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2015년 개봉한 류승완 감독의 영화 <베테랑>은 거악에 맞서는 형사의 좌충우돌 활약을 극적으로 담아내며 1300만명이 넘는 관객을 모아 큰 성공을 거둡니다.

 

"어이가 없네"라는 유행어까지 탄생시키며 극장가를 휩쓸었던 이 영화의 백미 중 하나는 실감나는 사기극에 있습니다. 특히 영화 초반부 중고차 딜러가 차량을 판매한 후 위치추적을 통해 다시 차량을 탈취, 도색을 마친 후 러시아로 빼돌리는 장면은 많은 관객들을 놀라게 만들었습니다.

후진의 연속, 중고차 시장
영화 <베테랑>에서 묘사되는 중고차 시장은 말 그대로 범죄의 소굴입니다만, 당연히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비록 서울 도봉경찰서가 지난 2017년 중고차를 판매한 후 위치추적을 통해 다시 차량을 탈취한 일당을 체포하는 영화같은 일이 벌이지기는 했으나, 대부분의 종사자들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정상적인 영업을 합니다.

다만 중고차 시장이 여전히 후진기어만 넣고 퇴보하는 것은 일정정도 사실입니다.

무엇보다 고객의 불만도가 큽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운영하는 ‘1372 소비자상담센터’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18년 1월 1일부터 이달 10일까지 중고차 중개∙매매 관련 불만 상담건수는 총 2만783건이 접수됐을 정도입니다. 한국경제연구원의 중고차시장에 대한 소비자인식 조사에 따르면 무려 76.4%의 응답자가 국내 중고차 시장을 두고 불투명·혼탁·낙후됐다고 인식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성능점검 기록 조작 등 성능 및 상태 점검 관련 피해가 빈번히 벌어지고 있으며 허위매물 사태도 심각합니다. 지난 9일 인천 서부경찰서에 따르면 인터넷에 허위 중고차 매물을 올려 고객을 유인한 뒤 막상 현장을 찾은 소비자에게 다른 차량을 시세보다 비싸게 팔아 총 6억원을 가로챈 일당을 검거하기도 했습니다.

상황이 이 정도되면 '왜 후진적일까'라는 고민을 할 차례입니다.

먼저 시장의 특성이 중요합니다. 국내 중고차 시장은 연간 기준 약 22조원 규모로 추정될 정도로 거대하면서도 지난 2013년부터 지난해 초까지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되어 사실상 보호되어 왔습니다. 이런 가운데 중소 업체들의 난립에 따른 시장 혼탁 현상이 벌어지며 전반적인 분위기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습니다. 전형적인 레몬마켓(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에 저품질의 재화,서비스만이 거래되는 시장 상황을 빗댄 표현)의 특성을 가지고 있어 기존 플레이어들이 굳이 업계의 발전을 위해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없는 것도 지금의 사태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 출처=픽사베이

대기업 진출, 과연?
국내 중고차 판매대수는 지난해 기준 224만대에 이르며, 이러한 수치는 178만대가 판매된 신차시장의 약 1.3배입니다. 문제는 시장도 빠르게 커지는 것과 비례해 소비자의 불만도도 비례하면서도 레몬마켓 특유의 '업계 요지부동'이 이어지는 장면입니다.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분류된지 6년이나 됐으나 플레이어들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2018년 미래한국당 원유철 전 의원은 부정한 중고차 성능점검자의처벌을 명확히 하는 ‘자동차 관리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으나 20대 국회 종료와 동시에 법안은 폐기됐습니다. 시장의 발전을 꾀할 수 있는 마지막 안전장치가 사라지는 순간입니다.

그러나 최근, 새로운 논의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중소기업 적합업종 지정이 지난해 초 일몰된 가운데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 제도가 도입됐고 현재 중소벤처기업부가 중고차판매업의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 여부를 심의하는 중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국내 완성차 제조사들이 회원사로 있는 한국자동차산업협회가 중고차 시장 진출을 타진하고 있으며, 이에 전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 등이 즉각 반발하는 장면이 연출되고 있습니다.

어떻게 봐야 할까요. 중고차 시장이 낙후된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지하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대기업이 시장에 뛰어들면 일정정도 규모의 경제가 가동되며 소비자의 만족도는 올라갈 수 있을 전망입니다. 그러나 중소 자영업자들이 큰 피해를 입을 수 밖에 없고, 이는 상생 프레임으로 번지며 치열한 정치적 논란으로 번질 수 있습니다.

▲ 출처=픽사베이

세 가지만 생각하자
낙후된 중고차 시장, 그리고 대기업의 시장 진출 가능성이 타진되는 가운데 업계에서는 세 가지 키워드에만 집중하자는 말이 나옵니다.

먼저 소비자. 어떤 판단을 하든 무엇이 소비자를 위한 길인지에 집중해야 합니다. 과연 이 후진적인 시장을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지. 피해를 입는 소비자를 위해 우리는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지. 곰곰히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상생. 합리적인 경제이론을 주장하면서도 항상 그 이면에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래되고 쇠락한 산업 종사자들을 막무가내로 벼랑에 밀어넣는 것은 지양되어야 합니다. 벼랑에 밀어 넣더라도, 플랜B는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는 인정입니다. 중고차 시장은 후진기어를 넣고 있으며, 그 책임은 당연히 기존 사업자들에게 있다는 것을 모든 플레이어들이 '인정'해야 합니다.

여담이지만 지난 2017년 모바일 플랫폼을 통해 중고차 거래를 지원하는 헤이딜러가 등장하자, 기존 중고차 관계자들은 이성적인 토론이 아니라 막무가내 위력시위로만 일관한 바 있습니다. 실제로 지난 2016년 1월 국회에서 관련 토론회가 열린 가운데 현장에 난입한 중고차 딜러들은 험악한 분위기로 일관하며 토론의 장에서 어깃장을 놓았습니다. 취재하던 기자 입장에서 정말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이런 일은 벌어지지 말아야 합니다. 겸허한 인정을 바탕으로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이성적인 논의를 해야 합니다.

▲ 사진=최진홍 기자

최근 모빌리티 사업이 부상하고 있습니다. 비록 카풀이 사라지고 쏘카 타다 베이직이 멈추는 한편 택시 중심 로드맵만 판치는 기묘한 시장으로 변질됐지만, 모빌리티를 향한 각 기업의 꿈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입니다. 이런 가운데 중고차 시장도 부상하는 모빌리티 시장의 큰 역할을 담당할 수 있습니다.

지금의 상황이 나쁘다고, 대기업들이 들어와 100% 성공을 거둘 수 있다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오래된 레몬마켓의 판이 흔들리고 있고 그 연장선에서 '이제는 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고무적입니다. 논의는 이제 시작입니다. 각 플레이어들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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