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유하는 관계_보라색 방, 104×137㎝, 장지에 채색, 2020

화면은 지극히 친숙하여 무심했던 일상 속 식물에 의한 자각의 열림으로 인도한다. 외할머니 댁에서 자란 작가의 유년시절과 형형색색 정원의 기억을 관계의 미학으로 이야기한다.

동색(同色)으로 동색인 듯이 어울리는 풀 섶과 그 속 피어나는 형형색색의 꽃잎들, 숲 사이를 지나는 햇빛에 증폭되는 나뭇잎에 대롱거리는 물방울들의 기화, 아련한 영상처럼 부유하는 망울 속 씨앗, 거센 소낙비를 흩트리는 두터운 잎으로 성장시킨 새싹의 열망이 다시 순수로 되돌리며 비워내는 저 광막한 허공의 깊이….

이러하듯 ‘그녀’와 함께했던 공간은 이제 작가의 방식으로 정원을 만들고 응축의 간결미, 호젓한 단순미로서의 식물사회학(phytosociology)적 유기체 장면이 묘사되고 있는 것이다.

“외할머니와 함께 멀리 가버린 색과 소리, 냄새 그리고 움직임. 다시는 재현될 수 없는 그 모습을 생생하게 떠올리며 계절을 맞이한다. 나는 그녀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지금 내가 알고 있고 할 줄 아는 것들은 대부분 그 시절 그녀에게 배운 것들이다.”

▲ 누운 달, 163×122㎝, 장지에 채색, 2020

◇공간과 자연의 현대성

작가는 식물의 안쪽에서 이뤄지는 광합성활력의 확장을 존재의 생명성으로 치환(置換)하고 개인과 집단 나아가 사물에 대한 감각작용을 통한 지속적 성장을 상기시킨다. 같은 듯 다른 뒤엉킨 식물덩이의 인상은, 자아상실의 카오스, 무기력과 모호함 등 현대인의 모멘텀(momentum)을 일깨우는 것과 맥락을 잇고 있다.

부연하면 식물에 대한 사유를 근간으로 이 시대에 형성된 공간에서의 자연계를 언급하는 방식을 취하는 작품세계는 인간관계 역시 의식, 무의식 깊숙이 맞닿아 어떤 덩어리로서 녹아들어 융화(融和)하는 상관성은 아닌지를 묻고 있는 것이다.

▲ 작업실에서 박상미 작가

박상미 작가(A South Korea Painter PARK SANG MI,PARK SANG MI,SANGMI PARK)는 이화여자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 및 동대학원(조형예술학 박사)을 졸업했다. 이번 열아홉 번째 개인전은 서울 종로구 율곡로, 이화익갤러리에서 6월10~23일까지 30여점을 선보인다.

2003년 첫 개인전 ‘나무숲-경이로움’을 비롯하여 그동안 ‘숲-lights me’, ‘between the scene’, ‘scene-장면(場面)’, ‘공존 공간(共存空間)’시리즈를 발표하며 화단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번 ‘모르는 계절’ 역시 저마다 개인의 역사에 기반 된 상황과 감정을 일상 속 장면에 개입하여 식물로 대변되는 평면작업이다.

“어느 순간 만들어져 타의에 의해 연결되어진 모습들. 의도하지 않은 결과들은 무엇 하나 분명한 이유를 수반하지 않은 채로 그렇게 휘어간다. 지속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상처는 ‘나’로부터 파생되는 관계인 선으로 연결되고 또 단절된다. 그리고 반복된다!”