.

지난해 새로운 수장이 된 박 부문장은 1960년생으로 서울대 국제경제학을 졸업했다. 1989년 삼성물산에 입사해 제일모직 해외상품사업부장(전무), 에잇세컨즈 사업부장(전무), 해외상품사업부장 겸 여성복 사업부장(전무) 등을 거쳐 2016년 삼성패션 상품총괄 부사장에 오른 전통 ‘삼성맨’이다. 이후 지난해 이서현 전 사장이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삼성패션의 새로운 수장에 올랐다.

체질개선 성공한 줄 알았는데...달콤했던 ‘1년’

지난해 박 부문장은 취임한 직후 ‘선택과 집중’ 전략을 펼치면서 경영효율화에 나섰다. 가장 먼저 2014년 YG엔터테인먼트와 합작 투자해 설립한 ‘내추럴나인’을 해산시켰다. 이 회사는 설립 이후 한 번도 흑자를 내지 못한 캐주얼 브랜드 ‘노나곤’을 운영했었다. 또한 20년 동안 운영해 오던 이탈리아 남성복 브랜드 ‘빨질레리’의 국내 라이선스 사업을 접는 등 해외 수입 브랜드도 정리 수순을 밟았다. 

대신 삼성패션의 대표 브랜드인 ‘빈폴’의 대대적인 리뉴얼을 단행하면서 수익개선에 집중했다. 삼성패션의 전신인 제일모직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정구호 CD(크리에이터 디렉터)를 빈폴의 컨설팅 고문으로 영입했다. 정구호 CD는 2015년 휠라코리아에서 일하면서 휠라 브랜드의 고객층을 젊은 세대로 넓히고 글로벌 브랜드로 힘을 키워가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후 빈폴을 2023년까지 중국·베트남·북미·유럽 등 해외 사업을 확대하겠다는 구상과 함께, 구호의 밀레니얼 버전인 ‘구호플러스’, ‘엠비오’ 등 온라인 전용 브랜드도 연이어 론칭하면서 지난해 실적을 흑자궤도에 올려놨다.

그러나 올해 예상치 못한 코로나19 확산으로 박 부문장은 의도치 않게 국내 시장부터 헤쳐 나가야하는 상황에 처했다. 올해는 코로나19 영향으로 패션업계 전체가 우울한 시기를 보냈지만, 유독 삼성패션이 입은 타격이 경쟁사에 비해 더 컸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실제 삼성패션은 LF, 한섬 등 경쟁사 대비 영업이익률이 낮은 것은 물론, 매출면에서의 추락폭도 가장 컸다.

올해 상반기 LF는 매출 7942억원, 영업이익 465억원을 기록했다. 작년 동기보다 매출은 11%, 영업이익은 16.1% 줄었지만, 경쟁사들 매출이 40~60%씩 급감한 것과 비교하면 선방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영업이익도 마찬가지다. 적자 전환한 삼성패션과 달리 LF, 한섬, 신세계인터내셔날 등 모두 두 자릿수 역신장 했으나 적자를 기록하진 않았다.

업계 관계자는 “박 부문장이 취임 전 삼성패션은 이렇듯 몇 년간 흑자와 적자를 넘나드는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는데, 지금 상황이 딱 이전과 같다”면서 “하반기 업계 전망도 불투명한 상황 속 사업전략을 어떻게 그려나갈지 예상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 빈폴 정구호 CD(크리에이터 디렉터). 출처=삼성물산 패션부문
'이서현' 흔적 지우기...여성복 ·온라인 사업 공략

박 부문장은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타격이 장기화될 것으로 보고 ‘고급 여성패션사업’과 ‘온라인 사업 강화’에 주력할 방침이다. 고급 여성패션은 고정적 수요가 확실한 시장으로 실제 코로나19로 소비가 위축된 분위기 속에서도 매출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고급 브랜드는 삼성패션이 지닌 강점이기도 하다. ·

이에 정욱준 크리에이터와 손잡고 지난 2007년 론칭된 이래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한 ‘준지’는 롯데백화점 에비뉴엘 본점에 여성 상품 단독 매장을 선보였고, 이탈리안 럭셔리 브랜드 ‘플랜씨’의 단독 매장도 여성 소비자들에게 높은 인기를 끌며 현대백화점 본점 3층에 단독 매장을 여는데 성공했다.

온라인 사업부문도 함께 강화할 예정이다. 자사 온라인몰 SSF샵을 적극 활용해 온라인 매출 비중을 확대해 실적 개선을 도모해 나간다는 것이다. 지난해 9월 론칭한 ‘구호플러스’의 경우 2030 여성 고객 사이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또한 SSF샵을 중심으로 비즈니스를 펼치고 있지만 밀레니얼 세대가 즐겨 찾는 장소에 팝업 매장도 오픈해 온·오프라인 채널을 전략적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지난 2012년 론칭한 ‘에잇세컨즈’는 여전히 풀어야할 숙제다. ‘에잇세컨즈’는 이 전 사장이 브랜드명에서 제품 디자인, 매장 콘셉트 직접 관여하는 등 야심찬 행보를 보여 왔지만, 론칭 이후 눈에 띄는 실적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자라’, ‘H&M’, ‘스파오’ 등 유명 SPA 브랜드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과 애매한 디자인 등이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에잇세컨즈 철수설이 끊임없이 나오는 것 역시 그동안의 부진한 실적과 무관하지 않다는 설명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패션부문장이 교체된지 약 2년이 된 지금, 과거 이서현 흔적을 완전히 지우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며 “지난해 빈폴의 대대적 리뉴얼에 나선 것도 시선을 돌리는 것으로 보는 시각이 있었다. 오너 일가가 떠나면서 꾸준히 언급되는 삼성패션 매각설도 박 부문장이 하반기를 어떻게 꾸려나가느냐에 바라보는 입장이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