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박창민 기자] "외부적으로 문제가 불거지든, 금융사만 내부적으로 피해를 보든 책임은 결국 우리 몫인데, 권고라는 명목으로 옥죄는 부분이 날이 갈수록 많아집니다."

한 금융권 관계자의 토로다. 금융 당국의 '점포 폐쇄 자제령'과 이에 대한 정부의 후속 조치와 관련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 나온 말이다. 또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도 같은 주제로 이야기 도중 "권고라지만 감독감시를 하는 기관에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단지 점포 폐쇄 속도를 늦추고 지점폐쇄 영향평가 절차에 외부 전문가를 참여시키라는 당국의 요구만을 염두에 둔 넋두리가 아니었다. 금융당국의 '권고' 남발에 대한 누적된 피로감이었다.

피로감 밑단에는 빅테크 기업에만 관대한 당국에 대한 서운함도 깔려 있을 것이다. 책임 소재를 따지기도 전에 사모펀드 사태에 대한 배상을 전적으로 떠맡게 된 것도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지난달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은행권 대출만기 및 이자 유예 조치를 다시 한번 연장한 것과 이달 한국판 뉴딜 등 각종 정책펀드에 대한 대규모 자금 출자도 피로감을 더했다. 5대 금융지주가 올 들어 정책펀드에 세워 놓은 투자 계획 규모만 현재까지 188조3000억원에 이른다.

공적 책임을 분담하는 게 당연하다는 점은 금융권도 인정한다. 정부가 예금자 보호로 최종 대부자 역할을 해주고 있고, 진입장벽을 통해 과도한 경쟁을 막아주고 있어서다.

그러나 금융당국의 권고와 이에 따른 추가적인 제재가 계속되면서 자율성이 적어지는 상황이 답답하다는 게 금융권 관계자들의 넋두리다. 디지털금융 시대를 서둘러 적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금융권은 빅테크와의 본격적인 경쟁을 예고한 상태다. 이젠 네이버, 카카오는 물론 e커머스기업도 경쟁사로 떠올랐다.

점포 폐쇄도 비대면 금융거래 확산에 대응하려는 금융권의 몸부림이다. 점포 폐쇄가 피할 수 없는 흐름이라는 데는 금융당국도 공감한다. 다만 폐쇄 속도에 체감차를 보이고 있다. 고령층의 금융이용 불편과 점포폐쇄에 따른 일자리 감소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며 '천천히 줄여라'라는 정부의 요구도 이해되는 부분이다.

하지만 지난 2017년부터 줄곧 점포폐쇄 절차가 강화돼 왔기에 추가적인 제약보다는 "이젠 맡겨달라"는 금융권의 요청에 응할 시점이라는 의견에 무게가 실린다. 

앞서 금융감독원은 2017년 '은행권 점포 통폐합 관련 행정지도'를 6개월간 시행한 데 이어 작년 6월 ‘은행 점포 폐쇄 관련 공동절차’를 도입한 바 있다. 이 조치는 은행들이 고객에게 점포폐쇄에 관한 사전통지를 하도록 하고 영향평가를 의무화함으로써 금융소비자 편의성을 높이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받는다. 그러나 현재 금융위가 추진하고 있는 외부 전문가의 영향평가 참여는 '지나친 간섭'이라는 게 금융권의 얘기다.

규제 강화만이 해답이 아니라는 것은 부동산 정책에서도 드러난 바다. 자율성을 지나치게 해치는 규제는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낳을 수 있고, 이는 또 다른 규제 강화를 야기시킬 수 있다. 규제와 자율성의 균형이 중요한 이유다. 금융당국의 권고 남발은 균형을 깨트린다. 지금은 권고보다 시장의 소리를 들을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