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라인과 야후의 기업결합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일본 경쟁당국(한국의 공정위)의 반독점 심사가 4일 완료됐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글로벌 각국의 반독점 심사가 종료되며 라인과 야후의 질주는 계속될 전망이다.

현재 네이버는 라인의 지분 70%를 가지고 있으며 소프트뱅크는 야후재팬을 지배하는 Z홀딩스의 지분 40%를 보유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네이버는 라인의 전체 사업부분을 분할해 신설법인(LINE Split Preparation Corporation)에 내년 2월 28일까지 흡수합병시키며, Z홀딩스를 라인과 야후의 통합지주회사로 만드는 작업에 나서고 있다.

이를 위해 네이버와 소프트뱅크는 라인의 주식을 전부 취득하는 공개매수를 진행하고 있다. 일본 종속회사인 네이버 제이 허브(NAVER J. Hub)를 통해 미국과 일본에서 라인 주식 (6913만7199주) 가운데 50%에 대한 공개매수를 시작했으며 총 2조1000억원의 자금이 소요될 전망이다.

네이버는 “Z홀딩스는 메신저 플랫폼인 라인, 포털인 야후재팬, 커머스 플랫폼인 야후쇼핑과 조조, 금융서비스인 재팬넷뱅크 등을 산하에 두며, 일본 및 아시아 최대의 사용자 기반을 확보하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 출처=네이버

독과점 벽 넘었다

라인은 현재 일본에서 8000만명의 이용자를 확보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모바일 메신저부터 웹툰, 금융까지 스펙트럼이 상당히 넓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라인페이를 중심으로 현지 모바일 결제시장을 개척하고 있으며, 이미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있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야후는 현지에서 5000만명의 이용자를 확보하고 있다. 라인은 자체보유한 8000만명의 라인 생태계와 5000만명의 검색 포털 사용자를 묶어 결제 비즈니스의 비약적인 확장을 꾀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다.

일각에서는 두 기업의 결합이 생각보다 쉽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 나온 바 있다. 두 거대 플랫폼이 하나로 합쳐질 경우 시장 독과점 횡포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기 때문이다. 특히 네이버는 2008년과 2014년 공정위로부터 독점적 시장 지배력을 이유로 제재를 전적도 있다.

일본에서도 우려가 나왔다. 지난해 11월 지지통신 등 일본 언론들은 인과 야후의 기업결합에 있어 일본 공정위의 판단을 확신할 수 없다는 분석보도를 내놓기도 했다. 두 플랫폼이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을 가지기 때문에 시장 독과점 문제가 불거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일본 공정위는 시장 독과점에 따른 불공정 경쟁 이슈는 크지 않을 것으로 봤고, 오히려 기업결합이 두 플랫폼의 출혈경쟁을 막을 수 있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확인됐다. 실제로 간편결제의 경우 라인의 라인페이와 야후의 페이페이는 최근까지 시장 점유율 확보를 위해 과도한 마케팅을 단행하는 출혈경쟁을 벌여 논란을 키운 바 있다. 이런 가운데 일본 공정위는 두 플랫폼이 힘을 합치면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출혈이 사라질 것이라 본 셈이다.

KB증권 이동륜 연구원은 “경영통합은 2019년 12월 공시 이후 코로나19 등 대외변수로 인해 다소 지연됐으나 이번 공시를 통해 리스크가 해소됐다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이 연구원은 "양사 통합을 통해 일본 내 경쟁 강도가 급감하면서 시장 지배력을 공고히 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며 “회사 역량을 아시아를 비롯해 글로벌 시장 진출에 집중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해외지역 확장 가속화되는 가운데 일본을 비롯해 동남아 시장 내 자물쇠 효과(Lock-in effect)가 배가 될 전망"이라 말했다.

업계에서는 합작법인이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수퍼앱의 기틀을 다진 후 기술기반 서비스의 연속적인 출시에 나설 것을 기대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소프트뱅크 중심의 글로벌 전략적 판단과 자금도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라인의 오래된 꿈인 글로벌 기업 비전과, 이미 글로벌 무대에서 뛰는 소프트뱅크의 최근 어려움이 각자의 '니즈'를 채워주는 쪽으로 방향을 잡을 전망이다.

초반 성과는 더 거대한 외연 확장에 달렸다는 분석이 나온다. 결국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태동하는 현지의 ICT 인프라를 얼마나 강력한 현지 최적화 전략으로 묶어내느냐에 시선이 집중된다. 지금까지 보여준 한국계 일본 플레이어들의 합종연횡과 더불어, 이를 바탕으로 파생될 새로운 시장의 전투 향배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 출처=네이버

글로벌 연대 강해진다

현재 글로벌 ICT 업계는 미국과 중국이 주도하고 있다. 인공지능부터 플랫폼 기반 ICT 시장 전역을 사실상 두 나라가 좌우하는 셈이다.

네이버는 국내에서 독보적인 ICT 시장 거인이지만, 글로벌 시장에서는 초거인들이 난립하는 가운데 장기적인 관점에서 네이버의 생존을 전제할 수 없다는 절박함을 가진 상태다. 그런 이유로 네이버는 이해진 창업자가 GIO(글로벌투자책임자)를 중심으로 미국과 중국이 주도하는 글로벌 ICT 업계에서 제3의 연대를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프랑스를 중심으로 하는 유럽과의 연대, 나아가 AI 벨트를 공격적으로 추구하는 이유다. 지난해 개발자 컨퍼런스 DEVIEW 2019를 통해 처음 공개된 AI벨트 플랜은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인공지능 기술력을 바탕으로 국경을 초월한 글로벌 기술 네트워크를 구축해 미중 기술 패권에 맞설 또 다른 글로벌 흐름을 만들어 나가겠다는 계획이다.

▲ 이해진 GIO. 출처=네이버

AI 벨트는 연구자들과 스타트업, 기업의 활발한 교류를 전제하며 인공지능과 관련된 다양한 학술적 연구도 병행된다. 석상옥 네이버랩스 대표는 이를 두고 “국경을 초월한 기술 교류”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베트남도 AI 벨트로 편입됐다. 베트남에서 최고의 권위를 갖춘 하노이과학기술대학과 협력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1956년 설립된 하노이과학기술대학은 베트남 최고 명문 공과대학이다. 네이버가 한국과 일본, 프랑스, 베트남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AI 연구 벨트’ 구축을 선언한 상태에서 이번 산학협력으로 AI 벨트의 스펙트럼은 더욱 넓어질 전망이다. 석상옥 네이버랩스 대표는 “글로벌 AI 연구 벨트가 미국과 중국의 기술 패권에 맞설 수 있도록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인공지능은 두 기업 결합의 키워드기도 하다. 기업 결합 합의문에 ‘인공지능 테크 컴퍼니’가 ‘일본 사회와 산업을 발전시킬 것’이라는 문구까지 명시된 가운데, 두 기업의 다양한 시너지 창출 여부도 눈길을 끈다.

▲ 출처=네이버

쉽지는 않을 것

물론 쉬운 길은 아니다. 미국과 중국의 강력한 존재감에 이어 아시아를 무대로 하는 초거인급의 슈퍼앱들도 이미 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플레이어는 그랩이다.

그랩은 동남아시아를 대표하는 모빌리티 플랫폼으로 시작해 1억8700만대의 모바일 기기와 연결되어 있다. 온디맨드(on-demand) 운송 서비스를 중심으로 동남아 8개국 351개 도시 전역에서 음식 배달, 택배 서비스, 디지털 결제, 금융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핀테크 플랫폼으로 급성장하고 있다. 그랩 파이낸셜은 핀테크 플랫폼으로 활동하며 결제, 대출, 보험, 소매 자산관리 등의 금융 서비스에서 그 영역을 넓히고 있으며 5일 자사의 첫 소액 투자 솔루션인 ‘오토인베스트(AutoInvest)’를 포함한 다양한 금융 상품과 서비스를 출시한다고 밝혔다.

루벤 라이(Reuben Lai) 그랩 파이낸셜 그룹 대표는 “동남아의 선도적인 핀테크 플랫폼으로서 그랩 파이낸셜 그룹은 이번 ‘스라이브 위드 그랩’ 전략을 통해 지금처럼 불확실성이 큰 환경에서도 부를 축적하고, 재정을 관리하고, 소중한 것을 보호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자 한다. 소액거래를 기반으로 한 혁신적인 금융 서비스와 편리한 재정 관리 툴, 세계적인 금융기관의 상품을 모든 동남아인에게 선보이고, 이를 통해 동남아 금융 서비스 시장의 엄청난 잠재력을 이끌어내고자 한다.”고 밝혔다.

라인과 야후의 결합이 라인페이와 페이페이의 결합으로 이어져 간편결제 시장의 경쟁력 응축을 시도한다는 것을 고려하면, 모빌리티에서 시작한 그랩 ‘파이낸셜’의 존재감이 커지는 장면은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그랩은 라인과 야후의 최종 목표이자, 미국과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거대 기업들이 아닌 ‘아시아’라는 공통분모를 가진 경쟁자라는 점에서 반드시 공략해야 할 대상으로 보인다.

한편 네이버는 불합리한 국내 규제 및 딴지걸기도 이겨내야 한다. 국내에서 강력한 시장 장악력을 가졌다는 이유로 각 규제기관이 네이버의 앞 길을 막는 장면이 심심치않게 벌어지기 때문이다.

네이버는 ICT 산업의 특성상 국경이 없는 전투를 글로벌 시장에서 벌여야 하는 마당에, 국내 규제들이 심해지는 장면을 답답하게 여기고 있다. 이해진 GIO가 네이버를 대몽항쟁의 상징이던 ‘삼별초’로 비유하며 힘을 실어줄 것을 주장하고 있으나 아직 별다른 활로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이 심해질수록 네이버는 국내보다 해외 진출을 더욱 적극적으로 타진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법인 자체가 한국에 있는 한 기본적인 과잉규제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아시아 슈퍼앱의 꿈은 더욱 멀어질 전망이다.

네이버가 라인을 떼어내어 글로벌 시장에 도전하는 장면이 그 자체로 의미심장한 이유다.

▲ 출처=그랩

그리고, 블록체인

라인과 야후의 결합이 빨라지는 가운데, 라인은 4일 일본에서 운영하는 암호화폐 거래소 '비트맥스'에 링크를 상장한다고 밝혔다. 라인은 지난 2018년 링크를 공개하는 한편 싱가포르 소재 자회사 라인테크플러스(LTP)가 운영하는 암호화폐 거래소 '비트박스'에 상장시킨 바 있다. 이어 라인은 비트박스의 영업권을 미국 법인인 LVC USA로 양도하며 광폭행보를 보여줬다.

라인과 야후의 결합으로 블록체인 산업 전반의 집중력이 높아질 것이라는 말이 나오는 가운데 등장한 깜짝소식이다.

네이버는 이미 일본에서 다수의 디앱을 확보, 블록체인 전략을 추진하는 중이다. 그 연장선에서 핀테크를 중심으로 삼아 야후와 만나고, 그 방향성을 캐시리스로 잡은 지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간편결제 및 이커머스의 강점은 물론 블록체인을 통한 금융업 전반의 다양한 업그레이드를 시사한다는 뜻이다. 그 연장선에서 라인과 야후 결합이 빨라지며 링크의 스펙트럼이 넓어지는 장면에 시선이 집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