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메디포스트가 제대혈은행 및 줄기세포 치료제를 통해 수익구조를 꾸준히 다각화하고 있다. 출처=메디포스트

[이코노믹리뷰=최지웅 기자] <편집자주> 바이오산업이 우리나라의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하지만 바이오산업은 가능성을 먹고 성장하는 고위험 고수익 산업이다. 우리나라 경제 성장을 견인했던 제조업과 달리 연구개발(R&D) 단계가 길고 설령 상품화에 성공해도 100% 흥행을 장담할 수 없다. 신중하게 투자하지 않으면 낭패를 보기 십상이다. 따라서 이코노믹리뷰는 투자자들이 바이오산업에 대한 막연한 환상과 기대에서 벗어나 올바른 투자를 할 수 있도록 국내 바이오기업들을 직접 탐방하고 자체 검증에 나설 계획이다.

25만명 제대혈 냉동보관, 난치병 걱정 끝

1996년 1월. 백혈병에 걸린 스물두살 미 공군사관생도가 19년 만에 고국 땅을 밟았다. 그의 이름은 성덕 바우만. 세 살 때 미국으로 입양됐다. 사관학교 졸업을 앞두고 만성 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은 그는 유일한 희망인 골수 기증자를 찾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하늘이 도왔는지 그는 자신의 유전자와 일치하는 기증자를 찾았고 무사히 골수 이식 수술을 받아 새 생명을 얻었다.

20년이 지난 현재 백혈병, 혈액암과 같은 난치성 혈액질환에 대비하기 위해 '제대혈'을 보관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제대혈은 산모가 신생아를 출산할 때 분리된 탯줄과 태반에 존재하는 혈액이다. 몸 안에 혈액을 만드는 조혈모세포를 비롯해 근육, 뼈, 신경 등을 만드는 간엽줄기세포가 풍부하게 포함돼 있다. 평생 보관하는데 400만원 이상의 비용이 들지만 혈액암, 뇌성마비, 발달장애 등 다양한 난치성 질환 치료에 사용될 수 있어 젊은 엄마들 사이에서 인기다.

메디포스트 황동진 사장은 "제대혈 보관은 일종의 의학적 보험"이라고 정의하면서 "제대혈을 보관해둔다면 성덕 바우만처럼 힘들게 남의 골수를 찾아다닐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메디포스트 본사 지하 1층에는 고객들의 제대혈을 보관하는 100여 개의 저온 질소탱크가 설치돼 있다. 출처=메디포스트

국내에서 제대혈 보관 시장은 메디포스트가 단연 독보적이다. 이 회사는 제대혈 추출부터 가공, 냉동보관, 이식에 이르기까지 최적의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2020년 3월 기준 국내 최대 규모인 25만 명 이상의 제대혈을 보관하며, 약 43%의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제대혈 이식 건수도 600건에 달한다.

메디포스트가 사용하는 제대혈 유래 줄기세포는 세포 채취에서 환자의 마취가 필요 없으며, 세포 배양에 실패해도 환자로부터 다시 세포를 채취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없다. 특히 조혈모세포와 간엽줄기세포를 함유하기 때문에 활용범위가 넓고 신생아의 탯줄 혈액에서 분리되었기에 면역원성이 낮다는 장점을 가진다.

메디포스트는 이 같은 전문성과 관리 시스템을 바탕으로 '셀트리' 제대혈은행을 출범했다. 제대혈은행은 고객의 제대혈을 채취해 초저온(-196도)에서 냉동 보관한 뒤 필요할 때 해동시켜 제공하는 사업이다. 이 회사는 본사 지하 1층에 100여 개의 저온 질소탱크를 설치해 고객들의 제대혈을 보관하고 있다. 질소탱크 하나당 25cc 분량의 제대혈을 보관하며, 협력 회사 직원들이 질소 및 전력 공급 상태 등을 수시로 점검한다.

▲ 셀트리 제대혈은행 총 제대혈 보관건수. 출처=메디포스트

최근 우리나라 출산율 감소로 제대혈 확보에 어려움이 예상되지만 메디포스트는 기존 고객과 연장 계약을 맺거나 프리미엄 보관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아이 성장주기에 따른 보관기간별 서비스 운영 전략으로 매년 보관건수를 늘리고 있다.

TechNavio에 따르면 세계 제대혈은행 시장은 2017년 35.1억 달러에서 연평균 14.0% 성장해 2022년 67.5억 달러 수준으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에서도 제대혈 활용도 증가와 적용 질환 종류 확대에 따라 제대혈 보관에 대한 인식과 수요가 개선되고 있다. 또한 제대혈을 이용한 질병치료 연구가 국내외에서 활발히 진행되면서 제대혈 사용 영역은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창립 20주년 맞은 메디포스트, 매출 견조·영업이익 글쎄

메디포스트는 올해로 창립 20주년을 맞았다. 2000년 6월 의사 출신인 양윤선 대표가 제대혈은행과 줄기세포 분야에서 상업적 연구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회사를 창업했다. 지난 2005년에는 지속적인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코스닥 시장에 상장했다.

메디포스트의 주요 사업은 ▲제대혈은행 ▲세포치료제 개발 ▲건강기능식품 판매 등이다.
2006년부터 황동진 사장이 경영총괄로 회사에 합류했다. 황 사장이 회사의 살림살이를 책임지고, 양 대표가 세포치료제 연구개발을 진두지휘하는 투 트랙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메디포스트는 각 사업부의 고른 성장으로 3년 연속 매출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 회사의 지난해 매출액은 458억원으로 전년 대비 3.2% 증가했다.

▲ 메디포스트 주요 재무지표. 출처: 메디포스트 사업보고서

하지만 부채비율이 급격히 높아지고 영업이익이 매우 낮아진 점은 우려를 자아낸다. 메디포스트의 지난해 영업손실은 76억원, 순손실은 134억원으로 적자 폭이 늘었다. 경상개발비 증가로 영업손실이 확대됐고, 관계기업의 지분법 손실과 금융비용 및 이연법인세 부채 증가 등으로 순손실 규모는 커졌다.

메디포스트 관계자는 “업계의 크고 작은 사고로 바이오의약품에 대한 신뢰가 하락하면서 지난해 2,3분기 동안 줄기세포치료제 매출 증가 폭이 크지 않았다"며 "일회성 비용 반영과 최근 빠르게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매출 추이를 고려하면 올해는 실적이 대폭 호전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품목별 매출을 보면 제대혈은행 사업은 출산율 저하에도 종신형 프리미엄 서비스를 통해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또 줄기세포 치료제 카티스템은 처방병원 수가 지속적으로 늘어나면서 매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신약 개발은 양윤선 대표, 경영은 황동진 사장

양윤선 대표는 서울대학교 의대 졸업, 삼성서울병원 의사 출신이란 화려한 이력을 보유한 바이오벤처 창업 1세대다. 지난 20년간 메디포스트를 이끌며 국내 제대혈은행과 줄기세포 치료제 시장을 개척했다.

양 대표는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창사 초기부터 지금까지 많은 역경과 줄기세포 분야의 부침 속에서도 정도만을 걸어온 메디포스트는 2012년 동종 제대혈유래 중간엽줄기세포치료제를 개발하는 등 탁월한 성과와 기술력으로 현재 세계 바이오 신약 분야를 주도하고 있다"며 "줄기세포를 통해 현대 의료기술이 극복하지 못한 난치병 치료의 한계를 뛰어넘고, 우리나라가 세계 생명공학의 중심에 서는 그날까지 메디포스트는 생명공학 분야의 글로벌 리더로서 혼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 창업자인 양윤선 대표(왼쪽)와 회사 경영을 총괄하는 황동진 사장. 출처=메디포스트, 이코노믹리뷰

창업자인 양 대표와 함께 황동진 사장이 회사의 주요 현안을 맡고 있다. 황 사장은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은행과 금융감독원에서 근무했다. 2000년 마크로젠 대표이사를 맡으면서 바이오산업과 처음 인연을 맺었고 2006년 메디포스트에 합류해 경영 일체를 책임지고 있다. 양 대표가 신약 연구 및 기술 개발에서 더 나은 성과를 낼 수 있도록 황 사장이 전후방에서 지원하고 있는 모습이다.

오원일, 이장원 부사장도 든든한 조력자로 활동 중이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오 부사장은 연구개발본부장을 맡고 있으며, 이장원 부사장은 영업 분야에서 10년 이상 뛰어온 경험을 바탕으로 카티스템 사업을 총괄하고 있다.

메디포스트는 대부분 경영진이 의사 또는 생명과학 관련 전공자 출신이거나 제약바이오  기업에서 근무한 경험을 가지고 있어 사업과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 카티스템은 퇴행성 또는 반복적 외상으로 인한 골관절염 환자의 무릎 연골결손 치료제다. 출처=메디포스트

진화하는 줄기세포 치료제

메디포스트는 제대혈은행 사업뿐만 아니라 다양한 줄기세포 치료제 개발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우선 무릎골관절염 치료제 카티스템이 회사의 안정적인 수익원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카티스템은 2012년 1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품목허가를 획득해 국내에 시판되고 있는 동종 제대혈 유래 간엽 줄기세포 치료제다. 2014년 거스 히딩크 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 서울의 한 정형외과에서 카티스템 수술을 받으면서 유명해졌다. 기존의 관절염 치료제가 통증 완화 및 일시적 기능 개선에 치중했다면 카티스템은 손상된 연골세포를 자연 상태의 건강한 연골로 재생시키는 근본적인 치료제에 가깝다. 현재 전국 520여개 병의원에서 카티스템을 처방하고 있으며 연간 1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메디포스트는 현재 국내를 넘어 일본과 미국 등 해외 시장 진출에 공을 들이고 있다. 앞서 이 회사는 지난해 12월 일본에서 경골 근위부 절골술(HTO) 시술을 병행하는 카티스템의 임상 2상을 승인받았다. 향후 HTO 시술이 필요 없는 무릎골관절염 환자에 대한 임상 3상도 진행할 계획이다. 미국에서도 카티스템의 임상 1/2a상을 완료하고 차상위 임상시험 단계를 준비하고 있다.

▲ 메디포스트 주요 파이프라인 현황. 출처=키움증권

미숙아에게 발생하는 기관지폐이형성증 치료제 '뉴모스템'도 임상시험을 통해 안전성과 유효성을 입증했다. 이미 미국에서 임상 1/2상을 완료했으며, 미 FDA로부터 패스트트랙 지정을 받아 상용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재 국내에서 초극소 미숙아를 대상으로 임상 2상을 진행 중이다.

알츠하이머 치료제 뉴로스템도 개발 순항 중이다. 지난해 마지막 환자의 투여를 마치고 올해 1월 식약처에 임상 1/2a상을 종료를 알렸다. 2월에는 미국 FDA로부터 임상 1/2a상 승인을 획득했다.

메디포스트는 차세대 줄기세포 치료제 '스멉셀' 개발에도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스멉셀은 '크기가 작은 고효능 줄기세포를 선별해 대량 생산을 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투약용량에 필요한 세포 수를 줄일 수 있어 주사형 제재 및 난치병 치료제 개발에 유용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메디포스트는 스멉셀을 기반으로 주사형 골관절염 치료제인 'SMUP-IA-01'을 개발 중이다.

성장 발목 잡는 리스크는?

메디포스트는 줄기세포 관련주로 분류된 탓에 원치 않은 논란에 종종 휘말렸다. 2005년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배아복제 논문 조작 등 줄기세포와 관련해 문제가 터질 때마다 메디포스트는 다소 억울한 주가 하락을 경험해야만 했다. 메디포스트의 핵심 사업이 제대혈에서 추출한 성체줄기세포를 이용한 치료제 개발에 역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체 줄기세포는 황우석 사태로 유명한 배아줄기세포와 전혀 무관하다. 생명의 시초가 되는 배아로부터 유래되는 배아줄기세포와 달리 성체줄기세포는 주로 지방, 태반, 골수, 제대혈 등에서 채취가 가능해 윤리적인 문제에서 자유로운 편이다. 메디포스트가 잘못된 정보로 피해를 보지 않도록 줄기세포에 대한 인식 개선에 더욱 힘써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멈출 줄 모르는 적자 행진도 골칫거리다. 메디포스트는 지난 2015년 별도재무제표 기준으로 영업이익 12억원, 당기순이익 35억원으로 흑자 전환한 뒤 4년 연속으로 적자가 지속됐다.

▲ 메디포스트 K-IFRS 별도기준 연간 실적 추이. (단위 : 십억원). 출처=DART

특히 건강기능식품, 화장품 등 주력 사업과 거리가 먼 분야에서 적지 않은 돈을 까먹고 있다는 분석이다. 메디포스트는 지난해 거듭되는 실적 악화에 약 4년간 공을 들였던 화장품 사업을 정리했다. 화장품 사업과 관련된 일체의 권한을 하나투어와 공동으로 설립한 합작투자법인 셀리노에 양도하고 손실 줄이기에 돌입했다.

건기식 사업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메디포스트는 지난 15년간 모비타라는 건기식 브랜드를 구축해 다양한 제품을 병원, 약국, 온라인 등에 판매해왔다. 하지만 최근 건기식 시장에 진출하는 제약사가 늘어나면서 경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이 회사의 건기식 사업은 2017년 59억원의 매출을 기록한 뒤 2018년 43억원, 2019년 55억원으로 정체 흐름을 보이고 있다.

가장 큰 잠재적 위험은 경영진의 지분 매각이다. 약 9년 전 메디포스트 경영진은 주가가 고점일 때 보유 지분을 매각해 차익을 실현한 바 있다. 창업자인 양윤선 대표가 150여억원에 달하는 주식을 팔아 가장 많은 수익을 거뒀다. 이를 끝으로 양 대표의 주식 매도는 더 이상 없었지만 이미 상당한 거금을 손에 쥔 상태다. 게다가 양 대표가 평균 17만6182원에 매도했던 주식 가치는 현재 2만5150원으로 크게 떨어졌다. 당분간 경영진의 추가 지분 매각 가능성은 매우 낮아보인다. 그러나 메디포스트는 다수의 지적재산권을 바탕으로 해외진출에 시동을 걸고 있는 만큼 주가 상승 요인이 다분하다는 점에서 경계를 늦출 수 없다는 반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