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븐 비건 부장관의 방한

헐리우드 영화 『나우 유 씨 미(Now You See Me)』(2013, 2016)는 속임수에 관한 영화이다. 마술사기단이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보고도 믿지 못할 완전범죄 매직쇼로 세계를 발칵 뒤집어 놓는 이야기이다. 불가능한 마술로 완전범죄를 펼치는 것이다.

마술이 사기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사기라는 말이 불편하면, 속임수라고 하자. 그런 의미에서 보면, 마술은 선의의 속임수. 영화 『나우 유 씨 미(Now You See Me)』가 관객에게 하고 싶은 말은 하나이다. “당신이 보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미국의 북핵 협상 수석대표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이 7월 7일 방한한다. 그런데 비건 부장관의 방한과 관련해서, 북한은 “북미정상회담 의지가 없다”는 입장을 재차 밝혔다. 묻지 않았지만, 비건 부장관의 방한이 북한 때문이라고 여긴 것이다.

권정근 북한 외무성 미국담당 국장은 이날 담화를 내고 “다시 한번 명백히 하는데 우리는 미국 사람들과 마주 앉을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전했다. 더불어 북미정상회담에 대한 남측의 중재역할 의사를 ‘삐치개질’(참견질)로 폄하했다.

권정근 국장은 “때아닌 때에 떠오른 ‘조미(북미)수뇌회담설’과 관련하여 얼마 전 우리 외무성 제1부상은 담화를 통하여 명백한 입장을 발표하였다”며 “별로 뜯어 보지 않아도 쉽게 알아들을 수 있게 명명백백하게 전한 우리의 입장이었다”고 덧붙였다.

앞서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은 지난 7월 4일 담화에서 “미국과는 마주 앉을 필요가 없다”며 협상 재개를 일축한 바 있다. 권정근 국장은 “중재 의사를 밝힌 오지랖이 넓은 사람에 대하여서도 언급하였다”며 문재인 대통령을 우회적으로 거론했다.

 

비건 부장관의 방한 목적

그런데 주목할 점이 힘든 것이 있다. 언론에 밝힌 비건 부장관의 방한 목적이다. 국내외 언론은 비건 부장관이 한미 방위비 분담금 협정 문제와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했던 G7 확대 등을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과 대화할 계획은 없다는 것이다.

비건 부장관은 7일 오후 경기도 오산 공군 기지에 도착, 8일에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을 예방한 뒤 조세영 외교부 1차관과 한미 외교차관 전략대화를 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청와대를 방문하고, 2박 3일 일정을 마치고 나서 일본으로 출국한다고 전했다.

물론 비건 부장관의 일정 중에서, 북한 관련 내용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우리 측 북핵 협상 수석대표인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도 회의를 하는데, 이후 약식 브리핑을 열고 대 북한 메시지를 낼 수도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내보냈다.

북한 관련 내용은 그것이 전부였다. 오히려 북한과 관련,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 FFVD가 최근 미국 국무부에서 자주 거론됐고 전했다. 이런 정황으로 보면, 비건 부장관의 방한은 북미대화를 기대한 북한의 의도와 다른 것일 수도 있다.

비건 부장관은 작년 12월 방한, 북한을 향해 회담을 공개 제의했다. 약식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는 여기(서울)에 있고 당신(북측)들은 우리를 어떻게 접촉할지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북한은 반응이 없었고, 회동은 무산됐다. 꼭 8개월 전 일이다.

 

11월 3일 차미 미국 대통령 선거와 북한 문제

1970년부터 2020년까지 15명 미국 대통령 중 재선에 실패한 대통령은 제럴드 포드, 지미 카터, 조지 H. 부시뿐이다. 포드는 워터게이트 후폭풍, 카터는 이란 대사관 인질 사건, 부시는 제3 후보 로스 페로로 인해서 보수가 분열돼, 연임하지 못했다.

경제 위기가 없는 한, 현직 대통령의 재선 성공이 통례이다. 공화당 미트 롬니 후보와 초박빙 승부로 위기에 몰렸던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재선에 성공했다. 현직 대통령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자는 게 미국 국민이 대통령에 대해 갖는 일반적 정서.

트럼프 집권 1기는 탁월했다. 미중 무역협상에서 선전했고, 브렉시트 대응과 나토 결집도 좋았다. 중동도 장악했고, 남미에는 관세를 부과하며 국익을 지켰다.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대처는 미흡했지만, 그것이 대선 결정 요소가 될지는 두고 봐야 한다.

현직 대통령에 대한 신임 투표 형식이 강한 미국 대통령 선거의 전례로 볼 때, 차기 미국 대통령 선거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소는 북한뿐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문제를 4달 남은 안에 차기 미국 대통령 선거에 활용한다면, 어떤 방식이 가능할까?

트럼프 대통령은 역대 미국 대통령 못한 북한 지도자와 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그러나 2018년 6월 12일 제1차 북미정상회담을 개막한 지 2년이 지났지만, 회담 성사 이상의 성과는 올리지 못했다. 그렇다면 재선을 위한 트럼프 대통령의 선택은 뭘까?

 

스티븐 비건, 존 볼턴, 메리 트럼프, 그리고 아메리칸 허슬

데이비드 O. 러셀 감독의 『아메리칸 허슬(American Hustle)』(2013)도 사기에 관한 영화이다. 희대의 범죄소탕 작전을 위해 최고 사기꾼과 그의 정부를 발탁한 FBI 요원, 그리고 그들의 수작에 표적이 된 악인. 얽히고설킨 관계 속에서 벌어진 내용이다.

제목에 허슬이 들어간 헐리우드 영화는 『아메리칸 허슬』 외에도 많다. 로버트 로센 감독의 『아메리칸 허슬러(American Husstler)』(1961), 로버트 알드리치 감독의 『허슬(Hustle)』(1975), 로렌 스카파리아 감독의 『허슬러들(Hustlers)』(2019) 등 무수하다.

‘허슬’이란 사취하기 위한 음모, 사기행위 또는 속임수를 말한다. 특별히 보잘것없는 솜씨나, 크랩스와 같은 게임에서 농간을 부리는 것을 지칭한다. ‘허슬러’는 이런 행위를 하는 사람, ‘허슬링’은 허슬러의 행동, 강도질 ‘라버리(robbery)’의 뜻과 같다.

허슬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한국이 ‘술 권하는 사회’인 것처럼, 미국은 ‘허슬 권하는 사회’라는 말을 뜻하기 위해서이다. 볼턴 전 보좌관이 회고록이 세계를 뒤흔든 가운데, 이번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조카가 메리 트럼프가 삼촌 관찰서를 써서 화제이다.

북한 비핵화를 논의하기 위해 비건 부장관이 방한한 가운데, 미국 국무부는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 FFVD를 들먹인다. 재선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이 지지율로 고민하는데, 측근, 볼턴 전 보좌관과 조카가 나서 역린(逆鱗)을 폭로 중이다. 트럼프는 카드의 다른 말. 웃고 떠들다가 마술이 끝날 수 있다. 2016년 대선 출마 전 발간한 『불구가 된 미국(Crippled America)』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복서 마이크 타이슨을 인용했다. “누구나 다 그럴듯한 계획은 가지고 있다. 한 대 맞기 전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