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박민규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여전히 위세를 떨치고 있으나, 글로벌 전기차 시장은 모처럼 활짝 웃고 있다. 전기 자동차 및 배터리 판매량이 5개월 만에 반등하면서, 본격적인 호황 모멘텀이 들어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유럽의 '하드 캐리'에 시선이 쏠린다. 유럽 시장은 지난 7월 가파른 회복세를 보이며 글로벌 전기차 판매량에서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등 전체적인 성장세를 견인했다. 유럽은 과감한 친환경 정책을 자동차 산업에 집중하면서, 올해 상반기 중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으로 올라선 바 있다.

유럽의 영향력이 강화되면서 한국 배터리 업체의 수혜도 확대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현지 내 보조금 이슈와 관련해 우려도 제기된다.   

유럽이 이끈 글로벌 전기차 시장의 '2막'
▲ 세계 전기자동차 월 판매량. 출처=한화투자증권

1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글로벌 전기차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26.5% 늘어난 50만9000대를 기록했다.

특히 유럽의 반등세가 돋보인다. 미국과 중국에서 각각 6만9000대와 12만9000대의 판매량을 기록할 때, 유럽 시장은 이 국가들의 1.5~3배가 넘는 무려 20만2000대를 팔아 치웠다. 전년비 증가율도 87.8%로 압도적인 수준이다. 미국과 중국은 각각 9.1%와 31.5% 상승하는 데 그쳤다.

유럽 경우 특히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카(PHEV)와 하이브리드카(HEV)의 고성장이 두드러진다. BEV와 PHEV의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각각 99%와 335% 급증했다.

강력한 환경규제와 코로나19에 따른 차량 선호 패러다임의 변화가 미래차에 대한 현지의 열망에 불을 당겼고, 그 변화가 급격하게 시작되는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김광진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유럽 시장은 환경 규제 강화 영향과 코로나19 기저 효과 등이 복합적으로 반영되면서 올해 45만대 수준에서 내년 66만대 수준으로 약 47% 성장할 것"이라 전망하기도 했다.

국내 배터리 업체들의 주요 시장인 유럽 시장의 회복이 빨라지면서 이들의 수혜 또한 확대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아지는 모습이다.

김현수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유럽의 탄소 배출 규제 강화와 각국의 포스트 코로나 경제 지원책들이 전기차 수요를 견인한 효과가 실제 데이터로 확인되고 있다"면서 "국가별 세부 친환경 정책 시행 확대 및 배터리 시장 내 탑티어들의 과점화 추세가 지속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한국 배터리 업체들의 공급량은 지속적으로 확대될 것"이라 예측했다. 

한편 김준환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에 따르면 업체별 판매량 순위에서는 세계 최대 전기차 업체인 테슬라가 2만9000대로 1위를 수성했고, BMW와 상하이제너럴모터스우링이 각각 1만4000대와 1만2000대를 기록하며 2위와 3위에 오른 것으로 추정된다.

모델별로는 르노 조에가 유럽에서 높은 인기를 구가하면서 테슬라의 '모델 3' 다음으로 많이 팔린 것으로 나타났다.

K-배터리의 아성, 7월에도 굳건했다

같은 기간 세계 전기차용 배터리 출하량도 전년 동월 대비 20.9% 확대된 10.5기가와트시(GWh)를 기록하며 5개월 만에 플러스(+) 성장세로 돌아섰다. 전기차 시장이 확대되며 배터리 시장도 그에 비례해 만개하는 분위기다.

코로나19발 경기 위축 와중에도 LG화학(051910)·삼성SDI(006400)·SK이노베이션(096770) 등 국내 배터리 3사의 전기차용 배터리 사업은 불굴의 약진을 이어왔다. 전기차 시장의 성장 국면이 본격적으로 시작됨에 따라, 이 업체들도 고성장 국면에 진입할 것이라는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 2020년 1~7월 세계 76개국에서 집계된 전기 자동차용 배터리 사용량 및 시장 점유율. 출처=SNE리서치

에너지 시장 조사 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판매된 전기차(EV)·플러그인 하이브리드카(PHEV)·하이브리드카(HEV) 등의 배터리 사용량 순위에서 국내 배터리사들이 전월과 같은 순위를 수성, 여전한 'K-배터리'의 위상을 과시했다.

1위인 LG화학을 선두로, 삼성SDI와 SK이노베이션이 각각 4위와 6위를 굳건히 지키는 모습이다. 1년 전과 비교해 LG화학은 97.4% 급증한 13.4GWh를 기록하며 4위에서 1위로 껑충 도약했다. 삼성SDI는 52.6% 늘어난 3.4GWh로 한 계단 위로 올라섰으며, SK이노베이션은 86.5% 확대된 2.2GWh로 나타나 순위도 세 계단 뛰었다.

한국 배터리 업체들이 모두 두 자릿수의 성장율을 시현하며 시장 입지를 키우는 동안, 2위 CATL과 3위 파나소닉을 비롯한 중국·일본 업체들은 대부분 감소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중국 CALB는 예외적으로 급격한 성장세를 유지하며 간신히 체면을 차렸으나 한국 배터리 3사는 모두 시장 점유율이 대거 급등, 이들이 차지하는 시장 파이는 전년 동기 15.9%에서 35.6%로 2배를 훌쩍 넘어섰다. 

각 사의 배터리를 탑재한 차량들의 판매 호조가 기여했다는 설명이다. LG화학은 ▲테슬라 모델 3 ▲르노 조에 ▲포르쉐 타이칸 EV, 삼성SDI는 ▲아우디 E-트론 EV 71킬로와트시(KWh) ▲포드 쿠가 PHEV ▲BMW 330e, 그리고 SK이노베이션은 ▲현대 포터2 일렉트릭 ▲기아 니로 ▲기아 소울 부스터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유럽의 '보조금 브레이크', K-배터리에 문제 없나

유럽 전기차 시장의 기록적인 개선에 힘입어 국내 3사의 배터리 공급량 역시 확대되리라는 전망이 우세한 가운데, 유럽의 한국향 '견제'가 포착되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현재 유럽연합(EU)은 역내 저발전 지역의 개발과 고용 효과 등을 유도하기 위해 해당 지역에 공장 설립 시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EU가 폴란드와 헝가리 등에 생산 기지를 두고 있는 한국 배터리사들에 대한 지원금 지급에 제동을 걸고 있어, K-배터리 미래에 변수가 되는 분위기다.

실제로 EU는 지난 8월 폴란드 정부가 현지 LG화학 공장 증설과 관련해 9500만유로(약 1347억원)를 지원하기로 한 계획에 대해 심층 조사를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EU는 작년 10월 헝가리 정부가 현지 삼성SDI 공장 증설을 지원하기 위해 신청한 1억800만유로(약 1532억원)의 보조금에 대해서도 심층 조사를 개시, 11개월째 승인을 보류 중인 상황이다.

EU는 ▲정부 지원이 반드시 필요한지 ▲지원금 액수가 가능한 최소 수준인지 ▲EU 내 시장 경쟁을 왜곡시키지는 않는지 등 보조금 규정의 충족 여부를 꼼꼼히 따진다는 입장이다.

명분은 확실하나, 이 같은 행보는 다소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EU는 불과 1년 전인 2019년 1월에만 해도 폴란드 LG화학 공장에 대해 3600만유로(약 511억원) 지원을 승인했기 때문이다.

또한 국내 배터리사들은 현지 공장 설립 및 증설에만 1조원 넘게 들여, 지원금 신청 기준을 충족하는 상황이다. LG화학은 2017년 폴란드 공장에 10억유로(약 1조4181억원)를 투자했다. 삼성SDI는 헝가리 배터리 공장 건설에 착공한 2016년에는 4000억원을 투입했고, 2019년 2월에는 5600억원을 추가 투자하겠다고 발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 EU가 K-배터리를 견제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지금은 사정이 나아졌으나 중국 시장에서 현지 정부가 K-배터리 업계에 보조금을 철회하며 코너에 몰았던 일이 유럽에서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일단 국내 배터리 업계의 반응은 조심스럽다. LG화학·삼성SDI 관계자들 모두 EU와 폴란드·헝가리 당국 정부의 관계에 기반한 문제라고 일축했다. EU의 심층 조사는 현지 배터리 공장의 공급 관련 형평성과 절차상의 적법성 등을 심사하는 차원이며, 한국 기업들을 타깃으로 한다고 보기에는 이르다는 설명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EU가 (한국 배터리 업체들을 제한하는 등) 비합리적인 행동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결과를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속단은 이르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한국 배터리사들이 유럽 시장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는 불안감은 여전히 존재한다. EU의 보조금 관련 심층 조사에는 딱히 정해진 기간이 없기 때문이다.

한편, 국내외 기업들은 폴란드와 헝가리 등 동유럽 지역의 낮은 인건비와 지원금 혜택 등을 노리고 공장 설립 등 집중적인 투자를 벌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EU의 심층 조사를 계기로 이 같은 장점들이 제한될 시 막대한 자본을 투자한 만큼 경제 효과를 보기는 힘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그런 이유로 업계에서는 현지 회사와 합작회사를 통해 보조금 돌파구를 찾는 등, 중국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국내 배터리 업체들이 만개하기 시작한 유럽 전기차 및 배터리 시장에 입체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