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중국의 기술굴기를 상징하는 화웨이의 행보에 시선이 집중된다. 미국과 중국의 신경전이 가열되며 서방 세계의 강력한 압박을 받는 상황에서, 이대로는 '최악의 상황'이 도래할 수 밖에 없다는 위기감도 증폭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포스트 코로나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어 눈길을 끈다. 냉혹한 국제무대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있는 한국의 화웨이 활용법 여부에도 시선이 집중된다.

고립무원 화웨이
올해 초 미중 무역합의가 단행된 후 화웨이는 기사회생의 기회를 잡았다. 미국의 압박은 여전했으나 트럼프 행정부의 강력한 보호 무역주의로 유럽과 미국의 공조가 삐걱이는 틈을 노려 영토를 크게 확장했다. 화웨이는 영국은 물론 독일, 네덜란드 등 유럽 주요 국가에 5G 장비를 제공하며 광폭행보를 이어갔다.

상황은 코로나19 창궐로 급변했다. 중국 책임론이 부상하며 화웨이의 광폭행보에 제동이 걸리더니 유럽마저 반 화웨이 전선에 동참하기 시작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강압적인 보호 무역주의와 차이나 머니의 달콤함에 취했던 서방 세계는 급격히 화웨이 동맹에서 발을 뺐고, 화웨이는 순식간에 최악의 위기에 직면했다.

미국의 압박은 더욱 강해졌다. 자국 기업과 화웨이의 거래 중단 기일을 연장하는 한편 제3국을 통한 화웨이의 반도체 수급까지 막으려는 시도에 나섰다. 심지어 화웨이와 오랫동안 우호관계를 유지하던 대만의 TSMC까지 미국 공장 건설 유치를 바탕으로 화웨이와 돌아세우는 것에 성공했다. 이미 TSMC가 화웨이와의 신규 거래를 중단했다는 말이 나오는 한편 화웨이가 부랴부랴 2년치 반도체 물량을 확보했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실제로 닛케이는 2일 화웨이가 이미 상당부분의 시스템 반도체를 비축했다고 보도했다. 2019년 1674억위안을 투입해 인텔 서버용 CPU(중앙처리장치)와 자일링스(Xilinx) 프로그래머블 반도체(FPGA)를 구매했으며 그 물량은 2년치에 달한다고 밝혔다.

유럽도 화웨이와 결별하는 분위기다. 영국이 오는 2023년까지 자국 5G 사업에서 중국의 화웨이 참여를 원천배제하기로 결정한 장면이 눈길을 끈다. 화웨이와 영국은 최근 5G 동맹을 긴밀하게 유지하며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했으나, 코로나19 및 중국의 홍콩 국가보안법 제정으로 완전히 갈라서는 분위기다.

독일도 돌아섰다. 2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은 독일의 3대 이동통신사 중 하나인 텔레포니카가 화웨이의 5G 장비를 배제하고 에릭슨으로 교체했다고 보도했다. 마쿠스 하스 텔레포니카 최고경영자(CEO)는 "우리는 안전한 네트워크를 제공하는 특별한 사회적 책임을 가지고 있다"며 사실상 화웨이 백도어설을 주장하는 미국의 논리를 따라가는 분위기까지 연출했다. 나아가 캐나다도 화웨이와 이별하고 있다. 3일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캐나다 1위 통신 사업자인 벨캐나다(BCE)는 5G 사업에서 화웨이를 배제하고 에릭슨을 택하기로 했다. 캐나다 법원이 멍완저우 화웨이 부회장의 미국 송환에 무게를 실으며 현지 통신사들도 일제히 화웨이 배제에 나선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다.

화웨이는 반발하고 있다. 미국의 화웨이 압박이 결국 미국의 피해로 이어질 것이라 주장하는 중이다.

근거도 있다. 미국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가 최근 '수출 통제: 미국의 다른 국가에 대한 안보 위협' 제목의 보고서를 발간한 가운데 채드 브라운 선임연구원은 "미 행정부의 수출 통제 조치는 미국 기업과 중국 바이어 간의 단절이란 비용을 초래했다. 화웨이가 다른 OS를 선택하면 구글 안드로이드가 타격을 입을 수 있으며, ZTE가 미국 기술 구매를 중단할 수 있다고 시장에 알려지면서 퀄컴의 주가가 타격을 입었다"고 분석했다.

보스턴컨설팅그룹도 비슷한 주장을 내놓은 바 있다. 지난 4월 미국 반도체산업협회(SIA) 의뢰로 '중국과의 무역 제한이 반도체 시장에서 미국 리더십을 어떻게 종식시키는가' 제목의 연구 보고서를 발간하며 미국이 수출 제한 기업 명단을 유지한다면 미국 반도체 기업들은 향후 3~5년내 8%포인트의 시장점유율 하락과 16%의 매출 감소를 겪게 될 것으로 분석했다.

옥스포드 이코노믹스는 5G 네트워크 시장에서 화웨이를 배제하면 5G 투자 비용이 최대 29% 증가하고, 국민총생산(GDP)이 최대 630억달러 감소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EAL4+ CC인증
화웨이를 둘러싼 공방전이 치열하게 벌어지는 가운데, 화웨이를 압박하는 미국의 입장을 머쓱하게 만드는 주장도 나왔다.

지금까지 미국은 화웨이가 사실상 중국 정부의 영향력 아래에 있으며, 화웨이가 속칭 백도어를 통해 중국 정부를 위한 각 국의 기밀을 빼갈 수 있다 경고한 바 있다.

화웨이라는 기업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우선 화웨이라는 사명 자체가 중화유위(中華有爲)에서 나왔다. 이는 ‘중국은 미래가 있다’는 뜻이며 사실상 화웨이가 중국 정부의 기업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끌어낸다. 런정페이 창업주가 유명한 마오주의자라는 점도 중요하다. 런 창업주는 1944년 태어나 충칭건축공정학원에 입학, 1974년 인민해방군에서 건축병으로 일했다. 이후 1983년 제대해 1987년 화웨이를 창업했으며, 사업 초반부터 마오쩌둥의 전략을 차용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항상 위기의식을 전제로 움직이는 ‘늑대문화’가 대표적이다. 런 창업주는 1995년 12월 26일 ‘목전의 정세와 우리의 임무’라는 글을 발표했으며, 이는 마오쩌둥의 사상을 그대로 옮긴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런 가운데 화웨이가 지난 5일 세계 최초로 5G 기지국 장비에 대해 국제 보안 CC(Common Criteria) EAL4+인증을 최종 획득해 시선이 집중된다. CC인증은 정보기술의 보안 기능과 보안 보증에 대한 국제 평가 기준 ISO 15408이다. 미국, 유럽, 캐나다 등 국가마다 서로 다른 정보보호 시스템 평가기준을 연동하고 상호 인증하기 위해 통합하여 제정된 공통 평가기준으로 한국을 포함한 31개 CCRA가입국에서 유효하다.

CC 인증의 평가보증등급(EAL, Evaluation Assurance Level)은 1~7 등급으로 총 7개의 단계로 구분되며, 등급이 높을수록 그에 상응하게 보안의 안전성 검증도 까다로워지며 검증에 소요되는 시간도 더 길어진다. 이번에 화웨이가 취득한 CC인증은 EAL4+이며, 이는 네트워크 장비로 취득할 수 있는 최고 레벨이다.

미국 기업들도 받은 보안 인증에 화웨이가 당당하게 이름을 올린 셈이다. 결국 화웨이의 보안 이슈를 문제삼던 미국의 입장은 상당히 곤혹스러워졌다.

한국화웨이 이준호 CSO는 "CC인증은 정보 기술 보안 평가를 위한 국제 표준으로 제품의 안정성과 신뢰성을 검증하는 제도이다. 화웨이는 4G에 이어 5G 기지국 장비까지 CC인증을 취득한 유일한 제조사이며, 보안에 있어서 많은 자원과 비용을 아끼지 않고 국제 표준을 준수하기 위해 노력하는 회사다"며 "화웨이는 CC인증 취득을 통해 입증된 최고의 보안 역량을 유지해가면서 한국에 고품질, 고성능 그리고 가장 안전한 5G 네트워크를 구축해가는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아슬아슬한 줄타기
화웨이를 둘러싼 논란이 커지는 가운데, 현재 세계는 화웨이와 반 화웨이 진영으로 극명하게 갈렸다. 이런 가운데 미국은 G7 확장까지 운운하며 한국도 반화웨이 전선에 나서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현재 화웨이의 통신장비를 5G에서 사용하는 곳은 LG유플러스다. 이런 가운데 LG유플러스가 추가 장비 구매에 있어 화웨이 장비를 추가적으로 확보할 가능성은 말 그대로 '오리무중'이라는 말이 나온다. 그리고 일반 시민들은 중국이 보여주는 국제정치적 행보를 두고 '믿을 수 없는 나라'라는 기류가 강하며, 이는 화웨이 장비를 활용하고 있는 LG유플러스에 대한 비판으로까지 이어지는 중이다.

다만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필요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포스트 코로나 이후 각 국의 강력한 양적완화에 따른 부담, 나아가 파탄난 경제에 따른 막대한 극복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전 산업 영역에서 긴축재정이 화두로 부상할 것이라는 주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결국 '가성비'를 필요로 하는 곳들이 많아지는 가운데 '가성비가 좋은' 화웨이의 통신 장비는 이러한 '가려운 곳'을 긁어줄 수 있는 절호의 아이템이 될 수 있다.

지금의 세계 화웨이 배제 트렌드가 장기간 이어지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는 뜻이다. 결국 한국은 양쪽의 의견을 모두 청취하며 최선의 선택을 내려야 하고, 저렴한 가격에 높은 효율을 보일 수 있는 기술력을 택해야 한다는 주장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이를 대비한 정무적이고 노련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