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권유승 기자] "옷장에 옷은 많은데 입을 옷이 없다면 너무 유별난 옷만 많은 경우이다. 기본적인 옷들이 충실히 있다면 옷이 적어도 항상 잘 입을 수 있다. 브랜드의 기본적인 요소가 잘 갖춰진 경우에는 일관성이 있으면서도 변형(variation)이 쉽게 그리고 무한하게 가능하다."

"언택트(Untact), 방콕, 개성은 현대카드가 서비스에 담으려고 하는 중심 트렌드. 트렌드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구체적인 서비스로 만들어나가는 것은 또 다른 작업이다".

SNS 소통이 활발한 CEO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이 최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문구들이다. 정 부회장의 페이스북을 들여다보면 올해 유독 '디지털'과 'PLCC(상업자 표시 신용카드)'를 강조하는 포스팅들이 눈에 띈다.

이는 곧 정 부회장이 주목한 주요 사업 전략이며, 현대카드를 포함한 카드업계의 생존을 위한 방향이라고 볼 수 있다. 보수적인 금융권의 색채를 과감히 탈피하고 카드업계의 혁신을 선도하고 있는 현대카드의 고객맞춤형 전략은 언택트 시대가 도래 하면서 더욱 탄력을 받고 있다.

▲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 출처=현대카드

'디지털 생활비'. 유튜브‧넷플릭스‧멜론 등 디지털 정기구독 서비스를 일컫는 현대카드가 만든 신조어다. 과거에는 매달 물값, 전기값 등의 생활비가 나갔다면, 지금은 디지털 생활비를 지출하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러한 디지털 생활비를 겨냥한 카드가 바로 현대카드 '디지털 러버(DIGITAL LOVER)'다.

현대카드가 지난 2월 출시한 디지털 러버는 유튜브 프리미엄‧넷플릭스‧멜론‧지니 등 주요 디지털 스트리밍 서비스의 이용요금을 할인해주는 것이 특징이다. 이 카드는 최근 디지털 콘텐츠 소비 트렌드가 확산하면서 전 세대에 걸쳐 호응을 얻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 현대카드의 지난해 디지털 콘텐츠 서비스 관련 결제 건수는 최근 3년 새 3배 이상 증가했다. 특히 영상 서비스에 대한 결제 금액은 이 기간 9배 이상 급증했다.

정 부회장이 주목한 디지털은 단순히 카드 출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정 부회장은 신용카드 회사를 뛰어 넘을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 전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는 AI 등을 통해 고객 맞춤형 정보를 선제적으로 제안해야 한다는 카드사의 사명감이 담겨져 있다.

현대카드가 지난 2015년부터 지금까지 데이터 사이언스 역량 강화에 투자한 금액은 3000억원이 넘는다. 현대카드는 디지털에 적합하도록 조직‧기업문화‧인프라 등을 변경했으며, 디지털 인력도 350명 이상 충원했다. AI기반 챗봇 '버디(Buddy), '가상카드번호' 서비스, 한 번의 클릭으로 결제까지 가능한 '페이샷' 등은 현대카드 디지털 포메이션의 산물이다. 최근에는 맞춤형 소비 컨설팅을 제공하는 ‘현대카드 소비케어 by Personetics’도 론칭했다.

정 부회장은 고객 맞춤형 상품의 일환인 PLCC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카드업계 PB상품이라고 할 수 이는 PLCC는 현대카드가 업계에서 가장 먼저 선보였다. PLCC란 카드사가 아닌 특화 혜택을 제공하는 기업 자체 브랜드를 사용하는 신용카드를 말한다. 제휴기업과 상품 비용‧수익을 공유해 카드사들의 비용 부담이 덜하며, 소비자들 입장에서도 혜택 좋은 카드를 이용할 수 있어 윈윈 상품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 6월 15일 현대카드 정태영 부회장(왼쪽)이 스타벅스커피 코리아 송호섭 대표와 서울 종로에 위치한 스타벅스 더종로R점에서 ‘PLCC 파트너십 계약’을 체결한 후 담소를 나누고 있다. 출처=현대카드

현대카드는 하반기 스타벅스 전용 PLCC를 출시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현대카드는 지난달 15일 스타벅스 코리아와 파트너십 계약을 맺고 카드 운영과 마케팅 등을 지원하기로 했다. 지난 4월엔 대한항공 PLCC도 선보였다. 대한항공 마일리지 혜택을 제공하는 이 카드는 항공사 최초 PLCC라는 점에서 업계 눈길을 끌었다.

현대카드가 이베이코리아와 선보인 '스마일카드'도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올해로 출시 2년을 맞은 스마일카드의 회원 수는 90만명을 돌파했다. 스마일카드가 온라인 채널로만 발급이 가능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같은 실적은 괄목할만하다는 평가다. 언택트 소비에 대한 니즈를 선제적으로 공략했다는 점이 스마일카드 호실적의 주요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 출처=현대카드

정 부회장의 이 같은 고객맞춤형 전략은 가시적인 성과를 나타내고 있다. 현대카드의 올 1분기 당기순이익은 689억원으로 전년 동기 642억원 대비 7.3% 증가했다. 이는 가맹점수수료 인하에 따른 카드 수익 감소 등을 감안하면 선방했다는 평가다. 지난해 순익도 양호했다. 지난해 현대카드의 순익은 1676억원으로 전년 1498억원 보다 11.9% 증가했다. 같은 기간 신한카드‧삼성카드‧KB국민카드‧현대카드‧롯데카드‧우리카드‧하나카드‧비씨카드 등 전업 카드사 8곳의 순익은 1조6463억원으로 전년(1조7388억원) 대비 5.3% 감소했다.

톡톡 튀는 실험적인 발상으로 업계 눈길을 끌었던 현대카드의 모험은 향후에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현대카드가 뛰어들었던 모험이 실질적인 성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은 물론 다른 경쟁사들도 줄줄이 이를 따라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정 부회장은 지난달 자신의 SNS에 "브랜드의 기본 요소를 정리하기 위해서는 브랜드를 해체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브랜드의 구성요소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그 투입비율을 조정하거나 요소들을 하나 하나 관리하는 작업이 가능하다. 브랜드나 마케팅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감성은 가끔 튀는 발상을 하는 감성이 아니라 브랜드를 해체하구 구조화시키는 감성"이라고 강조했다.

현대카드 관계자는 "현대카드가 PLCC 등 선도적으로 운영을 해왔던 부분들이 업계에서 좋은 반응을 이끌어 내고 있다. 새로운 먹거리 창출의 일환으로 다른 회사에서도 이런 케이스들을 활용한 비슷한 시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현대카드가 최근 다양한 업계로 확장하고 있는 만큼 향후에도 이에 따른 여러 성과들이 기대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