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중세 유럽 시절 척박한 환경으로 말미암아 피 튀기는 용병의 삶을 이어가던 스위스는 근대와 현대를 거치며 정치적으로는 중립국, 경제적으로는 관광과 정밀공학의 메카로 성장했다. 그 중심에는 언제나 스위스 시계의 자부심이 강하게 자리하고 있다. 스위스 시계는 장인의 정교한 손에서 탄생한 예술품이며, 시대의 걸작 그 자체다.

그러나 지금 스위스 시계는 공포스러운 위기와 직면하고 있다. 2014년 애플의 손에서 탄생한 스마트워치인 애플워치가 2019년 기준 사상 처음으로 스위스 시계의 출하량을 앞질렀기 때문이다. 그것도 압도적으로.

▲ 애플워치. 출처=애플

3070만대 vs 2110만대
21일 업계 및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애플워치는 총 3070만대가 출하된 반면 스위스 시계는 2110만대 출하에 그쳤다. 2018년 애플워치 출하량이 2250만대, 스위스 시계가 2420만대 출하기록을 세운 것을 고려하면 상당한 변화다.

애플워치 출하량이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가운데 스위스 시계 출하량이 지속적으로 낮아지는 것이 눈길을 끈다. 초연결 시대를 맞아 스마트워치, 특히 애플워치를 찾는 젊은층이 많아지는 가운데 아날로그의 스위스 시계의 매력이 떨어지고 있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스위스 시계 입장에서는 공포스러운 추억의 재소환이다.

스위스 시계는 기계식 시계 시장에서 거의 독점적인 지위를 누린 바 있다. 그러나 1969년 최초의 쿼츠 시계가 등장하며 스위스 시계 업계에 파란이 불어오기 시작한다. 기계식 시계로는 절대 구현할 수 없는 정확도를 자랑하는 쿼츠 시계가 점점 영향력을 확대하며 스위스 시계 업계는 대혼란에 빠진 바 있다.

시간이 흘러 2019년. 이번에는 스마트워치의 공습에 스위스 시계는 더욱 코너에 몰린 분위기다. 쿼츠 시계 쇼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쓰나미가 불어오는 가운데 스위스 시계 업계에서는 '당장 묘수가 보이지 않는다'는 기류가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 출처=티쏘 발라드

공포 이겨낼 수 있을까
스위스 시계 업계는 쿼츠 쇼크에 어떻게 대응했을까. 프리미엄 전략을 적극 구사하며 스위스 시계의 정체성을 살리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실제로 당시 스위스 정부가 직접 나서 프리미엄 전략을 바탕으로 하는 '메이드 인 스위스' 정체성을 선명하게 부각시켰다. 그 연장선에서 스위스 의회는 1971년 무브먼트가 스위스에서 만들어져야 하며, 최종 완성품이 스위스 장인의 손에서 탄생하고 그 검수도 스위스 내부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조례를 제정했다. 이를 통해 '프리미엄의 기계식 시계 = 스위스 시계'라는 공식이 만들어지며 스위스 시계 업계는 큰 위기를 넘겼다.

그러나 애플워치로 대표되는 지금의 위기는, 스위스 시계 업계가 기존 쿼츠 쇼크에 대응하는 전략으로 대응하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이미 스위스 시계의 프리미엄 전략은 가동되고 있으며, 무엇보다 스마트워치 생태계는 스위스 시계의 프리미엄 브랜드까지 넘보고 있기 때문이다.

스위스 시계 업계는 적과의 동침을 타진하는 분위기다. 쿼츠 쇼크에는 이와 대비되는 프리미엄 전략을 가동해 차별성을 강조했으나, 이번에는 스마트워치 전략을 일부 차용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관련된 협업 로드맵이 구글 등과 이뤄지고 있으나 아직은 명확한 승부수가 나오지 않은 상태다. 위기에 직면한 스위스 시계 업계의 대변신에 시선이 집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