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토(焦土), 130×130×50㎝ steel, 1967

박석원은 아마도 국전(國展)사상 적어도 조각분야에서의 최연소 추천작가가 아닌가 싶다. 미술대학(홍대) 졸업 이듬해(1965년)에 국전에서 특선한 후 1972년에 나이 겨우 30살에 추천작가가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이전에도 두 차례에 걸친 국회의장상(1968년,1969년)을 수상했고 1974년에도 예술원회장상을 수상한다.

기왕이면 대통령상은 왜 아닌가할 수도 있겠으나 국전의 속성상 역설적으로 그 상을 수상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오히려 박석원의 일찍부터 나타난 강한 개성을 뒷받침해 주는 것이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박석원의 그와 같은 개성적인 작업, 더 나아가서는 애초부터 매우 전위적인 작업이 그 진가를 인정받게 되는 것은 1968년에 결성된 <한국아방가르드협회>에 참가하면서부터이다. 전후(戰後) 제2세대로서의 ‘4,19세대’가 주축이 된 이 그룹(약칭, AG그룹)의 창립 멤버의 한사람으로서 그는 이 그룹이 꾸민 세 차례(1970,1971,1972년)의 <AG전>을 통해 특히 한국현대조각의 보다 열려진 새로운 지평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 거의 때를 같이하여 그는 주요 국제전에도 참가하거니와 35세 미만의 작가대상으로 한 파리비엔날레(1907년)와 상파울로비엔날레(1969), 시드니비엔날레(1973년 1회) 등이 그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곧 박석원이 이미 30대 초에 우리 현대조각의 명실상부한 대표적인 작가의 한사람으로 평가되고 있었음을 말해주는 것과 다른바가 없는 것이다.

적어도 우리가 알고 있는 한의 박석원(A South Korea Sculptor PARK SUK WON,조각가 박석원,朴石元,PARK SUK WON,한국현대추상조각 선각자 박석원,박석원 작가)의 가장 초기의 작품은 1967년 작의 초토(焦土)이다.(바로 국전에서 국회의장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알루미늄 주조의 이 조각은 당시의 우리나라 현대미술의 전반적인 추세와 견주어 볼 때, 일종의 앵포르멜적 추상조각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 어떤 원형은 있기는 있으되, 그것이 오랜 풍상에 부식된 듯 남아 있는 덩어리는 그 원형의 비정형의 잔상뿐이다.

△글=이일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