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후보물질 발굴 기간ㆍ비용 감소 가능

업계 “협업 중이지만 시간 지나봐야 알 것”

▲ 인공지능(AI) 신약개발 플랫폼을 활용하는 제약바이오 기업이 주목된다. SK바이오팜 연구원이 연구를 하고 있다. 출처=SK바이오팜

[이코노믹리뷰=황진중 기자] 국내외 인공지능(AI) 신약개발이 점점 고도화되고 있다. 최근 미국에서 인공지능 신약개발 기업 슈뢰딩거가 제2의 테슬라로 불리며 글로벌 투자자들에게 주목을 받고 있다. 또 한국 제약바이오 기업들도 AI 신약개발 기업과 새로운 후보물질을 발굴하기 위해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AI를 활용할 시 신약후보물질 발굴까지 소요되는 비용과 기간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업계 일각에서는 AI 신약개발의 성과를 확인하기까지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슈뢰딩거, 바이오 업계 테슬라 등극

미국의 AI 신약개발 기업 슈뢰딩거는 올해 2월 나스닥 시장에 상장했다. 이 기업은 상장 후 지난달 30일을 기준으로 주가수익률 164.9%를 기록했다.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이 투자하면서 슈뢰딩거는 더욱 관심을 받았다.

▲ 슈뢰딩거 주가 추이. 출처=구글

슈뢰딩거는 소프트웨어와 신약개발 부문에서 사업을 지속하고 있다. 소프트웨어 부문은 신약개발과 원료개발 등에 활용되는 플랫폼을 제공한다. 이 기업은 자체 신약 파이프라인을 보유하고 있으면서 제약사 및 바이오테크와 협력을 통해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삼성증권 이영진 애널리스트는 “슈뢰딩거 소프트웨어 부문은 AI와 물리학을 기반으로 한 머신러닝을 통해 신약개발 및 원료개발 분야에서 유망 분자 발굴 시간과 비용을 감소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설명했다.

신약개발은 대개 ▲기존 논문 검토 ▲유효물질 추정 ▲선도물질 확인 ▲임상 진행 용 신약후보물질 선정 ▲전임상 ▲임상 순으로 진행된다. 화학합성의약품의 경우 분자 설계에 따라 5000개 분자를 합성, 실험하는 기간만 4~6년이 필요하다. 슈뢰딩거의 플랫폼을 활용하면 수십억 개 분자 대상 분석을 먼저 시행해 1000개 분자를 선정할 수 있다. 합성 및 실험 기간은 절반 수준인 2~3년으로 줄어든다.

업계에 따르면 신약개발 단계별 비용에서 후보물질 발굴까지 필요한 투자금은 약 19%를 차지한다. 글로벌 제약바이오 부문 연구개발(R&D) 지출은 1800억달러 규모다. 관련 지출은 342억달러로 볼 수 있다. 이영진 애널리스트는 “슈뢰딩거의 지난해 소프트웨어 부문 매출액은 6600만달러로 1%가 되지 않는 수준이다”면서 “침투 확대 여력이 충분하다”고 분석했다.

K바이오, AI 신약개발 박차

한국 제약바이오 기업도 슈뢰딩거와 같은 AI 신약개발 기술을 개발하거나 관련 기업과 협업하면서 AI 신약개발에 투자하고 있다. SK바이오팜은 지난 2018년 ‘AI 약물설계 플랫폼’을 개발했다. 이는 국내 최초로 AI 자체 플랫폼을 개발한 사례로 꼽힌다. SK바이오팜은 지난 20년간 축적한 중추신경계(CNS) 연구 데이터를 알고리즘에 적용했다. 이는 SK C&C와의 협업을 통해 개발됐다.

SK바이오팜의 AI 약물설계 플랫폼 기술은 화합물의 흡수, 분포, 대사, 배설, 독성(ADMET) 프로파일 및 약물기전을 확인할 수 있는 ‘약물특성 예측’ 모델과 해당 예측 결과를 활용해 새로운 화합물을 설계 및 제안하는 ‘약물설계’ 모델로 구성된다.

SK바이오팜 조정우 대표는 앞서 “CNS 특화 화합물 라이브러리 3만개를 보유하고 있다”면서 “AI 플랫폼은 그동안 쌓아온 데이터에 기반을 두고 활용할 것이다. 벤처와 협업을 통해 R&D 플랫폼을 강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SK바이오팜은 AI 신약개발 기업 투자아(twoXAR)와도 협업 중이다.

▲ 신약개발 절차 및 AI 신약개발 활용 전망. 출처=과학기술정보통신부

보령제약은 파미노젠이 보유한 딥러닝 기반 플랫폼을 활용해 타겟 단백질에 대한 새로운 화학구조 발굴 및 약물 최적화 작업을 거쳐 다양한 신약 후보물질을 도출할 방침이다. 이 기업은 파미노젠이 보유한 약 200억건의 화합물 구조와 약 16만건의 약물 표적 단백질에 대한 빅데이터를 활용해 신약후보물질의 물성과 독성 예측을 통해 약물 최적화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

일동제약도 AI 신약개발 기업 심플렉스와 협업했다. 이 기업은 협업을 통해 면역항암제 신약선도물질 15개를 발굴해 외국 시험기관에 효력 평가를 의뢰했다. 이외에도 유한양행은 글로벌 기업 바이엘과 협업한 캐나다계 바이오테크 사이클리카와 공동 연구 계약을 맺고 파이프라인 2개에 AI 신약개발을 적용할 예정이다. 한미약품은 AI 신약개발 기업 스탠다임과 공동연구 계약을 체결했다.

제약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신약개발은 좋은 신약후보물질을 발굴하는 것부터 어렵다. 이를 발굴해내도 임상 등을 통해 약으로 만들어 규제당국의 허가를 받기까지 막대한 기간과 비용이 필요하다”면서 “AI를 통해 신약후보물질 발굴 절차에서의 비용만 줄이더라도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 중”이라고 말했다.

AI 신약개발 기대감 크지만 더 지켜봐야

제약바이오 업계 일각에서는 AI 신약개발 사업은 이제 막 성과를 내기 시작한 상황이므로 성공 여부 등에 대해서는 더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AI 신약개발을 통해 도출된 신약후보물질이 임상에 진입한 사례가 아직 적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AI 신약개발 기업 엑센시아는 일본 제약사 스미토모와 공동으로 강박장애 치료용 후보물질 ‘DSP-1811’을 1년만에 도출해 임상 1상 진입에 성공했다. 다만 DSP-1811은 이전에 없던 새로운 기전 등을 나타내는 혁신신약(First in class)이 이 아니다.

한 제약사는 AI 신약개발 기업과 협업을 통해 후보물질을 발굴했지만 이후 개발을 진척하지 못하고 있다. 해당 제약사 관계자는 “AI 신약개발 기업과 협업해 후보물질을 발굴했지만 이후 개발은 잠시 멈췄다”면서 “기대보다 좋은 물질이 나온 것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 R&D 투자비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하므로 함부로 개발하는 것은 어렵다. 일단 경험해본 것”이라고 말했다.

사업 구조에 대한 고민도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제약바이오 기업에서는 AI 신약개발 기업에도 책임이 있어야 더 효율적인 협력이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제약바이오 업계 관계자는 “제약사가 단순히 금액을 주고 AI 신약개발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는다. 협력의 관계로 도출된 후보물질 등에 대해 5:5, 8:2 등 일정 비율에 대한 책임을 나눈다”면서 “연구 진행 시 단계에 따라 관련 금액을 지급하는 마일스톤 방식 등으로 계약하는 등 다양한 사업 구조가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