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9일 이천 SK하이닉스를 방문해 소부장(소재·부품·장비산업) 2.0 전략을 발표했다. 한일 경제전쟁이 여전히 맹위를 떨치는 가운데 소부장 경쟁력 강화를 바탕으로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한다는 전략이다.

소부장을 위한 길
일본은 지난해 G20 정상회의가 끝난 후 그 해 7월부터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하는 한편 포토레지스트와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불화수소 등 3대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핵심 소재 수출에 제동을 걸었다.

지루한 공방전이 이어진 가운데 정부는 지난 5월 12일 일본을 향해 수출 규제가 걸린 3개 품목과 화이트리스트에 대한 문제 해결방안과 관련한 구체적인 입장을 밝혀줄 것을 요구했다. WTO 여론전 직전까지 갔으나 일종의 핫라인이 개설된 상태에서 '일본이 문제삼은 문제를 해결했으니 수출규제를 풀어라'는 메시지다.

당시 정부는 일본이 수출규제의 이유로 지목한 재래식무기 캐치올 통제와 관련해 현재 정상적으로 가동되고 있으며, 일본이 요구하던 수출관리 조직 및 인력 보강은 산업부 내에 무역안보 전담조직을 기존 과단위(무역안보과)에서 국단위 조직인 '무역안보정책관'으로 확대 개편했다고 밝히며 메시지의 선명성에 주목한 바 있다. 나아가 포괄허가에서 개별허가체제로 전환된 3개 품목의 경우 건전한 수출거래 실적이 충분히 축적됐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일본은 한국 정부의 조치에도 불구하고 묵묵부답으로 일관했으며, 결국 이 사태는 WTO로 무대를 옮겨 첨예한 대립이 이어지는 중이다.

한일 경제전쟁이 길어지며 국내 소부장 생태계의 위기도 커지고 있다.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의 핵심 소재 및 부품, 장비를 일본에 의존하는 상황에서 경제전쟁 초반에는 각 기업들이 컨틴전시 플랜에 돌입하기도 했다.

다행히 위기는 잘 넘기는 분위기다. 특히 소재에 있어 성과가 크다. 실제로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지난달 29일 ‘일본 수출규제 1년, 평가와 과제 세미나’를 통해 일본 정부가 수출을 규제한 불화수소, 포토레지스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등 3개 품목에 대한 수입액을 집계한 가운데 불화수소는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일본 수입액은 403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85.8%가 줄었다고 밝혔다.

웨이퍼의 습식식각에 사용되는 액체 불화수소의 경우 일본 스텔라케미파, 모리타화학에 크게 의존했으나 올해 초 국내 솔브레인 등이 제품 양산에 성공해 안정적인 독립을 이룬 것으로 평가된다.

다만 기체 불화후소 독립은 완전하게 이뤄지지 않았다. 경북 영주 공장 내 15톤 규모의 생산시설을 건설하는 등 국산화 작업을 차근차근 진행한 SK머티리얼즈가 2023년까지 국산화 70% 선언에 나서는 한편 최근 고순도 제품 양산에 돌입한다고 밝혔으나 아직은 갈 길이 멀다는 말이 나온다. 심지어 포토레지스트는 오히려 일본 수입액이 늘었다. 1월부터 5월까지 수입액이 1억5081만달러를 기록해 지난해 1월부터 5월까지 수입액인 1억1272만달러를 넘긴 것으로 확인됐다. 일본 의존도는 아직 90%에 이른다. 디스플레이에 사용되는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도 수입액이 오히려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더 큰 문제는 부품과 장비다. 국내 부품업계 관계자는 "소부장에서 소재는 일부 독립이 이뤄지고 있으나 부품과 장비는 아직 요원한 상황"이라면서 "대형 사업자들의 고민이 제법 큰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전형적인 세트사업 반도체, 소부장 절실하다
안기현 반도체산업협회 상무는 지난달 26일 코로나19와 반도체 질서의 미래 강연을 통해 "반도체가 태어난 미국은 소부장과 반도체가 함께 성장한 바 있다"고 말했다. 전형적인 세트사업인 반도체의 연속성이 소부장과 관련이 있다는 뜻이다.

문 대통령의 9일 이천 SK하이닉스 방문이 의미있는 이유다. 문 대통령은 이천 캠퍼스 내 분석측정센터 불화수소 협력 공정을 찾았으며 솔브레인의 액체불화수소 시제품 성능을 살펴보는 한편 소부장 육성 2.0 로드맵까지 발표했기 때문이다.

소부장 2.0 전략은 관리품목 100개를 3배 이상 늘린 338개 확장하는 것이 골자다. 첨단형(158개)과 범용형(180개)으로 나누며 정부는 국내 기술 확보를 위해 2022년까지 5조원 이상을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미래 먹거리인 반도체·바이오·미래차 이른바 빅3를 핵심으로 삼아 전략 클러스터 및 생태계 강화에 나서는 것도 포함됐다.

SK하이닉스가 소부장 생태계 강화에 적극 나서는 것도 문 대통령의 방문을 끌어냈다는 말이 나온다. 실제로 SK하이닉스는 지난달 30일 ㈜쎄믹스, ㈜엘케이엔지니어링, ㈜에버텍엔터프라이즈를 4기 기술혁신기업으로 선정하고 협약식을 가졌으며 국내 소재 부품 장비 산업 육성을 위해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한다고 밝혔다.

SK하이닉스는 2017년부터 매년 소부장 협력업체 중 국산화 잠재력이 높은 중소기업들을 기술혁신기업으로 선정해 지원해 왔으며 이번에 선정된 기술혁신기업은 2년간 SK하이닉스와 제품을 공동개발하고, 개발된 제품을 SK하이닉스 생산 라인에서 직접 테스트해 볼 수 있어 개발기간 단축은 물론 제품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나아가 이들은 SK하이닉스로부터 일정 물량의 구매를 보장받는 한편 무이자 기술개발 자금대출 지원과 경영 컨설팅까지 제공 받게 된다. SK하이닉스 이석희 CEO는 “코로나19로 어려움이 많지만 기술 협업을 통해 양사 경쟁력을높이고 국내 반도체 생태계를 강화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자"며 상생 협력에 대한 의지를 다졌다.

아쉬운 대목은 있다
한일 경제전쟁 정국에서 소부장 강화를 위한 국내 대기업 및 중소기업의 의기투합은 고무적이다. 그러나 아쉬운 대목도 있다.

먼저 육성 전략 자체가 반도체 소재에 집중된 부분이다.

반도체 핵심 소재인 포토레지스트의 경우 아직 완전한 독립을 이루지 못했으나 나름의 성과도 나오는 중이다. 실제로 문 대통령은 SK하이닉스를 방문했을 당시 연구원에게 "포토레지스트가 완전히 자립했는가"라고 물었고 연구원은 "완전히 극복은 아니지만 빠르게 격차를 줄이고 있다"고 답한 바 있다.

다만 디스플레이 핵심 소재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는 상황이 다르다.

물론 디스플레이 제조사 입장에서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는 반드시 필요한 소재가 아니기 때문에 일본 수출 규제에 따른 타격이 제한적이라는 말이 나온다. 코오롱인더스트리는 이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양산 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SKC는 대규모 생산 공장까지 갖추는 등 다양한 가능성도 타진하고 있다. 그러나 포토레지스트와 함께 일본 의존도가 아직 높은 상태에서, 문 대통령의 반도체 기업 방문 등에서 알 수 있듯, 포토레지스트에 집중되는 소부장 육성 전략이 플루오린 폴리이미드에도 과감하게 뻗어가야 한다는 지적은 계속 나오는 상황이다.

소부장 육성전략이 소재를 넘어 부품 및 장비에도 전략적인 지향점을 보여줘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결국 재원이 한정된 상황에서 유연한 로드맵이 필요하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