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차원의 디지털세 가이드 라인 구축이 더뎌지며 각 국이 독자적으로 디지털세를 부과하려는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국내에서도 디지털세를 부과해 공격적인 대응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기회비용을 면밀히 따지며 대응해야 한다는 주장에 설득력이 더해지고 있다.

▲ 출처=갈무리

각개전투 벌어진다
OECD는 올해 말 디지털세 도입을 위한 국제적 합의를 추진할 계획이다. 글로벌 디지털 기업이 특정 국가에 진출했을때 매출이 발생한다면, 매출이 발생하는 국가가 과세권을 갖도록 하는 방안이다.

문제는 OECD 차원의 디지털세 도입을 위한 국제적 합의가 계획대로 올해 마무리되기 어렵다는 점에 있다. 각국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충돌하는 상황에서 실제 액션플랜 기간을 고려하면 최소한 5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온다.

디지털세 정책에 대한 '글로벌 스탠다드' 일정이 차일피일 미뤄지며 각 국은 독자적인 디지털세 부과에 나서고 있다. 여기에는 코로나19로 각 국의 재정상황이 파탄난 상태에서 비대면 트랜드를 타고 성장하는 글로벌 디지털 기업의 부담을 늘리려는 정책적 방향성도 스며들었다는 평가다.

가장 공격적인 디지털세 부과에 나서는 곳은 유럽과 동남아시아 지역이다.

실제로 프랑스는 글로벌 기업의 매출이 7억5000만유로, 국내 2500만유로일 경우 매출의 3%에 과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지난해 7월부터 가동하고 있으며 영국은 글로벌 매출 5억유로, 국내 2500만유로일 경우 매출 2%의 디지털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탈리아는 1월부터 글로벌 매출 7억5000만유로, 국내 2500만유로일 경우 매출 3%의 디지털세를 부과하고 있으며 스페인은 글로벌 매출 7억5000만유로, 국내 3000만유로 매출일 경우 매출 3%의 디지털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비슷한 기준으로 벨기에도 매출 3%의 디지털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며 오스트리아도 지난해 10월부터 글로벌 매출 7억5000만달러의 경우 5%의 디지털세를 부과하고 있다. 체코는 글로벌 매출 7억5000만유로 기준일 경우 무려 7%의 디지털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저울질하고 있다.

동남아의 경우 태국은 글로벌 매출 180만바트일 경우 매출의 7%를 디지털세로 부과하는 방안을 최근 의회에서 통과시켰다. 이런 가운데 인도네시아는 7월부터 디지털 기업에 대해 매출 10%에 이르는 디지털세를 부과한다고 밝힌 상태다.

필리핀에서도 최근 비슷한 내용의 법안이 의회를 통과했다.

국내 기업 '이중고'
각 국의 디지털세 부과가 각개전투 방식으로 전개되는 가운데, 국내 디지털 기업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네이버 및 카카오 등 글로벌 시장에 진출한 기업들이 각 국의 디지털세 부과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디지털세는 소득세가 아닌 매출세라는 점에서 간접세에 가깝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결국 국내 디지털 기업은 해외에서 디지털세 부과를 당하는 한편, 국내에서도 외국납부세액공제를 인정받기 어렵다는 말이 나온다. 결국 한국 디지털 기업은 해외에서도 세금을 내고, 국내에서도 세금을 또 내야 할 판국이다.

▲ 출처=갈무리

두 가지 솔루션
각 국의 디지털세 도입에 맞춰 글로벌 무대에서 뛰는 국내 디지털 기업의 이중과세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두 가지 솔루션이 부상하는 중이다.

먼저 '우리도 디지털세를 부과하자'는 솔루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어차피 OECD 차원의 디지털세 가이드 라인이 차일피일 미뤄지는 상황에서 각 국이 디지털세를 부과하는 상황이다. 우리도 국내에 진출한 글로벌 디지털 기업을 대상으로 디지털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미 관련 법안이 등장하는 가운데 지난해 12월부터 기획재정부의 디지털세 전담 TF도 가동중이다. 이를 바탕으로 맞불작전을 시작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다만 무턱대고 맞불작전을 펼치기에는 리스크가 크다. 미국과 유럽의 사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최근 유럽이 디지털세 도입에 공격적으로 나서는 가운데, 글로벌 디지털 기업의 본산인 실리콘밸리의 미국은 강력하게 반발한 바 있다. 미국은 지난 6월 프랑스의 디지털세와 관련한 조사에 착수하며 자국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불이익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결국 미국과 유럽은 본격적으로 디지털세와 관련한 논의에 돌입했으나 지난달 17일(현지시간) 협상은 결렬됐다.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에 따르면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은 디지털세 부과를 조율하고 있는 프랑스, 영국, 스페인, 이탈리아 등 4개국 재무장관을 대상으로 서한을 발송해 협상 결렬을 선언했으며 유럽이 디지털세 부과에 나설 경우 경제보복에 나설 것이라 경고하기도 했다.

그는 "디지털세나 이와 유사한 단일 세금에 반대한다"면서 "미국은 적절한 대응 수단을 내놓을 것"이라 말했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도 하원에서 "미국은 유럽의 디지털세 부과를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라 강조했다.

유럽도 강하게 반발했다. 프랑스, 영국, 스페인, 이탈리아 4개 나라가 공동으로 미국의 협상 결렬에 맞서기로 했으며, 무조건 디지털세 부과에 나선다는 입장을 밝혔다.

유럽의 반발이 커지자 미국은 즉각 관세보복이라는 카드를 빼들었다. 디지털세 논란 초기부터 슈퍼301을 전가의 보도처럼 거론하며 보복을 시사한 상태에서, 기어이 디지털세 논란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무역전쟁이라는 전면전을 꺼내든 셈이다.

국내에서 글로벌 디지털세 도입이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만약 한국 정부가 실리콘밸리 디지털 기업에 디지털세를 부과한다는 방안을 내놓을 경우 즉각 무역보복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파급력은 디지털 시장을 넘어 삼성전자와 같은 제조업 기업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유럽의 경우 단일 시장권내 강력한 디지털 기업이 없기 때문에, 그나마 미국과 전면전을 벌일 여지도 있다. 동남아도 풍부한 소비시장을 가진 상태에서 단일 시장권내 강력한 디지털 기업이 글로벌 시장에 진출한 사례가 많지 않기 때문에 역시 공격적인 디지털세 부과에 나설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은 소비시장이 작으면서 글로벌 시장에 다수 진출한 디지털 기업이 많다. 이는 ICT 강국의 상징이지만, 그 만큼 디지털세라는 각 국의 함정에 볼모로 잡힌 기업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내에서 디지털세 도입에 신중한 이유다.

그렇다면, 남는 방안은 투트랙 전략외에는 없다. QECD의 글로벌 스탠다드 논의에 깊숙히 참여해 장기적 관점에서 유리한 로드맵을 그리면서 글로벌 시장에 진출한 국내 디지털 기업에 대한 세 부담을 경감시켜주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지나치게 공세적인 입장에서 '우리도 디지털세를 도입하자'며 강공모드를 거는 순간 미국의 슈퍼301을 만나게 된다. 심지어 소비시장도 작기 때문에 동남아처럼 배팅에 걸 자산이 많은 것도 아니다.

결국 최선이 아닌 차선의 선택으로, 글로벌 시장에 진출한 국내 디지털 기업의 타격을 최소화하며 외교적 방식으로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달 17일 기획재정위원회 전체 회의에 참석해 "한국이 다른 외국기업의 과세권을 가져오는 것(디지털세 부과)도 방법이지만, 우리 기업이 다른 나라에 진출 시 과세권을 줘야하는 문제도 있다"며 우려한 행간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