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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바랜 '황금알' 면세업]①58년 韓면세점, 위기의 시대

급속 성장 제동 건 관세법 개정, 기름 부은 코로나19… 금가는 ‘황금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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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믹리뷰=전지현 기자] 세계 각국 낯선 곳을 향하는 여행객들의 놀이터 ‘면세점’. 이곳은 여행의 설렘과 쇼핑의 즐거움을 느끼는 첫 공간이다. 한국 면세업 58년. 국내 면세시장 역사는 짧지만 각종 국제 행사 개최와 인천공항 개항으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비유되며 눈부시게 성장했다.

그러나 2016년 개정된 관세법이 면세시장 뿌리를 뒤흔들었다. 좁은 땅 안에서 과열 경쟁과 출혈경쟁을 부추겼고, 국내 면세시장 전체를 동반 침몰시키는 잔혹사를 그렸다. 그리고 4년 뒤, 이번에는 코로나19가 기름을 부었다. 전 세계를 덮친 잔인한 질병은 각국의 문을 걸어 잠그게 했고, 항공길을 막았으며 공항면세점을 개점 휴업상태로 만들었다.

면세점 큰손 ‘따이궁(代工·중국 보따리상)’들이 사라진 한국 면세시장은 현재 깊은 침체의 늪에 빠졌다. 대기업들조차 버텨내질 못하고 있다. ‘황금알을 낳던 거위’의 시대는 진작에 끝이 났다.

   
사진=이코노믹리뷰

58년 국제행사·인천공항 개항이 활짝 연 ‘면세업 황금시대’

국내 면세점은 외화 획득과 무역 수지 개선을 위해 지난 1962년 김포공항 출국장에 처음 설치된 것이 시초다. 이후 1974년 ‘남문면세점’이 시내면세점 1호로 등장했고, 1979년 관세법이 개정되면서 12월 동화면세점과 롯데면세점이 차례로 문을 열었다.

한국 면세점의 시작은 아일랜드 섀넌(Shannon) 공항에 세계 최초 면세점이 등장한 1947년보다 15년 가량 늦었다. 그러나 아시안게임(1986년), 올림픽게임(1988년) 등 1980년대 들어 국제 행사가 국내 유치되면서 도약한다. 면세점 수만 놓고 봐도 당시의 국내 면세점이 ‘황금 시대’였음을 엿볼 수 있다. 1985년 11개(시내면세점 6곳)에 불과했던 면세점은 전국적으로 확대되면서 4년 만에 30개가 넘는 기업이(1989년 기준 34개, 시내면세점 29개) 특허를 갖는 비약적 성장을 이룬다.

1989년 실시된 해외여행 전면 자율화는 국내 면세업의 눈부신 발전을 가져왔다. 외국인에게만 허용되던 출국면세점이 내국인에게도 개방됐기 때문이다. 당시는 전 세계적으로 공항 쇼핑이 폭발적 성장을 이룬 상태였다. 1970년대 점보 비행기가 개발되고 거대한 공항이 등장했으며, 항공료도 저렴해진 영향에 수백만 명의 여행객들이 날마다 공항을 이용했다.

1980~90년대 아시아 신흥시장이 급부상했다는 점도 한몫했다. 당시 한국은 대만, 홍콩, 싱가포르와 함께 ‘아시아 네마리 용(龍)’으로 불릴 만큼 성장세가 주목받는 시장이었다. 덕분에 국내 면세점은 후발주자였음에도 그해 매출이 전년대비 67.3% 성장했고, 2000년대부턴 인천국제공항(2001년) 개항과 ‘겨울 연가’ 등 한류 열풍 시작이 밑거름돼 경이로운 성장세를 이룬다.

   
▲ 면세점 빅3. 사진=각 사

롯데·신라 ‘빅2’로 재편된 면세시장, 규모의 경쟁력으로 세계 시장에 우뚝

시련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1990년대 불어닥친 외환위기와 세계적인 질병은 한진(2003년)과 AK(2010년)와 같은 대기업들마저 폐업의 길로 인도했다. 1980년대 정부는 대형 국제 행사를 전후로 외국인 관광객 쇼핑 활성화를 위해 시내면세점을 대폭 늘린 터였다. 우후죽순 늘었던 면세 사업자들이 롯데와 신라로 재편된 것은 이즈음이었다.

국내 면세업은 2000년대부터 시작된 한류 열풍과 가격 경쟁력으로 국내 면세쇼핑 인기가 늘면서 2009년부턴 세계 면세시장의 약 10.3%를 차지하는 세계 1위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제품을 선매입해 파는 형태로 재고가 쌓일 수밖에 없는 면세업 특수성과 높은 공항 면세점 임차료가 ‘규모=경쟁력’ 등식의 시장구조를 양산, 누적된 적자를 견디지 못하는 사업자들이 스스로 손을 떼기 시작했다.

2002년~2003년, 2009년 등에 번진 질병은 면세 시장이 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아 규모의 경쟁력을 갖춘 기업들만이 생존할 수 있는 요소라는 것을 입증했다.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이 발병했을 당시 한진그룹이, 신종플루 때는 애경(AK면세점)이 면세사업에서 물러났다. 이후 2012년엔 신규로 특허를 내준 12개 중소·중견기업 중 4곳이 자발적으로 특허를 반납했다.

‘면세 쇼핑=홍콩’이란 등식이 통용되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롯데·신라 등 면세기업 ‘빅 2’가 시장을 잠식하면서 세계적으로 ‘면세쇼핑’하기 좋은 환경을 구축했고, 쇼핑객들은 2010년을 전후로 국내로 발길을 돌렸다.

   
▲ 전국 면세점 현황. 사진=한국면세점협회

독과점 규제법이 불러온 韓 면세산업 잔혹사

롯데면세점은 1980년 1월 서울 소공점에 최초 면세점을 오픈한 후 전국 7개(본점, 월드타워점, 코엑스점, 부산점, 제주점, 김포공항점, 인천공항점), 해외 4개 매장(괌 공항점, 간사이 공항점, 자카르타 공항점, 자카르타 시내점) 및 한·중·일·영문 인터넷 면세점 운영하는 1위 사업자로 거듭났다.

2014년 기준 국내 업계 최초 글로벌 매출 4조원 돌파(4조2170억원)을 돌파했고 세계 면세 시장 3위 사업자로 올라설 만큼 입지가 커졌다. 롯데면세점은 루이비통, 에르메스, 샤넬 등 명품 ‘빅 3’ 와 랑방 등 세계 면세업계 최초 입점이란 신화를 써내려가며 소공동 본점을 세계 1위 면세점에까지 등극시킨다.

1986년 면세사업을 시작한 호텔신라는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과 출국하는 내국인에게 차별화된 가치를 제공하며 효율적인 운영 노하우를 바탕으로 국내 뿐 아니라 글로벌 시장의 면세유통 기업으로 성장했다. 2013년 싱가포르 창이공항에 첫 해외 매장을 오픈했고, 2014년 마카오공항 면세점 운영을 시작했으며 2015년에는 창이국제공항 화장품·향수 전 매장을 그랜드 오픈했다. 2017년 새로 개장한 제4터미널에서도 화장품·향수 매장을 운영하면서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했다.

공고했던 한국면세점 ‘빅2 체제’에 변화가 시작된 것은 2013년 관세법 개정부터였다. 롯데를 정조준한 것으로 평가됐던 관세법 개정은 면세점 매출 기준 시장점유율이 30%를 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법안으로, ‘대기업=악(惡)’ 프레임으로 독과점으로 운영되는 면세점 사업에 개선책이 필요하다는 취지에서 추진됐다. 실제 2014년 기준 롯데 면세점 시장점유율은 50.2%, 신라는 30.5%였다.

결국 10년 단위로 자동 갱신됐던 기존 면세점 특허권은 2013년 5년마다 입찰하는 방식으로 변경됐고, 2016년 ‘황금 티켓’을 둘러싼 신규사업자들의 진출 러시가 이뤄진다. 2015년 6개였던 시내면세점 개수는 13개로 2배 이상 증가했다.

한국 면세시장규모는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20조원을 돌파했다. 하지만 속내를 살피면 수익성이 심각하게 악화된 ‘속빈 강정’인 상태다. 출혈경쟁이 심화되면서 한화와 두산은 지난해 면세특허권을 반납했다. 두 기업이 지난 3년간 낸 영업손실은 총 1600억원이었다.

올해의 경우 면세업계는 코로나19 리스크로 절규하고 있다. 각국마다 봉쇄조치가 취해진 결과, 대기업 운영 시내 면세점 매출 감소폭은 60~70%, 인천국제공항 입점업체들 매출 감소폭은 99%에 이르렀다. 김포와 제주·김해·공항 등에 있는 국내 공항면세점들은 아예 문을 닫았다. 인천공항면세점을 중심으로 한 도미노 도산과 이에 따른 인력 구조조정 가능성을 제기하는 분위기다.

그나마 대기업 면세점은 상황이 나은 편이다. 중소·중견 면세점인 SM면세점은 지난 4월말 영업을 중단하고 면세점 사업권을 반납했고, 그랜드면세점, 시티면세점 등은 공항 면세 사업권을 포기했다.

   
▲ 면세점 매출 규모. 출처=한국면세점협회

‘모든 알처럼 깨질 수 있는 황금알’, 메르스 사태가 준 교훈

시장은 지난 2015년 서울 시내면세점 특허사업자 재선정이 진행 중이던 당시 앞으로 불어닥칠 한국 면세상황을 예견한 바 있었다. 영국 유통전문지 무디리포트는 2015년 발간한 10월호에서 ‘잘못 되면 불모지’ ‘모든 알처럼 깨질 수 있는 황금알’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강한 우려를 나타냈었다. 5년 뒤, 한국 면세시장은 그의 예견이 적중한 모습이다.

1989년부터 매년 한국을 찾아 한국 면세시장이 세계 1위로 성장한 모습을 지켜본 전문가 마틴 무디(Martin Moodie) 무디리포트 회장은 “중국 관광객 급증으로 면세점이 황금알을 낳는 것처럼 보이지만 (면세점은) 예측 불가능한 요인에 의해 얼마든지 깨질 수 있는 황금알”이라며 “한국인들은 면세산업이 보물상자인 줄 알지만 실제로는 비용이 많이 들고 복잡한 사업이기 때문에 자칫 불모지가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었다.

당시 그는 특허권 남발로 사업자와 매장 등이 많아지면 중국 관광객 감소 시 위험이 커질 수 있고, 유커(중국인 단체관광객) 유치 경쟁이 치열해지는 글로벌 상황에서 한국에 신규 면세사업자가 늘어나 유커 여행패턴이 변한다면 한국 면세산업의 글로벌 위상이 떨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한국은 관광 경쟁력이 높은 나라가 아니며 언제든 제2, 제3의 메르스 사태가 발생하면 관광시장이 얼어붙을 만큼 취약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전지현 기자 gee7871@econovill.com

기사승인 2020.07.04  10:5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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