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이가영 기자] 코로나19로 인한 수요 위축, 원재료 가격 불안 등 악재로 고심 중인 현대제철이 올 들어 사업구조 재편에 속도를 내고 있다. 수익성이 낮은 사업은 정리하고 자동차 강판 등 고부가가치 제품에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코로나19 재확산세와 전기로 매각 등이 변수로 남아있어 실적 개선은 하반기 이후에나 가능할 전망이다.

현대제철, 전기로 매각 결정… 열연 상업 생산 개시한지 15년만 

5일 철강업계에 따르면 현대제철은 지난달 말 당진제철소 전기로 열연공장 설비를 매각키로 확정짓고 노조 측에 관련 방침을 전달했다. 현대제철은 전기로 열연공장에서 일하던 근로자들은 다른 공장이나 부서로 배치하고, 설비가 빠져나간 공장 부지는 철 스크랩과 코일을 쌓아두는 용도로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전기로는 철광석 등 원료를 녹여 쇳물을 만드는 고로(용광로)와 달리 철 스크랩(고철)에 열을 가해 철근, 파이프 등을 생산하는 설비를 말한다. 포스코와 KG동부제철에 이어 현대제철마저 전기로 열연 사업을 중단하면서 국내 전기로 열연공장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현대제철이 2005년 5월 박판 열연 상업 생산을 개시한지 15년 만이다. 

현대제철이 열연 사업을 접는 배경으로는 수익성 악화와 수주 부족이 꼽힌다. 전기로는 전기를 이용해 고철을 가열하고 쇳물을 생산하는 만큼 원가가 비싸다. 그런데 최근 몇 년간 고철 가격이 상승하면서 수익성이 크게 악화됐다. 아울러 고철을 원자재로 사용하는 만큼 고로에 비해 고부가 제품을 만들기 어렵다. 설상가상으로 중국에서 저가 제품이 다량 유입되면서 경쟁력도 잃었다. 중국은 대기오염을 줄이기 위해 2025년까지 전기로 비중을 30% 늘리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현대제철은 전기로 생산량을 4월부터 점차적으로 줄여왔다. 지난달엔 수주가 한 건도 발생하지 않으면서 전기로 가동을 전면 중단했다. 올 초 생산비 감축 차원에서 전기로 열연강판 생산량을 기존 100만톤에서 70만톤으로 30%가량 줄이겠다고 발표했지만 지속된 수요 감소에 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가동 중단이라는 특단의 조치를 내린 셈이다.

업계에서는 현대제철의 전기로 열연사업의 가동 중지로 인해 연간 300억원가량의 손실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 안동일 현대제철 사장이 지난달 26일 혁신 명소 1호로 선정된 순천공장 현장을 임직원들과 함께 둘러보고 있다. 출처=현대제철

비핵심사업 구조조정 속도… 업황 둔화 위기감 반영

올 들어 현대제철의 구조조정 속도가 눈에 띄게 가파르다. 강관사업부 매각 검토에 이어 단조사업부 분사, 잠원동 사옥 매각에 이은 전기로 매각까지. 이쯤 되면 모든 비핵심사업에 대한 구조조정을 실시하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현대제철의 구조조정은 건설·자동차·조선 등 전방산업의 침체로 인한 업황 둔화와 원료비 상승 등 대내외 경영 환경 악화에 따른 위기감이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 코로나19로 전방산업이 직격타를 입으면서 철강 수요는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주요국의 생산 활동 중단으로 4월 국내 철강 수출은 전년 대비 24.1% 줄어들었으며, 당분간 수출 감소세는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내수시장 규모도 최근 4년 연속 감소세를 보인데 이어 올해는 2009년 이후 처음으로 5000만톤 이하로 감소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설상가상으로 원자재인 철광석 가격은 급등했다. 한국자원정보서비스에 따르면 지난달 26일 기준 철광석은 톤당 102.48달러를 기록했다. 앞서 6월 12일 톤당 104.59달러보다는 소폭 하락한 수준이지만 여전히 부담스러운 가격이다. 중국 정부가 내놓은 경기부양책에 따른 수요 기대치가 반영된 영향이다. 제품 가격을 올려 원자재 가격 인상 부담을 해소해야 하지만 코로나19로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높은 재고율도 비핵심사업 부문 매각의 이유로 추측된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현대제철의 재고자산은 2016년 이후 지난해까지 4년 연속 증가세다. 2016년 2조6236억원이던 재고자산은 2017년 3조1313억원, 2018년 3조7294억원, 지난해 4조2142억원까지 불어났다. 2016년 4.8%이던 재고자산 증가율도 2017년 19.4%, 2018년 19.1%, 2019년 13.0%로 꾸준히 두 자릿수 증가율을 기록하고 있다. 판매 불가능한 재고자산을 폐기하는 비용도 만만찮다. 현대제철은 지난해 4분기에만 재고자산 폐기에 200억원을 지출했다. 

▲ 현대제철 연구개발센터 직원들이 신강종 개발을 진행하는 모습. 출처=현대제철

하반기 실적 개선 기대감… 코로나19·전기로 매각은 변수

업계에서는 현대제철의 구조조정에 힘입어 하반기부터는 실적 개선 기미가 보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변종만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현대제철의 올해 연결 영업이익은 상반기 446억원의 적자에서 하반기 1011억원으로 개선될 전망”이라며 “주단조사업 부문을 물적분할한데 이어, 강관사업 부문 매각과 전기로 박판 열연설비 매각 추진 등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정하늘 한국투자증권 연구원 또한 “자동차 생산 재개에 따른 판매량 증가와 전체 철강재 ASP 상승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며 “하반기 중 조선과 자동차 판가 인상에 대한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 영향에서 벗어나 판매량 정상화만으로도 하반기 실적 개선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재확산세를 보이고 있는 코로나19와 전기로 매각이 변수가 될 전망이다. 최근 미국을 중심으로 코로나19가 재확산세가 뚜렷해지면서 경제활동 재개 움직임 제동이 걸리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미국의 경우 하루 확진자만 5만명에 돌파하는 등 인구의 40% 이상이 재개 중단의 영향권에 있다고 보기도 했다. 철강 수요 감소는 실적 개선폭을 상당수 제한할 수 밖에 없다.  

전기로 매각의 흥행 가능성도 미지수다. 수익성 등 문제로 앞서 훨씬 이전에 전기로 열연사업을 접은 포스코와 KG동부제철도 전기로를 매각하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철강업계가 신규 투자를 꺼리고 있다는 점도 악재다. 

한편, 현대제철은 자동차 강판 등 고부가가치 상품에 집중해 수익성 개선에 나선다. 이에 따라 올해 글로벌 자동차 강판 100만톤 공급, 266종 신상종개발 완료, 1Gpa급 고인성 핫스탬핑강 양산 적용, 1.8Gpa급 초고강도강 개발 등을 목표로 삼고 글로벌 자동차 소재 경쟁력 확보에 주력한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