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박정훈 기자] 삼성전자(이하 삼성)는 큰 위기에 직면해 있다. ‘다시’ 불투명해진 이재용 부회장의 거취 문제와 더불어 코로나19의 영향을 받은 플래그십 스마트폰 판매 부진, 미-중 분쟁 격화로 글로벌 입지가 흔들리고 있는 반도체 사업부문 등 전방위 위기를 마주하고 있다. 그러나 삼성은 이러한 위기에 대해 ‘지금 해야 하는 일’에 집중함으로 다양한 성과들을 보여주고 있다. 장기 관점의 지속적 성장을 향한 삼성의 주마가편(走馬加鞭)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 정부는 지난 15일을 시작으로 중국의 전자기업 화웨이에 대한 ‘사실상’ 거래 금지를 골자로 하는 규제 방안을 적용했다. 미국이 중국을 대표하는 기업인 화웨이를 압박함으로 중국 정부에 대한 일종의 경고였다. 삼성과 SK하이닉스는 미국의 기술이 조금이라도 반영된 반도체 제품을 화웨이로 판매할 수 없게 됐다. 삼성에게는 연간 7조3000억원 규모의 수요가 없어진 것과 같았다.

즉시 삼성은 SK하이닉스와 함께 화웨이에 대한 ​반도체 수출 관련 특별허가를 미국 상무부에 요청했다. 이 시기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화웨이에 이어 중국 최대 규모의 IT기업 텐센트에 대한 제재를 시작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따라서 삼성과 SK하이닉스의 요청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매우 낮아졌다.    

그러나 지난 22일 미국 정부는 자국의 반도체 기업인 인텔과 AMD에게 화웨이와 거래 할 수 있도록 특별 허가를 내렸다. 온전한 수급 균형을 무너뜨려 글로벌 반도체 업계에 혼란이 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으로 풀이됐다. 이에 따라 미국이 삼성과 SK하이닉스의 요청이 받아들여질 가능성도 높아졌다. 현 상황에 맞춘 빠른 판단으로 위기의 가능성들을 낮춘 기민한 대응이었다. 

삼성은 화웨이향 거래가 전면 중단되는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 그동안 메모리반도체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했던 비메모리반도체 부문의 경쟁력을 강화했다. 이러한 노력은 최근 큰 성과들을 내고 있다. 삼성은 지난달 17일 미국 IBM의 서버용 CPU ‘파워10’을 자사의 파운드리 시설에서 생산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이어 삼성은 그래픽처리장치 기업인 엔비디아의 GPU 신제품 ‘지포스 RTX30’의 생산을 수주했고 지난 13일에는 퀄컴의 5G 스마트폰용 AP칩 ‘스냅드래곤’ 위탁 생산 계약을 수주했음을 밝혔다.  

▲ 삼성전자 소형 이미지센서. 출처= 삼성전자

역량 강화를 통한 삼성의 가시적 성과는 반도체 관련 사업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지난 15일 삼성은 0.7μm(마이크로미터) 픽셀의 초소형 모바일 이미지센서 제품 4종을 공개했다. 이 제품에는 빛의 손실과 픽셀 간 간섭을 최소화하는 특허 기술 ‘아이소셀 플러스(ISOCELL PLUS)’가 적용됐다. 이 아이소셀 기술과 관련해서 삼성은 이미지센서 사업의 영역 확장을 시도하고 있다.

네덜란드의 IT미디어 '레츠고디지털'은 지난 22일(현지시간) 보도에서 유럽연합의 특허청(EUIPO)에 ‘아이소셀 비전’의 상표를 정식으로 출원했다고 전했다. 보도에서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이번에 삼성이 출원한 상표는 ToF(Time-Of-Flight·비행시간거리측정) 센서 개발을 기반으로 한 것으로 알려졌다.

▲ 네덜란드 IT미디어 '렛츠고디지털'이 공개한 삼성전자의 '아이소셀 비전(ISOCELL Vizion)' 상표 출원 인증. 출처= 렛츠고디지털

ToF 등 센서 분야는 일본의 전자기업 ‘소니’가 글로벌 시장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다. ToF는 증강현실·가상현실 등 첨단산업 분야에서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어 관련 업계에서는 성장 가능성이 큰 기술로 여겨지고 있다. 삼성의 행보에 대해 이미지센서 업계 전문가들은 “미국의 화웨이 제재로 인해 이미지센서 수요에 타격을 받은 소니가 잠시 주춤하는 사이 삼성이 치고 나오려 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여기에 삼성은 23일 새로운 스마트폰 라인업 ‘갤럭시 S20 FE’를 공개했다. 이 제품은 전 세계 갤럭시 사용자들이 새로운 제품에 반영되길 바랐던 기능들을 구현 가능한 범위 안에서 집약시킨 제품이다. 상반기에 출시된 갤럭시 S20을 잇는 라인업으로 7nm 64-bit 옥타코어 프로세서, 6.5형(164mm) FHD+ 슈퍼 AMOLED 디스플레이 등이 장착됐다. 

▲ Samsung Galaxy Unpacked for Every Fan 행사에서 신제품을 소개하는 삼성전자 글로벌 사업부문 마이클 랜돌프(Mic hael Randolph). 출처= 삼성전자

10월 중으로 정식 출시될 제품의 가격은 아직 책정되지 않았다. 업계에서는 올해 하반기 중 출시될 애플 ‘아이폰12’와의 경쟁을 감안해 ‘갤럭시 S20 FE’는 중저가형 제품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만약 이 예상이 맞아떨어진다면 삼성은 플래그십(S20, 노트20), 폴더블폰(갤럭시 Z 플립 2)에 중저가형(갤럭시 S20 FE)에 이르는 확장된 스마트폰 제품 라인업을 갖추게 된다. 

이러한 최근 행보에서 알 수 있듯 삼성은 대외의 변수들에 대해 가장 유연한 대처 방법을 선택하고 이를 통해 가시적 성과들을 내고 있다. 어려움에 맞설 수 있는 것은 맞서는 방안으로 또 다른 길로 우회할 수 있는 방안들을 찾아냄으로 일련의 위기로 입을 수 있는 충격을 최소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삼성이 보여주고 있는 성과들은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국내 기업들에게 여러 가지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