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아시아나항공

[이코노믹리뷰=이가영 기자] 코로나19로 항공업계의 인수합병(M&A)작업이 안갯속인 가운데 HDC현대산업개발이 아시아나항공 인수에서 승기를 잡았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금호산업과 채권단 모두 급박한 상황인 만큼 아시아나항공을 직접 관리하는 경우 더 큰 리스크가 생겨날 수 있다는 점에서다. 

HDC현산·아시아나항공 M&A, 상반기 넘겨 하반기로  

1일 업계에 따르면 HDC현대산업개발의 아시아나항공 인수 작업은 여전히 답보상태에 머물러 있다. 애당초 지난달 27일이었던 딜 클로징(거래종료) 기한이 지났지만 양사와 채권단 모두  M&A와 관련 그 어떤 입장도 내놓고 않은 채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 

작년 말 HDC현산-미래에셋 컨소시엄은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 주식 매매계약을 맺으며 지난달 27일까지 거래를 끝내기로 약속한 바 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아시아나항공의 상황이 급격하게 악화되면서 HDC현산과 채권단은 치열한 수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발단은 채권단이 6월 27일까지 인수 의사를 밝히라며 HDC현산에 최후통첩을 날린 데서 시작됐다. 이어 HDC현산은 지난달 9일 “코로나19 등으로 상황이 너무 달라진만큼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원점에서 재검토하자”고 채권단에 요청했고, 채권단은 다음날 현산에 구체적인 재협상 조건을 제시하라며 공을 넘겼다. 

이어 채권단은 17일에 HDC현산의 입장을 조목조목 반박하고 나섰다. 같은 날 이동걸 산은 회장도 직접나서 “상호 신뢰가 전제돼야 충분히 안전하게 딜이 끝까지 갈 수 있다”며 “60년대 연애도 아니고 무슨 편지를 하느냐”고 대면 협상을 촉구했다. 

특히, 지난달 25일에는 정몽규 HDC현산 회장과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만난 것으로 알려지면서 양측 간 재협상이 속도를 내지 않겠냐는 기대감도 흘러나왔다. 한 재계 관계자는 “인수에 대한 기본적인 입장만 확인했을 뿐 구체적인 돌파구는 나오지 않은 걸로 안다”면서도 “이동걸 회장의 간곡한 요청 끝에 만남이 성사된 걸로 안다”고 귀뜸했다. 

하지만 매각작업을 둘러싼 가시적인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다. 녹록치 않은 항공 업황에 HDC현산이 장고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HDC현산은 러시아에서의 기업결합심사 등 선행조건이 충족되면 계약을 마무리한다는 기존의 방침을 고수 중이다. 이후 대금 납입과 주식 취득, 임시 주총 소집을 통한 이사 선임 등 남은 절차를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HDC현산, 인수 의지 고수…  자금 확충 등 이행

업계에서는 HDC현산이 재협상은 하되 2조5000억원의 인수 대금 깎기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코로나19로 아시아나항공의 재정 상황이 악화할 대로 악화했다는 점에서다. 

1분기 말 기준 아시아나의 자본잠식률은 81.2%, 부채비율은 6279.8%에 달한다. 업계에서는 지난 4월부터 아시아나항공이 완전자본잠식상태에 빠졌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최근 아시아나항공이 3000억원 규모로 제 97회차 무기명식 무보증 영구 사모 전환사채 발행을 결정한 것도 유동성 위기 상황을 여실히 반영했다는 분석이다. 

일각에서는 최근 HDC현산이 로펌 등을 통해 인수 포기시 이행보증금 2500억원의 반환 가능성을 따져보고 있다는 보도를 들어 인수 포기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경우 인수 무산의 책임은 고스란히 HDC현산이 떠맡아야 해 부담이 크다. 

HDC현산이 3700억원 규모의 자산유동화증권(ABS)을 발행하며 인수자금을 확충한 점, 아시아나항공과 금호산업이 상표권 사용계약을 변경해 HDC현산 인수 시 기존 상징인 ‘날개’ 마크를 뗄 수 있도록 했다는 점도 아시아나항공 인수 의지가 변함없을 것이란 관측에 힘을 싣는다. HDC현산의 입김이 작용했을 것이란 관측이다.  

이에 따라 재협상시 ▲금호산업에 줘야 할 구주 가격 ▲아시아나항공의 영구채 5000억원의 출자 전환 ▲아시아나항공 대출 상환 문제 등을 협상 테이블에 올릴 것으로 보인다. 

▲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 출처=산업은행

금호그룹·채권단, 부담요소 산적… “현산 요구 수용할 것”

반면, 금호그룹과 채권단은 한시가 급한 상황이다. 우선 금호그룹의 경우 아시아나항공 매각여부에 따라 생사가 갈린다고 해도 관건이 아니다. 

애초 금호그룹은 아시아나 매각 대금으로 채권단에서 빌린 차입금을 상환해 재무건전성을 개선하고, 신성장 사업에 투자하려던 것으로 알려진다. 

금호산업은 지난해 말 아시아나항공 지분(30.77%)를 HDC현대산업개발에 3228억원에 넘기는 매매 계약을 체결, 계약금에 해당하는 322억원만 받은 상황이다. 하지만 이 금액 또한 애초 금호그룹이 불렀던 4000억원보다는 800억원 가량 밑도는 금액이다. 

현재 금호고속은 산은에 1300억원을 빌리면서 보유 중인 금호산업 지분 45%를 담보로 잡혔다. 이를 갚지 못할 경우 금호산업은 채권단 관리에 들어갈 수도 있다. 채권단이 차입금 만기를 4월까지 연장해줬지만, 최악의 경우 그룹 지주사 격인 금호고속만 남기고 금호그룹이 완전히 해체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시라도 빨리 자금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채권단의 경우 아시아나항공을 직접 관리하는 것보다 HDC현산에 파는 게 유리하다. 최근 채권단이 일본항공(JAL)의 정상화 사례를 들여다 본 것으로 알려지면서 아시아나항공의 워크아웃 체결 등 관리까지 염두에 두고 있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다. 하지만 직접 관리 시 투입되는 금액과 인력 등을 고려해본다면 현명한 판단이라 보기 어렵다. 

여기에 얼마 남지 않은 이동걸 산은 회장의 임기도 부담이다. 이 회장의 임기는 3개월이 채 남지 않았다. 각종 M&A가 멈춰있는 상황에서 또 한건의 빅딜이 깨지는 경우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특히, 아시아나항공을 다시 시장에 매물로 내놓는다고 해도 제3의 인수자가 나타날 가능성이 낮은 만큼 채권단이 HDC현산의 요구에 최대한 귀를 기울이지 않겠냐는 의견이 나온다. 항공업황이 지금처럼 악화되기 전인 지난해 말 인수전에서도 대기업으로는 HDC현산이 유일하게 참여했다는 점에서다. 

재계 관계자는 “HDC현산 입장에서는 급할 것이 없을 것”며 “재협상이 이뤄지고 내용을 까봐야 알겠지만 채권단 측에서 HDC현산 요구를 상당수 수용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